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당신이 보는 것의 내용

"영지"(靈知, Gnosis), 혹은 "영지주의"(Gnosticism)는 고대의 ... 한 종교 형태이다. 그리스어 '그노시스'를 번역하여 '통찰력' 혹은 '지식의 종교'라 부를 수 있는 이 종교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처음부터 적어도 간략하게는 밝힐 필요가 있다. 여러 학파들과 운동으로 이루어진 이 종교는 대체적으로 이원론적 종교로서, 이 세상과 당시 사회에 대해 분명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인간이 이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구원받는") 길은 자신의 본질적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될 때 가능하다고 선포했는데, 본질적 관계란 일시적으로 애매한 관계에 있는 그의 "혼"(soul) 혹은 "영"(spirit)과 자유와 안식의 영역인 영적인 세계와의 관계를 말한다. [이 종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적으로도 파급되었는데, 기원후부터 근동지방의 서부(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소아시아)로부터 ... 파급되었다. 영지주의는 그림자처럼 교회를 따라다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즉 교회는 결코 영지주의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그 영향력은 매우 뿌리깊은 것이었다. 그들이 공통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은 서로 적대적인 두 자매들로 남아 있다.
Kurt Rudolph, Gnosis, pp. 1-2, 368.      
이 모든 것은 죽었던 사람의 상을 본 것(vision)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처형당하면서 생긴 끔찍한 상처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증오와 경멸이 그 이상으로 더 끔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벽 바깥에서, 즉 개떼와 까마귀들이 매장되지 않은 시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성벽 바깥에서 일어났다. 여기에는 하나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 이야기는 하늘에서 잉태되어 이 땅에서 태어난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세상의 왕국들과 맞서 있는 왕국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왕국이 오는 것이 복음이라고, 세상 전체를 위한 기쁜 소식이라고 선포한 인간, 평화의 일꾼이며 주님, 구세주이며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만일 당신이 1세기 초엽에 그처럼 죽었던 사람의 상을 본 것(vision)과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당신은 그것을 믿었을 것인가? 만일 당신이 20세기 말엽에 그런 상을 본 것과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믿을 것인가? 그리고 1세기든 20세기든 그런 믿음에는 무엇이 따르는가?

죽은 사람의 상을 본 것(vision)

죽은 사람의 혼(魂 soul)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정상적인 생활에서처럼 분명히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들을 손으로 만졌으며,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만졌던 사례들은 많이 있다.... 죽은 사람의 혼은 비록 형체가 없는 것으로 설명되지만, 이런 식의 사소한 변형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즉 그 혼들은 살아 있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며 살아 있으며, 심지어 살아 있는 사람들 곁에서 그렇게 행동한다.... 셈족의 혼, 혹은 그리스 로마인의 혼은 누구의 혼이든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었으며, 그 몸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났다. 어느 혼이든 닫혀진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으며, 불가사의한 조언을 주고, 사라질 수 있었다. 예수는 그가 처형된 후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가르쳤는가? 이런 식으로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스에게 나타났으며, 사무엘은 사울에게, 스키피오는 그 손자에게 나타났고, 수많은 이들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나타났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구운 생선을 먹고 함께 식사했는가? 어느 혼이든 그럴 수 있었으며, 흔히 그 망자(亡者)를 위한 제의(祭儀)에서는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함께 먹었는데, 이런 제의는 특히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Gregory J. Riley, Resurrection Reconsidered, pp. 58, 67


죽었던 사람의 상을 본 것(vision)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로마제국 안에서 합창처럼 들려졌으며, 국가적 서사시처럼 읽혀졌고, 대리석 장식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시작된 최초의 사건은 그보다 천 년 전에, 즉 그리스인들이 트로이를 완전히 불태워버린 날 밤에 일어났다. 즉 호머의 {일리어드}(Illiad) 22권에서 아킬레스는 트로이의 영웅 헥터를 살해하였고, 다른 그리스 전사들은 그의 벌거벗은 시체를 난도질했다. 아킬레스는 죽어가는 헥터를 향해 "개떼와 새떼가 너를 물어뜯을 것이며 네 시체를 능욕하리라.... 개떼와 새떼가 네 피와 뼈를 핥으리라"고 비아냥댔다. 그가 죽은 후 아킬레스는 헥터의 시체를 그리스 진영으로 가져왔는데, 로버트 페이글의 번역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554-555).

양쪽 발의 발목에서부터 발뒤꿈치까지 꿰뚫어
그 사이로 가죽끈을 꿰어
그의 전차에 매달아 머리가 땅에 끌리도록 내버려둔 뒤
전차에 올라타 그 유명한 무기를 걸쳐놓은 후
채찍을 휘둘러 그의 병사들을 미친 듯 내닫게 하였으니,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 끌려가는 사내로부터
흙먼지가 두텁게 피어올랐으며, 그 검은 머리칼이
한 때 그처럼 멋있었던 머리 둘레로 나부껴
이제는 흙먼지 속에 나뒹굴고 있다.
제우스 신이 그를 원수들 손에 넘겨주어
자기 조상들의 땅에서 모독을 당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헥터의 아버지, 즉 트로이의 왕 프리암이 비굴하게 간청하고 겸손하게 탄원하자 비로소 아킬레스는 그 시체를 영예롭게 매장하도록 허락했다. {일리어드}의 마지막 장면은 헥터와 가장 가까웠던 세 여인, 즉 안드로마케, 헤쿠바, 헬렌의 탄식과 그를 화장시키기 위한 장작더미, 황금빛 납골당, 그리고 깊이 판 무덤의 장면으로서, 그 시의 마지막 행은 "헥터의 명예를 되살린 당당한 행사였다"로 끝난다. 그러나 호머의 {일리어드}가 끝나는 데에서 버질의 {애네이드}(Aeneid)는 시작된다.
