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장 ▣

기억은 정확한가


실험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거짓 진술을 단순히 반복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로 믿게 된다는 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의 경험에 관해 반복해서 생각하거나 말하면, 우리는 점차 그것을 정확하게 회상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우리가 자주 논의된 경험을 정확하게 다시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부정확하게 기억하는 경험들을 자주 되풀이해서 말할 경우 더욱 확신을 갖기 쉽다. 어떤 경험을 반복해서 되뇌이면 우리가 분명히 잘못 생각하면서도 옳게 생각한다고 느끼게 된다. 개인의 정확성과 확신 사이의 옅은 상관관계는 특히 목격자 증언과 관계가 있다. 즉 경찰과 변호사 앞에서 자신들의 증언을 반복했던 목격자는 자신들의 말이 심지어 부정확한 경우에도, 자신들이 한 말에 대해 매우 확신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리허설의 결과가 특히 중요한 것은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배심원들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확신에 찬 목격자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Daniel L. Schacter, Searching for Memory, p. 111
 
 기억에 관한 우리의 상식은 거의 전부가 틀린 것이다. 최근 북미에서 사람들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거나, 인생이 파탄 나고, 가족이 해체된 것은 그 상식을 믿은 대가였다. 기억에 대한 우리의 오해가 가장 분명하고 끔찍하게 드러난 것은 오늘날 소위 "거짓 기억 신드롬"이라 불리는 것에서였지만, 이것은 항상 "평범한 기억 신드롬"으로 인식되었어야 했다. 기억은 정확한 회상만큼 매우 창조적인 재구성이며, 불행하게도 어디까지가 정확한 회상이며 어디서부터 창조적인 재구성이 시작되는지를 말하기 힘들 때가 많다. 우리는 대개 그 둘 가운데 어느 하나, 혹은 그 둘 모두에 대해 똑같이 평온하고 분명한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상식적으로는 목격자의 증언이 유죄에 대한 최상의 증거로 간주된다. 물론 목격자가 의도적인 거짓말을 할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또한 목격자들이 사건과 더욱 가까울수록 그들의 증언도 신뢰성이 더욱 높은 것으로 간주된다. 충격을 받은 사건들, 특히 그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입은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해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기억 속에 가장 깊이 새겨진다고 간주된다. 우리의 상식에 따르면, 모든 것이 기억 속에 새겨지지만, 우리가 그 기억을 쉽게 되살리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상식들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기억의 상황을 살펴보자. 이 상황들은 워싱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며 법정에서의 위험한 거짓말과 부정확한 기억에 대한 확신적 증언의 전문가 엘리자베쓰 로프투스의 실험과 인용 자료 속에 나오는 것들이다. 나의 요점은 우리가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망각한다는 점이 아니다. 혹은 우리가 중요한 것들은 기억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망각한다는 점이 아니다. 혹은 우리가 중요한 사건들은 기억하고 구체적인 세부사항들은 망각한다는 점이 아니다. 우리가 핵심은 기억하고 변두리 것은 망각한다는 점이 아니다(어느 것이 핵심이고 어느 것이 변두리 것인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이런 기억의 특징들은 항상 실제로 적절하게 평가되지는 않는다 해도 이론상으로는 이해가 된다. 나의 요점은 우리의 기억작용 속에서 사실과 허구, 기억과 환상, 회상과 날조가 얼마나 많이 서로 얽혀지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우리들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없으며, 오직 별도의 문서화된 증명만이 그것을 밝혀줄 따름이다. 이것은 심지어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에 관해 기억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실(Fact)이 비사실(Non-Fact)이 된다  

실험실의 증거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은, 사람의 감정이 한 사건의 특정 재료에 대한 기억을 돕는 반면에, 다른 종류의 재료에 대한 기억은 손상시킨다는 사실이다.
Daniel Reisberg and Friderike Heuer, in Affect and Accuracy in Recall, p. 183

