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잃어버린 세월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가 16:31)


이 책은 기원후 1세기의 30년대와 40년대, 즉 예수가 처형된 직후 20년 동안의 어두운 기간, 그 원시 기독교의 잃어버린 세월에 관한 책이다. 그 기간은 예수 자신의 초기 생애처럼 침묵에 덮여 있다. 사람들은 종종 예수가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로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기 이전에, 실제로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묻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인도에 가서 지혜를 배웠다고 답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 예수가 아일랜드에 가서 게일족의 언어를 배웠다는 것을 믿지 않듯이 말이다. 따라서 예수의 초기 생애뿐 아니라 기독교의 초기 역사에도 아무런 기록 없이 비어 있는 기간, 잃어버린 세월이 있다. 한 인간의 생애에 그런 세월이 있다는 것보다, 한 사회적 운동에 그런 세월이 있다는 점은 더욱 놀랍다. 즉 고대에는 어떤 인간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기원후 14년 8월 19일에 사망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그의 자서전을 로마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 동판으로 새겨놓았다. 그 이야기는 "19세 때에"라는 말로 시작된다. 루가 2:46-47조차도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해 어떤 역사적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즉 그가 열두 살 때, 예수의 부모들은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요세푸스 역시 자신의 {생애}(Life) 9장에서 이와 비슷하게 자신이 조숙했다고 썼다. 즉 "내가 열 네 살 정도 아이였을 때, 문학을 좋아한 것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였으며, 고향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계율의 특정한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주 나를 찾아오곤 하였다"고 썼다.
그러나 기독교의 초기 시절이 어떻게 그처럼 침묵 속에 덮여 있게 되었는가? 30년대와 40년대의 흐릿함은 상대적으로 50년의 밝음과 대조된다. 즉 50년대에 관해서는 사도 바울의 편지들이 남아 있다. 그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로마의 네 지방, 즉 갈라디아와 아시아, 곧 터어키 중부와 서부 지방, 그리고 마케도니아와 아케아, 곧 그리스 북부와 남부 지방에 있던 기독교 공동체들에 관해 알고 있다. 그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필립비, 데살로니카, 에페소의 도시 교회들에 관해 알고 있다. 우리는 그 편지들에 대한 신학적 주석에 사회학적 분석을 덧붙임으로써, 고린토 교회의 인물들과 문제들에 관해서만 작은 서고를 하나 거의 채울 수 있을 정도이다. 50년대에 기록된 그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다마스커스, 안티옥, 예루살렘 등에서 30년대와 40년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60년대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무슨 일을 할 계획이었는지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30년대나 40년대를 재빨리 지나쳐, 보다 문서가 많은 50년대로 넘어가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30년대의 기독교, 즉 바울이 사도가 되기 이전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자로서 활동할 당시, 그가 박해하고자 했던 기독교의 형태는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물음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즉 바울 이전에는, 바울이 없었을 때는 기독교가 어떤 형태였으며, 혹은 심지어 바울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기독교의 형태가 어떠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론이 있다. 즉 우리는 30년대와 40년대의 잃어버린 세월에 관해 "사도행전"에서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는가 하는 반론이다. 실제로 그렇기는 하지만, 사도행전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사도행전에 대해서는 독자적 방향을 설정하지 않는다면, 신학과 역사, 편집과 전승을 구분하기가 매우 힘들다. 둘째로, 루가는 매우 일반적인 그림만을 그려주고 있다. 그것은 마치 1944-1945년을 요약하면서,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하여 동쪽으로 진격하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사실이기는 하지만, 바스통 전투 같은 세부적 전투를 생략한 것 이외에도, 러시아 군대가 서쪽으로 진격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다. 즉 과거에 대한 그런 식의 묘사는 미래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루가의 사도행전은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로, 즉 서쪽으로 전파된 것에 대해서만 설명할 뿐이지, 북쪽으로 시리아 기독교로, 혹은 남쪽으로 이집트 기독교로 전파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다. 셋째로, 사도행전을 통해서는 예루살렘의 기독교에 관해서는 알 수 있지만, 갈릴리의 기독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실상 30년대와 40년대에 관해 루가와 바울의 진술을 합쳐놓으면, 우리는 기독교가 단지 예루살렘에서만 활동했다고 결론짓게 된다. 이 책은 예루살렘의 기독교와 갈릴리의 기독교 모두에 대해 똑같이 주목하고자 한다. 