줄리우스 씨이저는 기원전 44년 3월에 암살 당했는데, 귀족 출신 공화주의자들은 그가 독재정치를 꾀한다고 생각했던 때문이었다. 옥타비우스는 줄리우스 씨이저의 양자이며 법적인 상속자로서 42년 1월, 그가 열 아홉 살에 씨이저를 신으로 추앙하고, 31년 9월에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른 후, 27년 1월에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선포했다. 옥타비우스 역시 평화의 사자, 은인, 구원자, 신의 아들(Son of God)이었다. 그는 심지어 시간 자체의 "주님"(Lord)이었기 때문에, 그의 생일 9월 23일은 소아시아의 로마 지방에서 새해 첫날이 되었다. 달력에 관한 칙령에 따르면, "우리의 신의 탄생일은 그로 인해 세상에 기쁜 소식(euaggelion)이 시작된 것에 대한 신호였다"(Danker 217). 그러나 이것은 27년의 중대한 교환, 즉 옥타비우스는 그 지방의 대부분을 원로원에게 되돌려주고, 원로원은 아우구스투스에게 대부분의 군단을 준 사건 이후 30년이 지난 다음의 칙령이었다. 그는 이제 씨이저가 꾀했을지 모르는 것, 즉 최고의 독재군주가 되었다. 아무리 이 명백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무슨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씨이저를 암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신격화나 권력으로도 충분치 않았다. 아우구스투스가 (당시 장악했던 그 군단들과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은 예술가들과 선전이었다. 버질의 {애네이드}는 탁월한 시다. 또한 탁월한 선전이기도 하다.
이 시는 로마인들의 이야기, 특히 씨이저, 아우구스투스, 그 가족들을 포함하는 줄리우스 가문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이 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트로이의 남자 안키세스와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애네아스는 이 둘 사이에 태어난 인간이며 동시에 신(human- divine), 가멸적 존재이며 동시에 불멸의 존재인데, 그리스인들이 이미 그 함락될 도시 성벽 안에까지 쳐들어온 상황에서 헥터는 바로 이 애네아스에게 나타난다. 다음은 {애네이드} 2권에 나오는 그 장면(vision)으로서 로버트 핏제럴드의 번역이다(43).

잠든 사이에 꿈에 헥터가 내게 나타났는데,
슬픔에 싸여 수척하고 눈물을 쏟으며 완전히 비탄에 잠겨,
그의 운명의 날에 난폭한 전차 곁에서 검붉은 먼지에 덮여 있고
가죽끈에 부풀어오른 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저런, 그 모습이란!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고 트로이로 돌아오던
그 늠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으며
다아난의 함선들에 횃불을 던지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턱수염은 더럽고, 머리털은 피로 얼룩졌으며
그 아버지의 성벽 바깥에서 입은 상처들,
수많은 상처들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여신의 아이" 애네아스는 자신의 아버지 안키세스와 아들 줄루스를 데리고 트로이로 도망친다. 그들은 마침내 이탈리아에 도착하는데, 그 나머지는 정확한 역사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탁월한 시이다. 버질의 위대한 시는 10년 동안의 작업 후에 기원전 19년에 그가 죽어 미완성으로 남았는데, "줄루스의 자손인 줄리우스[씨이저]라는 이름의 ... 트로이의 씨이저"(13)를 칭송하면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고, 트로이와 로마를 연결시켜, 로마인들과 아우구스투스 원수(元首)에게 신적인 기원(起源)과 신화적 운명을 부여했다.
앞에 인용한 시구는 매우 단순한 점을 지적한다. 즉 지중해 지역의 일반적인 문화는 헥터의 모습이 애네아스에게 나타난 것에 관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그 이야기에서 1세기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즉 죽은 사람들은 황천(Hades)이나 스올(Sheol)에 머물렀으며, 살아 있는 사람에게 다시 나타날 수 있었다. 따라서 비록 헥터의 몸은 트로이의 화장터에서 불살라져 재가 되었지만, 애네아스는 여전히 그 "몸"을 볼 수 있었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처럼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와 살아 있는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 로마인들의 세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으며, 이교도들이나 유대인들조차도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중요한 과정과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 역시, 헥터가 애네아스에게 나타나 그를 구출해줌으로써 로마인과 줄리우스가 패권을 장악하도록 했던 것처럼, 흔한 일이었다. 죽은 사람이 황천으로부터 돌아와 단지 안부인사만을 하는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이 그렇게 돌아오는 사건이 어느 특정한 때에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전혀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점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문제로 들어가는 첫 번째 요점이다. 이제 두 번째 요점으로 나아가자.

당시의 비전(visions), 지금의 비전

다른 사람들도 만난다. [데일 머피의] 어머니가 하루는 침실 창문 밖을 내다보다 머피가 큰 갑판 장화를 신고 그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다른 사람도 브라덴톤의 번화가에서 그를 보았다고 한다. 데브라는 때때로 꿈속에서 그를 본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달려가 "데일, 너 그 동안 어디에 있었니?" 하고 묻는다.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 지난 일을 기억하곤 한다.
Sebastian Junger, The Perfect Storm, p. 214.