우리가 다룰 첫 번째 기억의 상황은 사실에서 비사실로 바뀌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과정이지만 그 이론적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기억하지만 그 세부사항들에 대해서는 오해하는 경우이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 사건을 기록하듯 확고하게 그 세부사항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 사례
1967년 8월 18일, 펜웨이 파크에서 캘리포니아 앤젤스 팀의 투수 잭 해밀턴은 보스턴 레드삭스 팀의 토니 코니글리아로를 상대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이 경기가 있기 약 3년 전에 코니글리아로는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32개의 홈런으로 아메리칸 리그에서 선두였다. 그가 스물 두 살 때에는 100개의 홈런을 친 최연소 타자가 되었다. 그러나 스물 세 살 때 그는 해밀턴이 던진 강속구에 맞아 얼굴의 왼쪽편이 뭉개져, 턱뼈가 부러지고 턱이 어긋났을 뿐 아니라 그의 시력이 크게 손상을 입어 결국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경기는 금요일 야간경기로 열렸으며, 그 시즌에 앤젤스 팀의 마지막 보스턴 원정경기의 네 경기 가운데 첫 경기였다. 코니글리아로는 레드삭스 팀의 6번 타자였으며, 그가 사고를 당한 것은 4회였으며, 아직 어느 팀도 점수를 내지 못한 채, 투 아웃이었고 베이스에 진출한 주자는 아무도 없었다. 토니 코니글리아로가 1982년 심장마비를 일으킨 이후 중환자실에서 지내다 1990년 신장 기능 정지로 사망하자, 뉴욕타임즈의 데이브 앤더슨 기자가 그 치명적인 투구에 대해 잭 해밀턴을 인터뷰했다(2월27일, 화요일, B9). 해밀턴은 그 경기가 주간경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날 오후나 초저녁에 그를 보러 병원에 갔는데, 가족들만 면회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그 시즌에 보스턴에서 계속된 경기에 동행할 것인지에 대해 그의 매니저가 그에게 일임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래서 그는 동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 사고가 발생한 것은 6회였다. 점수는 2 대 1이었으며, 그는 8번 타자였다고 생각한다. 다음 타순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맞힐 이유는 없었다"고 기억했다.
그 사고의 사실에 관해서는 물론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비록 해밀턴이 "나는 그 사고를 잊을 수 없었다. 많이 생각한다"고 인정했지만, 그 자신의 회상에는 다섯 가지 점에서 오류가 있었다. 즉 그 경기는 주간경기가 아니라 야간경기였으며, 그 시즌에 앤젤스 팀의 마지막 보스턴 원정경기였으며, 그 타자는 8번 타자가 아니라 6번 타자였고, 당시 점수는 2 대 1이 아니라 0 대 0이었으며, 6회가 아니라 4회였다. 이 모든 오류는 물론 사소한 것이며 전형적인 기억상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 사례의 세 가지 특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그처럼 충격적인 경험에서도 그 세부사항들은 그 사건 자체의 지워질 수 없는 성격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더 나아가, 해밀턴의 기억에는 정확한 세부사항들과 틀린 사항들 사이에 명백한 구분이 없다. 비록 이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검증하고 그 구분을 밝힐 수 있는 별도의 기록이 있지만 말이다. 끝으로, 그 기억상의 오류에는 일종의 논리가 있는 것 같다. 즉 해밀턴은 인터뷰하는 동안 그 사고에 아무런 동기는 없었다고 두 차례나 부인했다. "나는 그를 맞히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슴에 손을 대고 말할 수 있다." "그를 맞힐 이유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의 기억상의 오류는 그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경향이 있으며, 단순한 사고라기보다는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혐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억상의 오류인 것처럼 보인다. 해밀턴은 또한 그 비난을 다른 데로 돌리는 세부사항도 기억했는데, "그는 공에 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타석 안쪽으로 바짝 붙어 치는 타자였다."
해밀턴이 "잊을 수 없었던 사건"으로 기억했던 것처럼, 코니글리아로의 부상과 그 자신의 무죄 주장이 융합되어 그 사건에 대한 회상과 재구성에 영향을 미쳤다. 대니얼 샥터가 최근에 주장한 것처럼, "기억들이 단순히 마음속의 그림들을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인들로 구성된 복잡한 구성물을 재생시킨다는 일반 원리는 ... 감정적으로 충격적인 기억들에도 적용된다"(209).  

