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북적거리며 붐비는 거리들에서, 또한 순례자들로서 혹은 새로운 이주자들로서 예루살렘에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출신 도시들에서도, 사람들은 시골 마을의 생활로 되돌아갈 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시골 마을 이야기는 단지 지주들, 소작농들, 종들과 수확에 관한 신랄한 은유적 표현들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이런 표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계약전통에 되돌아가도록 만들기도 했다. 예루살렘 공동체의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 열두 제자들은 로마인들의 손에 죽은 예수의 비극적인 죽음을 되새기며 예수가 시작한 운동을 계속하며, 예루살렘과 그 너머 지방의 이스라엘의 모든 잃어버린 양들 사이에서 갱신운동의 말씀을 살아내고 설교하도록 만드는 촉진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예수가 자신들에게 나타나심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들은 의로운 순교에 대한 디아스포라의 이해와 완벽하게 맞물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카베오 순교자들에게 "하나님의 보좌 옆에 서서 축복의 시대를 살아갈" 권리를 주셨다고 믿었던 것처럼, 부활한 예수가 가까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들 역시 자신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말일 성도(latter-day saint)로서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증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갈릴리 제자들의 공동체가 언제 처음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사도행전은 십자가 처형 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부터 예루살렘의 갱신운동 공동체에 히브리 말(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Hebrews)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Hellenists)이 상당수 들어왔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들이 어느 정도까지 유대인들의 회당과 구별된 별도의 공동체들을 조직했는가 하는 것은 사도행전 6:1에서 그 힌트를 찾아볼 수 있는데, 과부들을 위해 공동체 기금을 배분하는 문제를 놓고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져서 "신망이 있는 일곱 사람"을 임명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을 관장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이 일곱 명의 집단이 나중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 핵심 인물들이 되었다. 그러나 이 집단이 실제로 음식 나누어주는 일에만 헌신했다거나 혹은 그 멤버들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전도하려 했다는 기록은 의심할 여지가 있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일곱" 사람은 갈릴리 사람 "열둘," 곧 갱신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맡아 재판관으로 활동할 열둘과 마찬가지로, 성서의 상징적인 숫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일곱" 사람을 임명한 것은 1세기에 모든 유대 성읍과 마을마다 일곱 사람의 재판관을 임명했던 관례와 완전히 일치하는데, 그런 관례는 신명기의 명령, 곧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각 지파에게 주시는 모든 성읍에 재판관과 지도자를 두어, 백성에게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하십시오"(16:18)라는 명령에 따른 것이다. 한편 요세푸스는 보다 구체적인 전승을 보여주는데, 이스라엘의 모든 도시는 "오랫동안 덕을 쌓고 정의를 구현한 일곱 사람"을 임명했다고 한다. 따라서 일곱 명의 집사를 임명한 것은 갈릴리 출신 지도자들이 본래 지녔던 생각, 곧 "도시 속의 마을"을 만들려는 생각을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마을의 전통적인 이상을 모델로 삼아 예루살렘 안에 예수 공동체들 세우고 또한 나중에는 전 세계에 걸쳐 예수 공동체들을 세우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그 직책을 임명하고 각각의 공동체가 "모임"(그리스어로 ekklesia로서 "교회"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그 동의어 synagoge처럼, 모임을 갖는 공동체 혹은 민회를 가리킨다)을 구성하게 됨으로써, 이스라엘의 갱신은 실제로 진행될 수 있었다. 예배와 종교적 표현에서 일정한 절충과 혁신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은, 예수의 본래 추종자들과 논의하고 관계를 맺기 시작한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축하하는 만찬을 갖는 갈릴리 방식을 수용하였을 것이며, 여기에다 당시 그리스-로마식으로 좋아하는 선생들이나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식사를 마친 후 토론을 여는 방식을 덧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 모두가 예수를 이스라엘의 갱신이라는 대의를 위한 순교자로 존경했지만 그를 신적인 존재로 예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은 예수의 이름에 크리스토스(Christos),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호칭을 붙임으로써, 예수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왕이 없는 왕국'과 이스라엘의 독립적 전통으로 되돌아갈 것에 대한 그의 요청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혹은 선택에 의해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선포했다. 그러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문제는 예수의 공동체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가 어떻게 또한 왜 그토록 재빠르게 예수의 정당성을 메시아적인 용어로 상징했는가, 하늘 보좌에 앉은 분으로서 왕적인 칭호들을 붙여야 할 분으로 고백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하나의 분명한 가능성은 그들이 자신들의 예언자-순교자가 참된 메시아로 그 정당성이 입증된 분이라고 믿었던 것은, 제국의 권력을 모방하고 그에 순응했던 헤롯 왕들의 자칭 메시아니즘에 반대해서 그렇게 믿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여하튼 3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의 갱신운동에 대한 세련된 시적인 케리그마(kerygma)가 간략한 형태로 이미 만들어졌다. 나중에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표현한 것처럼,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가 처음에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다음에는 열둘에게, 그리고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다음에는 야고보에게, 그리고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전투적인 유대정신(ioudaismos)에서 순교를 이상으로 삼았던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제국에 예속된 것에 대해 계속해서 저항하던 맥락에서 볼 때, 이 케리그마 선언의 위력은 분명하다. 갱신된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예언자는 민족의 죄 때문에 (예전의 순교자들처럼 비극적인 방식으로) 죽었는데, 그 "죄"는 계약의 기본법들을 폭넓게 포기한 죄였다.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마을 전통에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악한 황제들, 불의한 행정장관들, 타락한 제사장들, 그리고 야심적인 속국 왕들의 형태로 그들에게 내려졌던 것이다.