죽은 사람의 상을 보는 비전과 출현은 1세기에서만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흔한 일이었던 것만이 아니라, 20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받아들여지고 흔한 일이다. 1995년 봄에 모였던 [예수 세미나]에서, 스테이시 데이빗스(Stacy Davids)는 비탄과 사별에 관한 최근의 정신의학적 문헌들을 요약해서 발표했다. "지난 30년 동안 훌륭하게 진행된 연구를 검토해보면, 사별한 사람들의 절반 내지 80 퍼센트는 죽은 사람의 '혼'에 대해 직관적으로 느끼며 때로는 그 '현존'에 대해 압도적인 느낌을 갖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현상은 사별한 후 처음 몇 달 동안 가장 자주 나타나지만, 때로는 1년 이상 계속되며, 이런 일을 보고한 사람들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더 많았다.... 미국 정신의학회, {정신병 증상과 통계} 4권의 저자는 이런 현상(즉 '사망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거나 일시적으로 그 상을 보는 것')이 병적인 것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이런 현상들은 악화되지 않은 비탄의 일반적 특성으로 간주되며, 정신질환으로 볼 수 없다.... 비탄은 부분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사건을 되풀이해서 단조롭게 회상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애도자가 그 사건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다른 비슷한 사건들에 비추어 정리하려는 끊임없이 욕구를 느낄 때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죽은 사람의 삶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애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3-6).
내가 이 프롤로그를 쓰는 동안, 바다에서 풍랑에 사라진 사람들을 위한 세바스찬 융거의 애절한 애가는 뉴욕 타임즈의 넌픽션 부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그 책은 안드레아 게일 호를 중심으로 한 것인데, 이 배는 글로우체스터 선적으로 황새치를 잡기 위한, 길이 24미터의 철선으로서, 1991년 10월 28일 노바 스코시아 동쪽의 세이블 섬 바로 앞에서 침몰했는데, 당시 파고는 30미터 이상이었다. "만일 안드레아 게일 호의 선원들이 단지 죽었으며, 그들의 시체가 어디엔가 누워 있다면,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작별인사를 하고 자신들의 삶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사라졌을 따름이며, 엄밀하게 말해서, 그들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단지 믿음의 문제이다"(213). 이런 표현과 비문은 오늘날 미국에서 어떤 죽음이든, 특히 급작스럽고 비극적이며 알 수 없는 죽음 이후에 그 가까운 사람들이 애도하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에 대해 꿈도 꾸며 그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 배에 타고 있다가 사라진 데일 머피는 세 살 먹은 아들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를 뒤에 남겨두고 사라졌다. 그의 아들은 "한밤중에 깨어나 소리를 지르곤 하는데," 그 이유가 "아빠는 방에 계셔... 아빠가 여기 있었단 말야... 아빠는 여기서 내게 그 배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말해주었어"(214)라는 것이었다.   
희망과 두려움, 꿈과 악몽, 비전(visions)과 출현(出現, apparition)은 망상이나 환각과는 다르다. 만일 어떤 거인이 당신을 해치려고 해서 소리지르며 깨어난다면, 그것은 악몽이다. 그럴 경우에는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을 안심시켜, 단지 나쁜 꿈이었으니 다시 잠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그날 밤에 침입자를 알리기 위해 경찰에 비상 전화번호를 누르고 그 다음날 보안 장치를 설치한다면, 당신은 꿈에서 망상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구별하는 일은 현실의 일부이다. 만일 당신이 산꼭대기에서 내려와 대천사 미카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보고하면, 당신은 출현을 본 것이다. 만일 당신이 큰 발과 날개가 달린 분이 그 위에 있다고 계속 주장하고 사람들더러 그 위에 올라가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비전을 넘어 환각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것을 구별하는 일은 현실의 일부이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망상과 환각에 관한 것이 아니며, 현실과의 접촉점을 상실한 것에 관한 것이 아니며, 그 어느 것도 속임수와 거짓말에 관한 것이 아니며, 정직성과의 접촉점을 상실한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황홀경과 무아지경, 비전과 출현은 완전히 정상적이며 자연적 현상이다. 꿈과 비전과 같은 변형된 의식상태는 우리 인간에게 흔한 일이며, 우리의 두뇌 속에 깊이 파고드는 무엇이며, 언어 자체처럼 정상적인 무엇이다. 이런 일들이 1세기에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간주되었으며, 20세기 말엽에도 여전히 그렇게 간주된다. 이런 일들이 인간적으로 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때만, 적합한 대응을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당신이 본 것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대응은 "당신이 본 것의 내용을 말해주십시오" 해야만 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당신이 그런 경험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따를 것인지 안 따를 것인지를 판단해야만 한다.
이제는 이 책의 핵심 문제가 분명하게 되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탄생에 관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즉 예수의 추종자들이 그를 메시아였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처형당해 매장되었다. 나중에 그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으로 발견되고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모습으로 그의 예전 추종자들에게 나타났다. 기독교는 부활절 일요일, 즉 기원후 30년 니산월 17일에 태어났다. 기독교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확산되고 승리한 힘을 설명하는 것은 바로 죽은 그 사람의 부활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즉 1세기 초기의 컨텍스트에 비추어 볼 때, 도대체 왜 죽었던 그의 상을 본 비전(vision), 출현, 혹은 부활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가? 그런 사건들은 완전히 독특한 사건들도 아니었으며 절대로 특이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또한 20세기 말엽의 컨텍스트에서도 똑같이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왜 도대체 그런 일들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가? 기독교를 반대하는 세속주의자들이 죽은 사람을 보는 그런 비전과 출현은 단순히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망상이라고 쉽게 주장했던 때가 있었다. 또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인류 역사에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은 오직 이 경우뿐이었다고 쉽게 주장했던 때가 있었다. 이들 모두는 그런 사건을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즉 한편은 그런 사건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한편은 그런 사건이 오직 한번만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같은 합리주의적 동전의 양면이었다.
