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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로마의 법학자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2세기 초에 많은 기독교인 혐의자들을 심문한 후에, "그들이 잘못한 것이라곤 정해진 날에 동트기 전에 모여, 신을 찬양하듯이 그리스도에 대해 서로 응답하는 찬송을 부르고, 범죄를 목적으로 한 맹세가 아니라 사기행위, 도적질, 간음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거짓 약속이나 서약을 강요당할 때라도 거짓 약속이나 서약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예식이 끝나면 헤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모여 일상적인 깨끗한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단지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었다. 밀접하게 연결된 공동체와 매주 모이는 모임에서는 성령이 사람들로 하여금 방언을 터뜨리게 하며, 주님 예수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외치게 만들었는데, 그 공동체 안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직업적인 경력에 대한 희망, 사회적 출세, 시민으로서의 명예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당시의 시장 세계, 곧 세금 징수원, 대부업자, 시장 조사원, 제국의 관리가 판치는 세계는 어느 순간이든 그 뿌리까지 뒤엎어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의 모든 희망과 에너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에 있었으며, 또한 그분이 이 세상의 진정한 권세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입증해 줄 것에 대한 기대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멋진 교회도 없고, 권위를 가진 성직자도 없고, 특별한 외적인 장식물도 없던 기독교의 모습이었다.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특별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 그들의 임박한 구원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최초 몇 십 년 동안의 "기독교"는 도시와 시골 지역 모두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주변인들의 네트워크로서, 정부조차도 그들을 "종교"라고는 전혀 인식하지 않았을 모임이었다.
초기 기독교는 사실상, 당시에 대륙들을 휩쓸면서 경제를 혼란시키고 옛 전통을 붕괴시킨 이 세상의 권세가 드러내고 있었던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이었다.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 의기양양한 이데올로기는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었는데, 시인들의 노래, 로마식 건축물의 화려함, 로마의 법정과 법령, 로마의 공학기술의 업적, 모든 황제들이 위엄 있는 어버이처럼 흔들어 보이는 손짓 등을 통해 표현되었다. 2세기 초, 기독교가 형태를 갖춘 독립적 종교로 형성되던 바로 그 시점에, 로마제국은 새로운 경제적, 문화적 및 행정적 체제를 건설하면서, 더욱 늘어나는 대중들을 그 체제 속에 협조하도록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새로운 체제 속에서 황제는 유일한 최고신(supreme god)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체제전복적인 사람들로 간주되었던 것인데, 카이사르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신론자이며 동시에 반역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의 눈에는 황제가 공공적인 숭배의 대상이며, 기적적인 출생과 매혹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의 주체이며, 제국의 권력에 대한 신의 섭리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의 주체로서, 제국의 모든 백성들은 그의 지도를 받도록 훈련되었고, 누구나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존재였다. 제국 전체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한 그의 통치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계절의 순환과 별들의 운행 못지 않게 불가피하며 신이 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신자들은 아무도 이런 식의 황제 선전(propaganda)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 로마는 짐승이며, 창녀, 용, 바빌론, 사탄이었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신적인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로마군대가 끔찍한 폭력으로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고, 지방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여 그것을 묵인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인들이 단계적으로 처음에는 겁을 주다가, 적절한 기회를 보아 침략하고, 마침내는 지중해 주변의 모든 영토를 점령한 채, 예전에는 독립적이었던 백성들을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체제 속의 하인들, 혹은 