또한 이 책은 예전에 예루살렘 기독교가 우세했던 것처럼 간주했던 것을 이제는 갈릴리의 기독교가 우세했다는 식으로 뒤집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 둘 모두를 강조할 것이지,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바울의 편지들은 50년대에 기록된 문서들이지만, 30년대와 40년대에 기록된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 20년에 관해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으며, 새로이 말할 가치 있는 것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이것은 새로운 방법론과 새로운 재료들의 문제이다. 나의 새로운 방법론은 인류학적, 역사적, 고고학적, 문학적 연구를 결합한 학제간 연구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은 어떤 기독교 문서를 연구하기 이전에 그 컨텍스트를 가장 선명하게 확립시켜준다. 나의 새로운 재료는 우리가 이미 얻을 수 있는 기독교 문서의 좀더 초기 전승층, 혹은 좀더 큰 자료들로부터 얻은 것이다. 두 개의 독립적인 초기 기독교 문서들이 그 둘보다 좀더 초기의 것임에 틀림없는 공통 전승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에 나의 새로운 재료는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어떤 자료나 문서를 이용하든 간에, 그것들은 항상 30년대와 40년대 팔레스타인의 기독교를 밝혀주는 데에 이용될 것이다. 이것이 이 책에 관한 일반적 설명이다.
{기독교의 탄생}(The Birth of Christianity)이라는 책제목에 관해 두 가지 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탄생"이라는 말에 관한 것이다.  출생보다 잉태는 보통 좀더 사적이며 감추어져 있다. 기독교의 잉태는 예수와 그의 처음 동행자들이 20년대 말엽에 남부 갈릴리의 헤롯 안티파스의 도시 개발과 로마의 지방적 상업주의에 대해 철저하며 비폭력적 저항운동을 벌였던 하느님 나라 운동이었다. 기독교의 탄생은 그 동행자들이 예수의 삶을 모방하려고 노력했을 뿐 아니라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운동을 계속한 데서 이루어졌다. 이 책은 그 탄생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기독교의 잉태를 전제하지만, 기독교의 성장 혹은 성숙에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의 탄생은 기원후 30년대와 40년대에 일어났다. 둘째로, "기독교"라는 말에 관해서다. 만일 당신이 기독교라는 말을 유대교에서 분리된 종교, 혹은 유대교와 반목하는 종교로만 이해한다면, 당신은 이 책에서 의도한 바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적 유대교(Christian Judaism)를 뜻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내가 에세네파, 바리새파, 혹은 사두개파라는 용어를 에세네파 유대교(Essene Judaism), 바리새파 유대교(Pharisaic Judaism), 사두개파 유대교(Sadduceean Judaism)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모두는 팔레스타인 내에서 그리스의 문화적 국제주의와 로마의 군사적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싸우는 서로 다른, 서로 경합하는, 상호 적대적인 선택들이다. 바울 이전의 기독교적 유대교, 바울이 없었던 기독교적 유대교는 무엇이었는가?
나는 루가 24:13-33로 결론짓는데, 이 구절은 나로 하여금 이 책 전체로 발전시킨 것을 한 문단으로 요약한 것이다. 즉 두 사람의 기독교인이 부활절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엠마오로 여행하고 있다.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이름이 밝혀진 남자이며, 그와 같이 가는 사람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당시 지중해 지역의 가부장적 관례로 보아 아마도 여자였을 것이다. 그들이 여행하는 중에 부활한 예수가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엠마오로 가는 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이 아니다. 이것은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처럼) 눈을 멀게 하는 빛이나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없는, 출현(出現, apparition)이다. 이것은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거나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 없이 그 상을 보는 것(vision)이다. 심지어 예수가 메시아의 수난과 영광에 관한 성서의 구절들을 설명해주어도, 그 여행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 낯선 사람에게 자신들과 함께 머물고 식사하자고 청한다. 그가 그들을 청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를 청한다.

그들이 찾아 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그가(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그가(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 가셨다.(루가 24:28-29)
 
독자들은 이 초청이 어떻게 강조되고 있는지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아마도 자신들의 동네 집에 도달하였을 것이며, 그들이 초청하지 않았다면, 그 낯선 사람은 그 집을 지나쳐 계속 갔을 것이며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은 이 책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순회 전도자들(itinerants)이지만, 그들이 함께 식사하고 결국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이 그를 초청한 때문이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루가 24:31). 즉 머물 곳을 제공하고 음식을 나누자 부활한 예수의 비전이 나타난다. 부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신은 여전히 성서 본문에 대한 설명과 성만찬, 전승과 식탁, 공동체와 정의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현존은 알아볼 수 없으며, 인간의 눈은 닫혀진 채로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