1세기는 교회와 국가 사이에 명백한 분리가 없었을 뿐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도 명백한 분리가 없었다. 여기서 잠시 예수의 생애의 마지막에서부터 그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기독교는 루가 1:26-38에 따라 예수가 마리아와 성령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즉 인간 어머니와 신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말해왔다. 이교도들은 그런 일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하지 않았다. 이교도들은 애네아스의 경우처럼 신적인 어머니와 인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좀더 가깝게는 아우구스투스 자신도 신적인 아버지와 인간 어머니 사이에서 잉태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즉 수에토니우스에 의하면, 아티아가 아폴로 신전에서 밤을 지내는데, 아폴로 신이 뱀으로 가장하여 그녀에게 찾아왔고, "그로부터 열 달 후 아우구스투스가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아폴로의 아들로 간주되었다"(Suetonius, The Lives of the Caesars: The Deified Augustus 94:4, Rolfe I.267). 이런 배경에 비추어볼 때, 루가의 기록을 반박하기 위해 이교도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반박은 2세기 켈수스의 지적대로, "그토록 존귀하신 신이 (마리아처럼) 비천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인가?"(Celsus, On the True Doctrine, Hoffmann 57-58)라는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시골의 소작농의 딸에게 벌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신들과 여신들, 영들과 불멸적 존재들이 자주 인간들과 육체적으로, 성적으로, 영적으로, 또한 지적으로 교류하던 세상에서는 신적인 아이가 임신되는 일과 죽은 사람을 보는 것은 전혀 비정상적인 사건이 아니었으며, 결코 유별난 사건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상을 본 것과 그가 출현한 것이 심지어 사실이며 역사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기독교의 탄생을 설명하는가?
당신은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반대할 수 있으며, 또한 반대해야만 한다. 고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예수의 부활이 이 세상이 끝날 때의 일반적 부활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바리새파였던 바울은 그런 묵시종말적 부활을 믿었으며, 그런 부활이 이미 예수에게서 시작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흔히 바울에게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울에게는 그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최종적 종료만이 임박했다. 이 때문에 고린토전서 15장에서 그는 매우 논리적으로 예수의 부활과 일반적 부활이 일어나면 함께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일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 리가 없고...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사람이 되셨습니다.(고린토전서 15:13, 16, 20)

예수의 부활이 예수가 메시아, 주님,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혹은 독특한 특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울에게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예수의 부활이 엘리야의 경우, 즉 하느님과 함께 살도록 개인적으로 하늘로 들려 올려졌지만, 넓은 의미에서 공동체적인 혹은 우주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던 엘리야의 경우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바울에게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부활하여 출현한 것이 바울에게는 단순히 죽은 사람의 상을 본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 부활을 시작한 죽은 사람의 상을 본 것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우주적으로 묵시종말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출현이다. 이 모두는 매우 정확한 지적이지만, 우리의 물음을 더욱 분명하게 해줄 따름이다. 즉 1세기의 그런 배경에 비추어볼 때, 부활한 예수의 상을 본 것이 도대체 왜 바울과 그 밖의 다른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것이 단지 예수에게만 주어진 개인적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종말의 시작이라고 결론짓도록 만들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위에 제시한 기독교의 탄생에 관한 표준적 이해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다. 내가 여기서 이런 또 다른 문제들을 언급은 하지만, 내가 이제까지 강조했던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문제들은 모두 부활한 예수에 대한 묘사를 상징적인 것으로 읽기보다는 문자적으로 읽고, 신학적인 묘사로 읽기보다는 역사적인 묘사로 읽는다는 가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이다. 첫째로, 예수가 부활한 후에 나타난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명단(고린토전서 15:5-8)은 복음서 기자들이 그들의 복음서들을 마무리하면서 기록한 명단들과 조화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로, 복음서의 그런 기록들조차도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 시간, 장소, 내용 면에서 서로간에 조화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셋째로, 복음서들의 그런 기록들 가운데 어떤 것도 부활한 예수의 상을 본 것(vision)을 묘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즉 바울에게 일어난 일은 분명히 예수의 상을 본 것이지만, 복음서의 기록들은 그 출현을 본 것 자체보다는 (그를 본 사도들의) 권위를 세우는 일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복음서의 기록들은 그의 상을 본 것의 타당성이나 필요성에 관해 서로간에 매우 심각한 신학적 불일치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즉 예수 자신의 부활의 상을 보는 것에 대한 초기의 준비에서 루가 16:31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엄숙하게 경고했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중요한 문제들로서 내가 이런 문제들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핵심적 문제는 아니다.
만일 우리가 죽었던 사람의 상을 보는 것, 그 출현을 보는 것, 신적인 임신과 육체 부활이 일반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복음서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에 관한 전형적인 인간의 착각을 기록한 것이라고 결론짓거나, 아니면 오직 한 번만 일어났던 독특한 신적인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파고들 나의 문제는 그런 주장이 1세기에서는 분명히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며, 20세기 말에도 아마도 타당하지 않은 주장일 것이라는 점이다. 부활한 시체를 보는 것, 혹은 부활한 몸이 출현하는 것은 유별나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런 일이 특별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당신이 본 것의 내용은 무엇이며, 당신에게 출현한 것은 당신에게 어떤 도전을 하는가?

