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말씀은 서서히 모든 민족들에게로 전파되어 나갔는데, 이것은 예수의 사도들이 로마제국의 대로를 따라 걸어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니면서, 또는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니면서 그 말씀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로 갔던 곳은 로마, 알렉산드리아, 두로, 에베소, 안디옥 등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들이 자율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면서, 자녀들에게 조상들의 가르침과 관습을 가르치며, 자신들의 독특한 금식일과 종교적 축제일들을 경축하며, 마침내는 이스라엘이 구원되리라는 믿음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던 도시들이었다. 갈릴리와 유대 지역의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디아스포라의 많은 유대인들도 메시아, 천상의 회의, 천사들의 군대, 하나님의 시간표에 관한 선명한 묵시종말적 전승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런 전승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악을 멸망시키고 선한 세력이 승리하도록 하실 것임을 기대했다. 그들의 희망은 갑자기 하늘에 혜성이나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나거나, 동방에서 폭동과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음으로써 종종 좌절되기도 했지만, 그런 불길한 사태들은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다가는 사라져버리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 황제의 통치가 끝나가던 시기에 새로운 흥분의 도가니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갱신운동의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되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바로 한두 해 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하면서, 그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의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개입하시기 시작하셨다는 틀림없는 증거라고 선포했다.
매주 모이는 회당 모임에서, 길거리에서 즉석으로 선포하는 설교를 통해서 그리고 가족들 모임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루살렘의 열두 제자들의 공동체가 간직했던 경제 정의와 사회적 협력에 대한 강력한 가르침들을 지칠 줄 모르고 전파했다. 그러나 그 사도들의 메시지가 당시 유대교 안의 개혁주의자들의 교리들로부터 구별되는 것으로 만든 요인은 그들이 예수의 부활에 관해 말한 이야기들이었다. 귀신과 유령, 떠돌아다니는 망령에 대한 오싹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던 시대에, 예수가 로마제국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수치와 불명예에 대해 육체적으로 승리했다는 소식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정서적 영향을 끼쳤다. 사도들은 비록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로마인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조롱을 당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이런 소름끼치는 장면은 로마제국의 모든 주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그리고 심지어의 십자가에 달린 그의 육체조차 매질을 당하고 창에 찔리고 부러졌지만,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이것은 에녹과 엘리야와 같은 고대 선견자들이 기적적으로 승천한 것에 관한 태고적의 막연한 전설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모두 결코 잊을 수 없도록 생생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더군다나 믿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증언한 사실로서 사람들을 어리벙벙하게 만드는 최근의 사건에 속했다. 실제로 예수에 관한 최초의 선포는 이처럼 십자가 처형 이후에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전 15:5-7). 그리고 부활한 예수에 관한 이런 초기의 이야기들에 대해 우리가 오늘날 아무리 합리주의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해도, 이런 이야기들은 적어도 1세기 청중들에게는 완전히 믿을 만한 목격자들의 이야기라는 확신을 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디아스포라 전역에서 전해지고 또 다시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반적 부활, 곧 세상 끝 날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바, 이스라엘의 의로운 순교자들과 독립투사들의 일반적 부활을 시작하는 첫 번째 조치를 분명히 취하셨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예수가 부활한 의미에 대한 믿음이 특정한 유대인 공동체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성령에 사로잡힌 사도들의 기적적인 치유와 귀신축출을 통해 아마도 그 믿음이 더욱 확증되고 강화됨으로써, 지역의 "에클레시아"(ekklesiai), 혹은 예수의 "길"(The Way)을 따르는 "성도들"의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점진적으로 폭넓은 회당 사람들로부터 분리된 별도의 집단으로 분화된 과정은 유대로부터 떠나서 새로운 종교로 "개종"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인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쿰란 공동체의 회원들이 광야에 모여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서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의식적인 목욕재계에 몰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이 이스라엘의 계약에 대한 자신들의 새로운 헌신을 선언하기 위해 요르단 강에서 공개적인 세례식을 거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추종자들도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을 뜻하기 위해 입회의식, 곧 종교적인 목욕탕, 흐르는 강물 속에 벌거벗은 몸을 담그거나 아니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도가 머리에 물을 뿌림으로써, 입회의식을 행했다. 다른 유대인 묵시종말적 집단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수의 추종자들은 확고하게 그 초점을 현재에 맞추고 있었다. 즉 쿰란 공동체는 종말의 표징을 찾기 위해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으며, 세례 요한은 다가오고 있는 나라에 관해 말했지만,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루살렘의 십자가 위에서, 로마인들의 잔인성과 유대 지도자들의 정치적 무력함에 직면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정당성을 입증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 시대를 이미 시작하신 것이라고 믿었다.

호슬리 & 실버만, 6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