의뢰인들(clients)의 신분을 배정해주는 오만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가 정복해 나간 피비린내 나는 경로는 이탈리아에서 시실리 섬을 거쳐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남부 그리스, 소아시아, 시리아, 유대, 이집트로 이어졌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로마인들이 이미 지중해 전역의 주인이 되었으며, 로마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헌신했던 관리들, 주둔지 병력, 세금 징수원 등의 관료체제가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재물이 로마로 흘러들고, 로마가 임명한 속국의 왕들과 부하들 일당의 금고 속으로 흘러들 때,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약속한 바 제국의 백성 모두를 위한 보편적 평화와 번영에 대한 약속은 그 말처럼 쉽게 지켜질 수 있는 약속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2세기 초, 로마제국의 동쪽 지방에 걸쳐 흩어져 있던 기독교 공동체들은 다른 종류의 보편적 통치를 믿었다. 그 신앙은 자신들의 기독교 운동의 시작과 최초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속에 나타났는데, 그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로마의 정복에 관한 {애네이드}(Aeneid)나 그 밖의 화려한 서사시들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될 이야기였다. 적어도 네 가지 서로 다른 판본(板本, version)―결국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이름의 저자의 것으로 이름 붙여진―으로 유포되고 있었던 그 기독교 이야기는 그 운동의 창시자의 생애 이야기로서, 그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전해진 곳에서는 어디서나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그 이야기는 로마 황제의 궁궐이 아니라 유대 땅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구세주의 메시지와 성품을 묘사한 이야기였다. 다채로운 말씀들과 비유들을 통해, 그 이야기는 전혀 다른 종류의 나라(Kingdom), 즉 폭력, 불평등, 불의가 없으며, 이 세상의 황제들, 부자들과 왕들의 오만함을 용인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했다. 그 이야기는 거의 백 년 전에, 곧 막강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에서 다스리고, 속국왕 헤롯이 화려한 왕궁에서 무섭게 통치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기념비적인 성전이 예루살렘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던 당시에 일어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 이야기를 귀하게 간직하던 가난한 사람들과 농민들 자신처럼, 황제의 잔인한 통치가 조만간 사라질 시련이며, 하늘의 한 분 진정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로움에 대해 상을 내려주실 것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분은 마지막 심판 날에 반드시 악한 무리들을 불과 영원한 저주로 심판하실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왕조들이 바뀌고, 로마는 여전히 그 권력을 유지했지만, 기독교인들은 작은 그룹으로 모여 그들의 거룩한 이야기들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공동으로 포도주와 빵을 나누면서, 다가올 심판의 날을 계속해서 믿었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자신들이 맡을 중심적 역할을 믿고 있었다.
호슬리 & 실버만, 예수와 바울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 1장에서
이것은 단지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었다. 밀접하게 연결된 공동체와 매주 모이는 모임에서는 성령이 사람들로 하여금 방언을 터뜨리게 하며, 주님 예수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외치게 만들었는데, 그 공동체 안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직업적인 경력에 대한 희망, 사회적 출세, 시민으로서의 명예들을 거부했다. 그들은 당시의 시장 세계, 곧 세금 징수원, 대부업자, 시장 조사원, 제국의 관리가 판치는 세계는 어느 순간이든 그 뿌리까지 뒤엎어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의 모든 희망과 에너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에 있었으며, 또한 그분이 이 세상의 진정한 권세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입증해 줄 것에 대한 기대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멋진 교회도 없고, 권위를 가진 성직자도 없고, 특별한 외적인 장식물도 없던 기독교의 모습이었다.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특별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 그들의 임박한 구원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최초 몇 십 년 동안의 "기독교"는 도시와 시골 지역 모두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주변인들의 네트워크로서, 정부조차도 그들을 "종교"라고는 전혀 인식하지 않았을 모임이었다.