이원론과 비일관성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같은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바울, 갈라디아 3:28, 고린토전서 12:13

일부 기독교인들(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은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 없고, 남자나 여자도 없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랍비적 유대인은 아무도 그런 선언을 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몸이지 영이 아니며, 몸은 정확히 남자나 여자로 구분되고, 또한 할례와 음식상의 금기와 같은 몸에 대한 관습과 방법을 통해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Daniel Boyarin, Carnal Israel, p. 10.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하나의 문제, 혹은 전제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종교적이거나 신학적 전제가 아니라, 인류학적이며 역사적인 전제이다. 즉 죽었던 사람의 상을 본 것이 기독교를 태어나게 했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죽었던 사람의 상을 보는 것이 적어도 1세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아마도 그 자체로서 무엇인가를 설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상을 본 것이 일반적 부활의 시작으로 해석되었고, 그 해석이 기독교를 탄생시켰다고 말하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 그런 말은 우리의 문제를 달리 표현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즉 도대체 왜 이 사람의 부활이, 다른 어떤 부활과는 달리, 그런 (일반적 부활의) 시작이라고 이해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달리 표현한 것일 따름이다. 이 문제를 전제로 하여 내가 끌어낸 가설은 이것이다. 즉 기독교의 탄생은 예수의 처형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예수와 그의 처음 동행자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 관계가 계속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 상호작용, 그 관계의 계속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며, 어떻게 그 상호작용이 관계의 계속으로 이어졌는지를 역사적으로 밝히려는 시도이다. 이 책의 초점은 기독교의 탄생에 있지, 성장에 있지 않으며, 예수가 처형되기 전후의 사태, 예수 처형 이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과 그 이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 맞추어져 있다. 이 책은 바울 이전의 기독교에 관한 책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울이 박해한 것이 어떤 기독교였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마지막 요점은 자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나는 바울을 기독교의 탄생 속에 포함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 성장과 발전 속에 포함시킨다. 이것은 (바울에 대한) 고의적인 모욕이나 계산된 경멸이 아니다. 나의 결정은 네 가지 요인에 근거한 것인데, 그 가운데 마지막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로, 나는 바울이 신학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16세기에 중요했던 것만큼 1세기에도 중요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이처럼 16세기에 바울을 중요시했던 것 때문에 종종 우리는 그의 본래적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우리는 20년대(당시의 본문이 우리에게는 없다)의 역사적 예수로부터 50년대(당시의 본문이 우리에게는 있다)의 역사적 바울로 너무 빨리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30년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30년대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우리가 상상하는가? 셋째로, 바울에서 시작해서 역사적 예수에게 되돌아가는(혹은 되돌아가기를 거부하는) 학자들과, 예수에서 시작해서 바울에게 다가가는(혹은 다가가기를 거부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그 연구 결과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도전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즉 만일 당신이 바울에서 시작하면, 당신은 예수를 올바로 해석하지 못한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예수에서 시작하면, 당신은 바울을 달리 해석할 것이다. 이렇게 믿는 이유는 나의 네 번째 (가장 기본적인) 요점 때문인데, 이 요점은 위에 인용한 대니얼 보야린의 글에 요약된 것처럼, 그의 흥미롭고 도발적인 저술과의 대화 속에 쓴 것이다. 
전통적 사회가 제국의 현대화 작업에 직면하면, 그것을 거부하거나 아니면 동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하나를 절대적으로 취할 수는 없다. 외국의 그런 비타협적 현대화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항상 그 장소, 시기, 내용, 이유에 따라 다르다. 피상적인 것과 기본적인 것, 타협할 수 있는 것과 참을 수 없는 것에 따라 다르다. 그 차이점을 누가 결정하고 그 차이점을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기원후 1세기에 이르러서는 전통적 유대교가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제국의 상업적 착취로 인해 더욱 압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알렉산더 대왕 시대 이래로 그리스의 문화적 지배로 인해서도 더욱 압박을 받게 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화 작업은 헬레니즘화(Hellenization) 하는 것, 즉 그리스의 국제주의에 통합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화(Americanization)를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대화는 제트 비행기, 컴퓨터, 통신기술의 문제인가? 섹스, 마약, 폭력의 문제인가? 자유, 민주주의, 정의의 문제인가? 물질주의, 개인주의, 세속주의, 자본주의의 문제인가? 유서 깊은 전통사회가 사회경제적 및 군사적 지배에 직면하여 어떻게 수용과 거부를 정확하게 타협할 수 있는가? 특히 압도적인 문화적 제국주의를 어떻게 맞설 수 있는가? 즉 바울은 갈라디아서 3:28에서 "유대인과 로마인"(사이에 차별이 없다)으로 쓰지 않고, "유대인과 그리스인"으로 쓰고 있을 만큼 압도적인 문화적 제국주의를 보여준다.
대니얼 보야린은 1994년에 출판한 책에서 바울을 "급진적 유대인"(a radical Jew)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바울의 동기 가운데 하나는 일자(One)에 대한 그리스 문화의 욕구였는데, 이 욕구는 인간의 차이와 계층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이라는 이상을 만드는 데 공헌했다. [2] 그러나 이 보편적 인간은 육(flesh)과 영(spirit)이라는 이원론(dualism)에 입각한 것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 몸은 특수하고 관습에 따라 유대인 혹은 그리스인으로 구별되고 신체적으로 남자 혹은 여자로 구분되지만, 영은 보편적이라는 이원론이다. [3] 그러나 바울은, 예컨대 영지주의자들처럼, 몸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몸이 비록 영보다 하위에 놓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몸의 자리를 인정하는 체제를 가르쳤다" (7, 일련번호는 내가 붙인 것이다). 위의 처음 두 가지 논제는 나중에 다시 반복되지만, 또 다른 마지막 논제가 나온다. 즉 "[4] 바울의 이런 문화적 비판의 가장 강력한 표현은 갈라디아서이며 특히 3:28-29이다"(181). 다시 말해서, 이것들이 대니얼 보야린의 네 가지 중요한 논제들이다. 이제 바울의 의식 속에서 유대교와 헬레니즘이 맞부딪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두 가지 문화 가운데 어느 것이 이기고 있는지를 판단해 보라.
