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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십자가 처형의 잔인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비밀스런 것도 전혀 없다. 만일 우리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전형적 형상에 대해 그토록 친숙하지 않다면, 또한 우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로마제국의 영광, 장엄함, 기술적인 발전을 감탄하도록 그처럼 철저하게 세뇌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제국의 지휘관의 무자비한 범죄에 대해 사면해주고 그 희생자들을 비난하도록 그처럼 교묘하게 훈련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십자가 처형이라는 잔혹하며 대량학살의 고문방식에 대해 그 실체를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중해 세계 전역에 걸쳐서, 북쪽으로는 가울 지역과 해협을 건너 브리튼까지에 걸쳐서, 로마 황제들과 총독들, 지방장관들은 그들의 장교들이 길거리나 들판에서 누구든지 체포하여 좌우간 사유재산과 공공질서 혹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자라고 지목한 자들에 대해 그런 극한적인 고통을 줄 권력이 있었으며 심지어 의무가 있었다. 십자가 처형의 끔찍하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키케로, 리비우스, 타키투스, 세네카 등이 자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그 소름끼치는 처형방식에 대해 우리는 복음서들의 수난 이야기와는 별도로 많은 증거를 갖고 있다. 십자가 처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발가벗겨지고 군중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 군인들은 끝에 쇠붙이가 달린 채찍으로 흠씬 매질을 했다. 그런 후에 십자가의 가로지르는 들보(patibulum)를 무겁게 지고 처형 장소로 가야 했고, 거기서 그는 수직 기둥에 잔인하게 매달려졌다. 그는 거친 나무에 쇠못이나 밧줄로 묶여, 상처 때문에 죽거나 아니면 몸무게로 인해 처져서 질식사할 때까지 매달려 있게 되며 군인들이 경비를 섰다.
비록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미지, 즉 가로지르는 나무에 양팔을 뻗치고 손바닥에 못이 박힌 모습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만, 모든 십자가 처형이 항상 하나의 특정한 형태로 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처형되었지만, 그 유골이 발견된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다. 즉 예루살렘에서 고고학자들은 한 무덤을 발굴하던 중, 어느 청년의 팔뼈가 분명히 가로지르는 나무 맨 위에 묶였었으며 그 발목뼈들은 수직 기둥의 양옆에 못으로 박혔던 것이었다. 십자가 처형의 유일한 목적은 고통과 굴욕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요세푸스는 예수가 처형된 지 40여 년 지나, 로마인들에 대항한 유대인들의 반란 당시에, 십자가 처형을 담당했던 로마 군인들이 그 폭력에 너무 마비되고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에 대해 너무 원한에 차서, "그 희생자들을 서로 다른 자세로 매달아 못질하는 장난을 벌였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십자가 처형은 로마인들이 눈에 보이도록 명백하게 드러나는 모습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른 어떤 형태보다도 강력한 수단이었으며, 나사렛 예수의 경우에도 분명히 이런 수단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이처럼 로마의 모든 도시들의 변두리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되는 그 비명소리와 피비린내와 끔찍한 모습은 그 도시들 속의 신전들과 광장의 우아함과 건축학적인 광채들을 짓밟아버리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십자가와 코린트 양식의 기둥은 로마인들의 경험하는 두 측면이었다. 하나는 로마 세계의 논리와 권력구조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늘과 피난처를 제공했으며, 다른 하나는 로마의 질서에 대한 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살아서 숨쉬는 사람들로부터 매를 맞아 온몸이 부어오르고 거의 알아볼 수조차 없는 시체로 만들어버렸다. 십자가 처형은 특수한 범죄에 대한 사법적 보복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자행하는 테러리즘이었다. 도시들의 외곽지역에 세워진 십자가들은 반란을 꿈꾸거나 도망친 노예들, 반역적인 예언자들에게 그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 것인지를 경고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십자가 처형에서는 공식적인 절차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기원전 4년에 로마의 총독 바루스가 2천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십자가에 처형했을 때, 공식적인 절차를 밟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십자가 처형의 요점은 그것을 갑자기 무자비하게 집행하는 공포 자체였다. 십자가 처형은 순전히 공식적이며 국가적인 폭력 형태였다. 따라서 수많은 주석가들과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예수가 얼마나 명백하게 위협적인 존재였는가에 대한 뚜렷한 증언인 셈이다. 