초기 기독교는 사실상, 당시에 대륙들을 휩쓸면서 경제를 혼란시키고 옛 전통을 붕괴시킨 이 세상의 권세가 드러내고 있었던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이었다.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 의기양양한 이데올로기는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었는데, 시인들의 노래, 로마식 건축물의 화려함, 로마의 법정과 법령, 로마의 공학기술의 업적, 모든 황제들이 위엄 있는 어버이처럼 흔들어 보이는 손짓 등을 통해 표현되었다. 2세기 초, 기독교가 형태를 갖춘 독립적 종교로 형성되던 바로 그 시점에, 로마제국은 새로운 경제적, 문화적 및 행정적 체제를 건설하면서, 더욱 늘어나는 대중들을 그 체제 속에 협조하도록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새로운 체제 속에서 황제는 유일한 최고신(supreme god)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체제전복적인 사람들로 간주되었던 것인데, 카이사르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신론자이며 동시에 반역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의 눈에는 황제가 공공적인 숭배의 대상이며, 기적적인 출생과 매혹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의 주체이며, 제국의 권력에 대한 신의 섭리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의 주체로서, 제국의 모든 백성들은 그의 지도를 받도록 훈련되었고, 누구나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존재였다. 제국 전체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한 그의 통치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계절의 순환과 별들의 운행 못지 않게 불가피하며 신이 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신자들은 아무도 이런 식의 황제 선전(propaganda)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 로마는 짐승이며, 창녀, 용, 바빌론, 사탄이었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신적인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로마군대가 끔찍한 폭력으로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고, 지방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여 그것을 묵인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인들이 단계적으로 처음에는 겁을 주다가, 적절한 기회를 보아 침략하고, 마침내는 지중해 주변의 모든 영토를 점령한 채, 예전에는 독립적이었던 백성들을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체제 속의 하인들, 혹은 의뢰인들(clients)의 신분을 배정해주는 오만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가 정복해 나간 피비린내 나는 경로는 이탈리아에서 시실리 섬을 거쳐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남부 그리스, 소아시아, 시리아, 유대, 이집트로 이어졌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로마인들이 이미 지중해 전역의 주인이 되었으며, 로마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헌신했던 관리들, 주둔지 병력, 세금 징수원 등의 관료체제가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재물이 로마로 흘러들고, 로마가 임명한 속국의 왕들과 부하들 일당의 금고 속으로 흘러들 때,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약속한 바 제국의 백성 모두를 위한 보편적 평화와 번영에 대한 약속은 그 말처럼 쉽게 지켜질 수 있는 약속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2세기 초, 로마제국의 동쪽 지방에 걸쳐 흩어져 있던 기독교 공동체들은 다른 종류의 보편적 통치를 믿었다. 그 신앙은 자신들의 기독교 운동의 시작과 최초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속에 나타났는데, 그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로마의 정복에 관한 {애네이드}(Aeneid)나 그 밖의 화려한 서사시들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될 이야기였다. 적어도 네 가지 서로 다른 판본(板本, version)―결국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이름의 저자의 것으로 이름 붙여진―으로 유포되고 있었던 그 기독교 이야기는 그 운동의 창시자의 생애 이야기로서, 그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전해진 곳에서는 어디서나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그 이야기는 로마 황제의 궁궐이 아니라 유대 땅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구세주의 메시지와 성품을 묘사한 이야기였다. 다채로운 말씀들과 비유들을 통해, 그 이야기는 전혀 다른 종류의 나라(Kingdom), 즉 폭력, 불평등, 불의가 없으며, 이 세상의 황제들, 부자들과 왕들의 오만함을 용인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했다. 그 이야기는 거의 백 년 전에, 곧 막강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에서 다스리고, 속국왕 헤롯이 화려한 왕궁에서 무섭게 통치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기념비적인 성전이 예루살렘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던 당시에 일어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 이야기를 귀하게 간직하던 가난한 사람들과 농민들 자신처럼, 황제의 잔인한 통치가 조만간 사라질 시련이며, 하늘의 한 분 진정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로움에 대해 상을 내려주실 것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분은 마지막 심판 날에 반드시 악한 무리들을 불과 영원한 저주로 심판하실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왕조들이 바뀌고, 로마는 여전히 그 권력을 유지했지만, 기독교인들은 작은 그룹으로 모여 그들의 거룩한 이야기들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공동으로 포도주와 빵을 나누면서, 다가올 심판의 날을 계속해서 믿었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자신들이 맡을 중심적 역할을 믿고 있었다.
호슬리 & 실버만, 예수와 바울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 1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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