육과 영의 이원론은 바울 당시 문화에 스며 있던 플라톤주의(Platonism)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대 후기에는 유대교의 여러 분파들이 (당시 대부분의 주변 문화들과 함께) 점차 플라톤주의로 물들게 되었다. 이 말은 이원론적 철학, 즉 현상 세계는 그에 상응하는 영적인 혹은 이데아적인 실체가 질료(matter)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는 이원론적 철학을 수용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서 위계적인 대립이 설정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는데, 보이지 않는 내면적 실재가 보이는 외면적 형상보다 더욱 가치 있고 혹은 더욱 고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의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은 외면적이며 비본질적인 육체적 껍질과 그의 참된 본질을 나타내는 내면적이며 영적인 혼(soul)으로 이루어져 있다"(59). 이처럼 육(flesh)보다 영(spirit)이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위계적 이원론은 몸을 무시하는 태도에서부터 몸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 더 나아가 몸을 거부하는 태도까지 다양한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영에 대해 육은 영을 혼란하게 만드는 집, 유목민들의 천막 같은 것,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거처, 혹은 더러운 감옥 같은 것이었다. 이 모든 표현들은 바로 이원론적 철학의 육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영지주의자들만큼 철저하게 이원론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 만큼 철저한 이원론"을 갖고 있었다. 즉 "바울은 몸을 적극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평가했지만, 필로의 경우처럼, 그 몸은 인간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집 혹은 옷일 따름이다"(59). 보야린은 바울의 이원론이 "몸에 대한 거부를 함축하지 않으며"(59), "몸을 멸시하지 않으며" (64), "아무리 영을 높이 평가한다 해도 몸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185)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헬레니즘 문화의 매우 미끄러운 비탈길에 서 있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육을 입은 영이라는 일원론(monism)과 우발적으로 육을 입은 영이라는 이원론(dualism) 사이의 이분법은 좀더 정확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만일 우리가 단지 그리스도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그 이분법은 성육신적 기독론(incarnational Christology)과 가현설적 기독론(docetic Christology)을 구분하는 기초가 된다. 즉 성육신적 기독론에 따르면, 예수는 완전히 정상적인 인간의 몸을 입고 있지만, 가현설적 기독론에 따르면, 예수는 단지 외견상 몸을 입은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그리스어 dokein은 "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외견상 몸처럼 보이는 것이란 직무를 위한 몸으로서, 그리스 로마 신들과 여신들이 이 지상에서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 입었던 몸과 같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단지 기독교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그 이분법은 이 프롤로그 시작 부분에 인용한 루돌프가 지적한 것처럼, 영지주의자와 교회 사이의 구분의 기초가 된다. 또한 영지주의적 기독교와 가톨릭 기독교 사이의 좀더 정확한 구분의 기초가 되는데, 이것은 적어도 영지주의적 기독교와 가톨릭 기독교 모두가 기독교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가톨릭 기독교는 변증론과 논쟁, 이단으로 고발하는 것과 정통주의를 주장하는 것에 의해 너무 오염되었기 때문에, 단지 가톨릭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이 모든 구분의 기초가 되는 이분법은 어떤 경우이든 기독교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며 광범위한 것이다. 이런 이분법은 기독교가 생겨나기 이전에 전통적 유대교와 헬라적 유대교(Hellenistic Judaism) 사이에도 있었다. 또한 오늘날에도 육이 영으로부터 분리되고, 육이 감각적인 것이 되고, 영은 감상적인 것이 됨으로써, 육과 영 모두가 비인간화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그 이분법이 존재한다. 나는 육을 입은 영이라는 일원론을 육신애(肉身愛, sarcophilia)라 부르고, 육과 영을 대립적으로 보는 이원론을 육신혐오(肉身嫌惡, sarco- phobia)라 부르는데, 이것은 그리스어로 육(sarx), 사랑(philia), 두려움(phobos)을 뜻하는 어원에서 비롯된 용어들이다. 이런 용어들은 고대의 대리석 '석관'(石棺, sarcophagus)을 뜻하는 말을 유추하여 만든 용어들인데, 이 단어는 육(sarx)과 먹는다(phagein)라는 말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서양인들의 의식의 근본적인 단층선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육신애적인 감각과 육신혐오적인 감각 사이의 커다란 경계선을 말한다.
보야린은 이것이 "'팔레스타인 유대교'라고 추정된 것보다 어쨌건 덜 순수한 헬라적 유대교"(6)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그것은 마치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모두 육신애적이었으며, 헬라적 유대교는 모두 육신혐오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리상의 차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상의 차이였다. 그것은 당신이 어디에서 살았던 간에, 그런 플라톤적 이원론을 받아들였는가 아니면 거부했는가에 따라 달랐으며, 또한 어떤 형태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였고 거부했는가에 따라 달랐다. 보야린은 바울과 필로를 대비시켰는데, 당신이 이원론적 이데올로기가 단지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할 경우에 대비하여, 나는 당시 팔레스타인 유대인이었던 요세푸스를 사례로 들겠다.
요세푸스의 이 사례는 뜻밖에도 플라톤적 이원론의 놀라운 사례로서, 영이 몸을 초월해 있으며, 육은 영에 대해 상관성이 없다는 사례이다. 이것은 요세푸스가 기원후 74년, 제1차 로마-유대 전쟁의 막바지에 마사다 요새 꼭대기에 포위된 채 항전하던 반란군 지도자 엘르아잘의 입술을 통해 연설한 내용이다. 플라비우스 실바 장군 휘하의 로마군대는 고립된 마사다의 그 암벽 요새에 잇대어 거대한 토성을 쌓아올렸으며, 이제 전쟁의 끝이 보이던 당시였다. 그 유대인 수비대들은 자신들의 가족들부터 먼저 죽이고 난 후 자신들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엘르아잘은 그들에게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죽는 것이 낫다고 독려했다.