이 갈릴리 출신 예언자는 후대의 또 다른 예수처럼 채찍질만 당했을 수도 있었고, 세례 요한처럼 참수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으며, 성전을 신성모독한 사람으로서 돌에 맞아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경우는 로마제국의 권력과 예루살렘의 공공질서가 관건이 되었던, 훨씬 더 공적인 사태였다. 예수가 체포된 후 간단하게 심문을 받은 후에, 이 자칭 예레미야는 군중들 앞에서 무력한 모습으로 끌려 다녔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채찍을 맞고 예루살렘의 공개적인 처형 장소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그의 멍들고 벌거벗겨진 몸이 아래로 처지게 되어 서서히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전파되어야만 했다.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에 맞섰던 예수의 예언자적인 시위는 이렇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비록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미지, 즉 가로지르는 나무에 양팔을 뻗치고 손바닥에 못이 박힌 모습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만, 모든 십자가 처형이 항상 하나의 특정한 형태로 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처형되었지만, 그 유골이 발견된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다. 즉 예루살렘에서 고고학자들은 한 무덤을 발굴하던 중, 어느 청년의 팔뼈가 분명히 가로지르는 나무 맨 위에 묶였었으며 그 발목뼈들은 수직 기둥의 양옆에 못으로 박혔던 것이었다. 십자가 처형의 유일한 목적은 고통과 굴욕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요세푸스는 예수가 처형된 지 40여 년 지나, 로마인들에 대항한 유대인들의 반란 당시에, 십자가 처형을 담당했던 로마 군인들이 그 폭력에 너무 마비되고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에 대해 너무 원한에 차서, "그 희생자들을 서로 다른 자세로 매달아 못질하는 장난을 벌였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십자가 처형은 로마인들이 눈에 보이도록 명백하게 드러나는 모습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른 어떤 형태보다도 강력한 수단이었으며, 나사렛 예수의 경우에도 분명히 이런 수단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이처럼 로마의 모든 도시들의 변두리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되는 그 비명소리와 피비린내와 끔찍한 모습은 그 도시들 속의 신전들과 광장의 우아함과 건축학적인 광채들을 짓밟아버리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십자가와 코린트 양식의 기둥은 로마인들의 경험하는 두 측면이었다. 하나는 로마 세계의 논리와 권력구조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늘과 피난처를 제공했으며, 다른 하나는 로마의 질서에 대한 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살아서 숨쉬는 사람들로부터 매를 맞아 온몸이 부어오르고 거의 알아볼 수조차 없는 시체로 만들어버렸다. 십자가 처형은 특수한 범죄에 대한 사법적 보복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자행하는 테러리즘이었다. 도시들의 외곽지역에 세워진 십자가들은 반란을 꿈꾸거나 도망친 노예들, 반역적인 예언자들에게 그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 것인지를 경고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십자가 처형에서는 공식적인 절차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기원전 4년에 로마의 총독 바루스가 2천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십자가에 처형했을 때, 공식적인 절차를 밟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십자가 처형의 요점은 그것을 갑자기 무자비하게 집행하는 공포 자체였다. 십자가 처형은 순전히 공식적이며 국가적인 폭력 형태였다. 따라서 수많은 주석가들과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예수가 얼마나 명백하게 위협적인 존재였는가에 대한 뚜렷한 증언인 셈이다. 이 갈릴리 출신 예언자는 후대의 또 다른 예수처럼 채찍질만 당했을 수도 있었고, 세례 요한처럼 참수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으며, 성전을 신성모독한 사람으로서 돌에 맞아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경우는 로마제국의 권력과 예루살렘의 공공질서가 관건이 되었던, 훨씬 더 공적인 사태였다. 예수가 체포된 후 간단하게 심문을 받은 후에, 이 자칭 예레미야는 군중들 앞에서 무력한 모습으로 끌려 다녔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채찍을 맞고 예루살렘의 공개적인 처형 장소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그의 멍들고 벌거벗겨진 몸이 아래로 처지게 되어 서서히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전파되어야만 했다.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에 맞섰던 예수의 예언자적인 시위는 이렇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