마카베오 시대의 거룩한 순교자들이 강력한 셀류코스 왕조의 억압자들을 기적적으로 몰락하도록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사렛 예수의 희생도 또 다시 민족적 승리를 가져다줄 것으로 소망했다. 셀류코스 왕조의 고문 틀에서 죽은 마카베오 시대 순교자들의 장렬한 죽음이 그 옛날 민족으로 하여금 율법에 되돌아가도록 분발시켜 그 억압자들의 악한 계획을 파멸시켰던 것처럼, 로마제국의 십자가 위에서 처형된 예수의 죽음도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을 되찾게 만들 수 있을지 몰랐다. 비록 빌라도가 여전히 가이사랴에서 통치하고 있으며, 성전은 방대하며 자금이 충분한 관료주의에 중심에 여전히 버티고 서 있으며, 헤롯 안티파스는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예수가 그처럼 강력하게 시작했던 이스라엘 갱신을 위한 운동은 꾸준히 새로운 멤버들을 얻었으며 이 세상 속에서 그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깨닫게 되었다. 북부 지역 전체의 마을 사람들, 예루살렘의 갈릴리 출신 열두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 그리고 대안적인 민회를 구성하려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율적이며 평등주의적인 공동체들의 연합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찾고자 열심이었다. 비록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회중들에게 예수는 예수 그리스도(Iesous Christos), 곧 하늘로 승천하심으로써 하나님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자"로 지명된 예언자-순교자로 알려졌지만, 그 의미는 아직 Q 공동체들의 이해, 곧 이스라엘의 갱신이라는 대의를 위해 죽은 예언자-순교자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과제는 예수의 순교와 그의 정당성에 대한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극적 사건으로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정치적 속박과 이데올로기적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서 전파하는 일이었다. 마카베오하 6:12의 저자가 초기의 순교자들의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말하면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에서 우리 민족이 당한 재난의 기사를 읽고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징벌은 우리 민족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찍질하시려는 것이었다"고 말한 것과 같다. 물론 많은 유대인들은 또 한 사람의 갈릴리 출신 농민 예언자-순교자의 설교와 우스꽝스런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생활방식이 교정된다는 생각에 코방귀를 뀌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로서는, 세상을 정복한 로마제국에 맞서 성공적으로 도전하기 위해서는 군대와 무기, 혹은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헤롯 왕족들의 영향력이 있는 정치적 연줄에 의지하거나 아니면 로마의 행정장관들과 예루살렘의 제사장 귀족들 사이에서 솜씨 좋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학자들이 해석한 모세율법에 헌신하는 사람들로서, 구원받는 길은 십일조, 헌물, 서약물을 성실하게 납부하고 정결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사도행전 6:9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지도자 스데반이 예루살렘의 다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신성모독죄로 고발된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그 유대인들은 "구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 구성된 이른바 리버디노(Freedmen)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사도행전은 대제사장 앞에 담대하게 선 스데반이 점차 관료화되는 성전 제의로부터 독립선언을 발표한 것으로 전해준다. 스데반은 자유롭게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로부터 인용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7:48)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바로 예수가 2∼3년 전에 했던 것과 같은 예언자적 시위를 상기시켜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다르지 않았다. 비록 사도행전 7:54-60의 세부적인 묘사가 대제사장 앞에서의 정숙한 재판에서부터 갑자기 분노한 군중들이 돌을 던져 스데반을 죽게 만든 이야기로 바뀌어서 혼란스럽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두 집단 사이에 벌어진 폭력적인 논쟁에 관한 진정한 전승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사도행전은 스데반을 최초의 크리스천 순교자로 만들고 그의 죽음을 전 세계적인 기독교 선교의 시작으로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이 충돌을 역사적인 것은 아니라면 상징적으로라도, 두 가지 유대인들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충돌로 보아야만 한다. 즉 한 집단은 성전과 이스라엘의 중앙적 기관을 생존의 근본으로 보았던 반면에, 스데반으로 대표되는 다른 한 집단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덜 중앙적이며 덜 위계적인 수단을 통해서 온다고 보았다.
이런 반대자들과 회의론자들에도 불구하고, 왕이 없는 왕국에 대한 말씀은 시온(Zion)으로부터 퍼져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정신 속에 파고들었는데,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스데반, 빌립, 프로코루스, 니가노르, 디몬, 파르메나스, 니골라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예수의 순교에 관해 말할 때가 되었으며, 그의 갱신의 복음을 이스라엘의 모든 도시들에 설교할 때가 되었으며, 진정한 계약전통으로 되돌아가 불경건한 시대를 끝장날 때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은 하늘의 군대들이 충돌하거나 새 예루살렘(New Jerusalem)이 갑작스럽고 기적적으로 강림할 것에 기초한, 저 세상적이거나 초현실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로 대하고, 노예나 짐을 나르는 짐승, 혹은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당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전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소아시아, 시리아 안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들의 유대인 공동체들에 전파할 때, 그들은 이 새로운 세상이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동터오고 있는 현실이라고 열렬하게 믿었다.   

호슬리 & 실버만, 5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