혼에게 자유를 주고, 혼이 그 자체의 집을 떠나도록 허락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에, 모든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혼이 죽을 수밖에 없는 몸 속에 갇혀 있고 그 모든 고통에 절어 있는 한, 그 혼은 실제로 죽은 것이다. 왜냐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과 관계하는 것은 신적인 것과 거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을 땅으로 끌어내려 땅에 매달리도록 만드는 무게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어야 비로소 혼은 제자리를 되찾게 되며 모든 면에서 구속당하지 않는 축복 받은 힘과 활력을 누리게 되어, 하느님 자신처럼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태로 머물 수 있다.(Jewish War 7.344, 346)

이 연설은 물론 엘르아잘이 그 반란군 동지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세푸스가 그의 동료 로마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혼이 몸보다 우월하고 영이 육보다 우월하다는 것에 대해 이 연설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것을 찾기는 어렵다. 1세기 유대인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팔레스타인에 살았느냐 아니면 디아스포라에 살았느냐, 혹은 그리스어를 사용했느냐 아니면 아람어를 사용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필로, 바울, 요세푸스처럼 이념적으로 헬레니즘의 이원론을 흡수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가 보야린에게는 바울이 갈라디아서 3:28("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없다고 한 세 가지 구분, 즉 민족, 계급, 성에 대한 구분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그와 같은 이원론적 배경에 비추어 볼 때, 이 세 가지 구분을 부정하는 것은 육신으로서의 비인간(nonperson-as-flesh)에게 적용되기보다는 혼으로서의 인간(person-as-soul)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런 차별이 없다는 것은 제의적인 현재 혹은 천상적인 미래에 적용될 수 있었지, 당시의 사회 혹은 사회적 현실에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그런 육체적 혹은 물리적 구분이 영, 혼, 참된 인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플라톤주의적 바울, 혹은 헬레니즘화시키는 바울(Hellenizing Paul)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느님 앞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람의 머리털 색깔 혹은 발가락 모양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민족, 계급, 성별에 대한 구분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보야린이 바울을 설명한 방식이다. "바울을 끌고 간 것은 인간의 통일성에 대한 열렬한 갈망, 인간들 사이의 차이와 위계적 구조를 없애버리려는 열렬한 갈망이었으며, ... 그는 자신이 경험한 대로 그리스도 사건을 인류의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보았다"(106). 그러나 만일 이것이 바울이 했던 모든 작업이었다면, 만일 바울이 한결같이 헬라적이었다면, 우리는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유대교적 유전자와 헬라적 유전자는 싸워서 타협한 것이 아니라, 비일관성을 초래했다. 타협은 육신이 하위에 속하는 것이지만 결코 완전히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일관성은 이와 다른 것으로서, 바울에게 일어난 것은 바로 이런 비일관성이었다.
즉 바울은 그 첫 번째 구분, 즉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혼의 구분을 몸에 관한 구분으로 만들었고, 영의 구분을 육에 관한 구분으로 만들었다. 바울은 민족에 대한 부정을 외부로 끌고 나가, 로마 도시들의 길거리에서도 그런 민족 구분이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주장했지만, 계급과 성별 구분에 대해서는 똑같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즉 그는 민족에 대해 말한 것과 계급 및 성별에 대해 말한 것이 달랐는데, 민족적인 구분은 하느님 앞에서 종교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육체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모순은 바울이 그 세 가지 구분을 모두 영적인 구분으로 간주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세 가지 구분 가운데 하나만을 육체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만일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의 구분을 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그 두 민족은 모두 내면적으로 동등하며 외면적으로도 중요한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즉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그리스인이나 차이가 없게 된다. 할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간에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즉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은 할례를 받은 것보다 더 나을 것도 없고 더 나쁠 것도 없다. 실제적으로 말해서, 만일 바울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는 아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게 했을 것이다. 비록 갈라디아 5:6과 6:15에서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라고 주장했지만, 바울에게는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바울은 할례에 대해 5:12에서 신랄하게 "그 지체를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바울은 그 이전에 안티옥에서 사소한 식사 규정 때문에 야고보, 베드로, 바르나바와 갈라서게 되어,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갈 2:11-14). 보야린이 옳게 지적한 것처럼, 바울은 급진적 이원론(영을 위해 육을 거부함)이 아니라 온건한 플라톤적 이원론(육이 영에 종속됨)을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유대교와 그의 헬레니즘 사이의 타협점을 찾았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그의 타협이 아니라, 그가 갈라디아 3:18에 적용시킨 비일관성이다.
