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예수살기 회보 원고

지속가능한 퇴보를 향하여
-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예수살기의 과제 -

                                         김준우(한국기독교연구소)

I. 들어가는 말
지난 부활절에 맞추어 발표된 "생명과 평화를 여는 2010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더욱 악화되는 계급모순과 민족모순, 그리고 생태계 파괴 현실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었다. "정의와 평화와 생명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현실"에서 죽임의 문화와 제국주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종교적 안일에 빠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외면했던 기독교인들의 참회와 더불어 창조질서의 보전 속에서 정의와 생명과 평화의 질서를 이루기 위한 엄숙한 다짐이었다. 이런 총론적인 선언 후에 남은 과제는 각론이며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다.
이 선언이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문제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생명의 풍성함을 파괴하는 땅의 현실이다. 땅은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필수적인 터전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매일 두려운 마음으로 온갖 제사를 드린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땅이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해 더럽혀지면 제일 먼저 더러워지는 곳이 성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많은 예언자들이 사회적 불의를 고발하면서 목숨까지 내놓았던 것 역시 하나님은 땅이 더러워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예수살기운동이 기후변화 위기에 대해 철저한 관심을 기울이고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기후변화 위기가 다음 세대에서 전지구적으로 생명의 풍성함을 파괴하는 가장 큰 위기이기 때문이다.

II.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의식화 작업
기후변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대규모 멸종으로 인해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를 살고 있는 지금은 예수 당시보다 훨씬 더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임에 틀림없다. 한국인들의 90.9%가 막연하게나마 기후변화를 우려하고 있는 현실이지만(환경부 국민의식조사, 2008년),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이 OECD 회원국 평균 증가율인 17.4%보다 훨씬 높은 113%로 최고수준을 드러내는 이유는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종합적이며 구체적인 지식이 없거나 막연히 알더라도 국제정치와 자본주의의 문제로 체념하거나, 익숙한 생활의 습관,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의 전면적인 시장주의로 인해 대다수 서민들은 경제적인 생존 자체가 너무 버겁고, 4대강 죽이기 사업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지만, 기후변화 위기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노력의 의미에 대해 체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후변화의 위기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 3도만 상승해도 엄청난 대재앙이 초래될 것이지만, 요즘처럼 날씨의 기온 차이가 섭씨 10도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는 섭씨 3도 상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관성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겨울의 기록적인 한파로 인해 간빙기의 도래까지 논의되면서 지구온난화 위기에 대한 관심이 많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전기 자동차, 하이브리드 카의 시판으로 인해 과학기술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낙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예수살기운동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실제 생활에서 실천에 옮기기 위한 의식화운동이라 생각한다.
 
III. 30년 뒤 2040년의 현실
지구는 "개구리의 알"처럼 살아있지만, 생명체들은 지구의 평균온도와 화학성분에 매우 취약한 존재들이다. 지난 겨울 몽골 초원의 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내려가자 양떼들이 대규모로 얼어죽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처럼, 또한 2003년의 무더위로 인해 유럽에서만 3만여 명이 사망했던 것처럼, 지구의 평균온도는 생존의 절대 조건이다. 현재 지구의 연평균기온은 16도이지만, 이산화탄소의 방출로 인해 그 온도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어 2007년에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서북뱃길이 활짝 열렸다. 2030년 여름에는 북극에서 더 이상 빙하를 볼 수 없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1950년대 말부터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는 기후변화의 위기를 경고하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애를 써왔지만, 정부나 기업체의 행태와 일반인의 생활습관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현재 속도로 매년 1%씩 증가한다면, 2040년에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현재보다 두 배가 되어, 지구의 평균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하게 되어, 대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일반적으로 무관심한 것은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면서 우리의 귀에 빵!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는 그 위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석유문명에 중독된 때문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지금 지질학적으로 지난 6천5백만 년 동안 계속된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 위기에서 크게 염려되는 것 하나는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 매장된 약 700억 톤과 해저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메탄수화물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탈주효과이다. 제임스 러브록은 <가이아의 복수>에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500ppm이 되는 2050년에는 어떤 대재앙이 닥쳐올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즉 지구의 온도와 화학성분을 조절하는 기능을 해왔던 숲과 바닷말들이 온도상승에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면 기온은 급상승하게 되어, 결국 극지방에서나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IV. 지속가능한 퇴보를 위한 예수살기
인류 문명사에서 예수의 중요한 의미는 제국의 지배와 착취에 맞서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통치질서를 세웠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통치질서는 개인의 성취와 거룩에 입각한 가부장적인 차별의 하나님이 아니라, 꼴찌들을 더욱 안타까워 품어 안는 엄마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사랑에 입각한 질서이다. 무제한의 보복에서 제한적인 보복으로, 다시 제한적인 사랑에서 무제한적인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완성한 분이 나사렛 예수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대재앙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논리이다. 타인을 지배하고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는 제국주의적 생활방식이 아니라 예수가 가르친 자기 비움과 단순한 생활을 향한 지속가능한 퇴보가 다음 세대를 위한 예수살기의 생활방식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