당시 바울이나 현재의 보야린에게 필요한 것은 그 세 가지 구분, 즉 차이점들 사이의 차이점을 숙고하는 일이다. 여기서 계급적인 구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당신은 예컨대 민족과 성별의 경우에는 위계질서 없이도 그 차이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계급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다. 즉 계급적인 구분에서는 차이가 위계이며, 위계가 계급적 차이점이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은 더욱 많은 돈을 갖고 있다. 자유인은 노예들과 다르다. 자유인은 좀더 권력을 갖고 있다. 만일 바울이 그 세 가지 구분 모두를 로마 도시의 길거리에서 육체적으로 또한 물리적으로 부정했다면, 그의 목숨은 예수의 목숨만큼 짧았을 것이다. 보야린은 바울에게서 이런 비일관성을 간과하고 있다. 즉 바울로 하여금 유대인/그리스인 사이에 구분이 없다는 것을 완전히 육체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할례와 음식법에까지 적용시킨 반면에, 노예/자유인, 남자/여자 사이의 구분이 없다는 것은 훨씬 더 영적인 방식으로 적용시키도록 만든 것은 그의 비일관성이었다. 바울이 이 세 가지 구분에 대해 비일관성을 유지한 것은 보야린 자신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위에 인용한 보야린의 1993년의 책 {육체적 이스라엘}(Carnal Israel)에서, 보야린은 바울의 갈라디아 3:28의 세 가지 구분들 가운데 단지 첫째 구분과 마지막 구분만을 언급한다. 즉 그는 민족과 성별은 인용하지만 계급은 생략했다. 이런 생략이 우연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그의 1994년의 속편, {급진적 유대인}(A Radical Jew)이 갈라디아 3:28에 입각하여 바울을 전체적으로 해석한 책인데, 보야린은 갈라디아 3:28을 "바울을 풀기 위한 나의 열쇠"(23)라고 부른 이 속편에서도 계속해서 한결같이, 어떤 변명이나 설명도 없이 계급 구분을 생략하고, 오로지 민족 구분과 성별 구분에만 집중하고 있다. 보야린이 계급 구분을 한번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노예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없다"(5)는 것으로서, 이것은 구체적으로 바울이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에 관한 대목과 관련해서였다. 보야린이 그 세 가지 구분 모두를 언급한 경우가 몇 차례 있는데, 이를테면, "세례에서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 남자나 여자, 노예나 자유인처럼 서로의 몸에 나타난 모든 구분이 지워진다"(23), 혹은 "바울의 목회 배후에는 인류가 민족, 계급, 성별에 의해 나뉘어지지 않는 근본적 비전이 있었다" (181), 혹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민족 집단과 사회경제적 계급으로 인한 사회적 차이와 위계뿐 아니라, 성별로 인한 사회적 차이와 위계도 실제로 지워버리는 듯 하다"(183) 등의 언급이다. 그러나 이것이 민족과 성별의 구분 문제에 대해서는 기막히게 논의한 그 책에서 계급 구분에 관해 언급한 전부이다. 내가 바울과 보야린 모두에게서 이런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만일 당신이 그 세 가지 차이 사이의 차이점을 생각하고, 차이와 위계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 생각한다면, 당신이 직면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즉 만일 당신이 민족과 성별의 차이를 위계질서 없이 유지할 수 있다면, 계급의 경우에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계급이 민족과 성별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보야린이 바울에 대해 주장한 논제들에는 또 하나 매우 중요한 비판, 매우 인상적인 제안이 있다. 즉 "그 공통적인 이원론적 이데올로기가 실제적으로 그 초기부터 서양 사상을 특징지워 왔기" 때문에, "바울이 그런 이원론자였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아무런 두드러진 것이 없다. 만일 내가 대담하게 주장하는 것이 있다면, 랍비들은 (초기의 헬라적 유대인들과 후대의 그들에 반대하여) 이런 이원론 형태에 저항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85). 보야린은 '랍비' 혹은 '랍비적 유대교' (rabbinic Judaism)라는 용어를 "오직 2세기 이후와 관련해서만"(2) 사용하며, 이런 랍비들이 플라톤적 이원론에 저항한 것은 헬레니즘화에 대한 "동화론자들"의 저항이라기보다는 "거부론자들"의 저항으로 이해한다(7). 그는 "물론 랍비들도 역시 몸을 생기 있게 만드는 혼을 믿었다. 그러나 오히려 요점은 그들이 인간을 몸 속에 거하는 혼(a soul dwelling in a body)으로 본 것이 아니라, 혼에 의해 살아 있는 몸(a body animated by a soul)으로 보았다는 점이며, 이 사실이 그 모든 차이를 초래한다"(278 각주 8).
나는 이런 진술들에 동의하며, 나 자신의 개인적 감각 역시 어떤 형태든 인간에 대한 이원론을 거부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점에서 나는 유대교편에 서고, 헬레니즘에 대해 반대한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타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비록 급진적 플라톤주의와 온건한 플라톤주의가 이론상으로는 다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똑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우리가 자의식을 갖고 있는 육신으로서, 역설적으로 그 육신의 정통성을 부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의식의 타당성마저도 부인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의식을 지닌 육신으로 남아 있다. 나는 플라톤적 이원론이 급진적인 것이든 온건한 것이든 모두 궁극적으로는 비인간화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내가 이런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이 논의를 계속하기 이전에 이 책의 저자와 독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감각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는가?
이 때문에 나는 예수와 바울에 관해 매우 치밀하기를 원한다. 보야린은 "바울의 전체 복음은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해 각성시키는 요청"(199)임을 알고 있다. 또한 스티픈 패터슨은 최근에 "바울과 [복음서들 속의] 말씀 전승 사이의 연속성은 그 모두에 나타나는 사회적 급진주의의 전통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Patterson, 1991:35)고 썼다. 나는 보야린과 패터슨 모두의 진술에 동의한다. 그것은 바울에 대한 나의 비판이 아니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바울이 그 세 가지 구분 가운데 계급적인 구분과 성별의 구분은 빼놓고 단지 민족적 구분만 철저하게 부정하고 길거리에서조차 부정되어야 할 것으로 주장한 뚜렷한 비일관성 뿐만이 아니다. 내가 정말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필로, 바울, 요세푸스에게 영향을 미친 플라톤적 이원론이 그 랍비(바울) 이전에 세례 요한, 예수, 야고보, 심지어 에세네파와 바리새파에게는 그처럼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바울에서부터 시작하면 독자들이 예수를 틀리게 볼 것이며, 예수에서부터 시작하면 바울을 다르게 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나는 바울이 기독교의 존재를 알게 되고 박해하기 이전에 태어난 기독교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바울을 괄호 속에 넣어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