두 번째 사례
사람들은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혹은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발사 직후 공중에서) 폭발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자기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회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는 야구 투수의 개인적 사고에 대한 기억을 충격적인 국민적 참사에 대한 일반적 기억으로 확대시키는 경우들이다. 1977년에 하버드대학교의 두 실험 심리학자, 즉 로저 브라운과 제임스 쿨릭은 "섬광전구 기억"(flashbulb memories)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는데, 이것은 "매우 놀랍고 후속적인 결과가 뒤따르는 (혹은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사건을 처음 알게 된 상황"(73)에 대한 회상을 뜻한다. 섬광전구 기억은 "플래쉬가 터졌을 때 우리들 각자의 모습을 마구잡이로 찍은 사진과 같다"(74). 또한 "매우 오래 동안 때로는 영원히 고정된 장면으로서 그 후속적인 결과에 따라 복잡하게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항상 떠나지 않는 장면이며 더 이상의 강조가 필요하지 않은 기억이다"(85). 그들은 심지어 그처럼 뇌리에 새겨진 기억들을 특별히 생생하게 그리고 그 세부사항들까지 명확하게 기억하는 특별한 생물학적 기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후 13년이 지났을 때조차도 응답자의 단지 1%만이 자신들이 그 소식을 처음 들었던 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기억들의 세부적인 정확성(세부적인 이미지와는 구분하여)을 검증할 방법은 없다. 즉 그 사건 직후 기억의 기준을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비추어 후대의 기억이 일관성이 있는지를 검증할 수 없다는 말이다.
챌린저 호가 폭발한 다음날 아침에 에모리대학교의 심리학 강좌 101(개성 발달) 수강생 106명은 그 참사를 처음 어떻게 듣게 되었는지에 관한 질문지를 작성했다. 이것은 1986년 1월 그 사건이 발행한 후 24시간 이내에 그들의 기억에 대한 기준을 설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1988년 10월에, 그 106명의 학생들 가운데 아직도 에모리대학교에 재학중인 44명에게 재조사를 실시하여(단 25%만이 1차 조사를 기억했다!), 그들의 두 차례 질문지에 대한 대답을 비교했다. 그리고 1989년 3월에는 그 실험의 마지막 단계에 참여하기를 원했던 학생들 40명을 대상으로 또다시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한 학생이 두 차례의 질문지에 서로 다르게 응답했던 사례이다.

 

이 경우는 그 조사자들이 설명한 것처럼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즉 "오래 지속된 기억들 가운데 완전히 정확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많은 경우에 최소한 이런 식으로 차이가 있다... 그 질문지들은 상당한 오류를 보여준 빈도수가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Neisser and Harsch 9, 12). 예를 들어, 어떤 여학생은 나중에 기숙사 복도를 소리치며 달려간 어느 여학생으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고 회상했지만, 실제로는 학생 식당에서 그 소식을 듣고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점심을 먹다가 중단하고 말았다. 또 다른 학생은 나중에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부모님과 함께 집에 있었다고 회상했지만, 실제로는 학교에 있었다.
두 번째 질문지에 대한 대답을 첫 번째의 대답과 비교하여 그 정확성을 중요한 속성들(장소, 활동, 그 소식을 전한 사람)과 사소한 속성들(시간, 같이 있던 사람들)로 나누어 0에서 7까지의 점수를 매겼을 때, "만점 7점 가운데 평균값은 2.95였다. 11명(25%)은 모든 것에서 틀려 0점을 맞았다. 또한 22명(50%)은 2점 이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중요한 속성 하나에서 옳았다면 나머지 속성들은 모두 틀렸다는 뜻이다. 단지 3명(7%)만이 최고점인 7점을 맞았는데, 심지어 이들의 경우에도 1차 조사와 2차 조사 사이에 사소한 불일치(예컨대 그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관해)가 있었다. 이처럼 점수가 낮은 것이 흥미 있는 것은 그들 가운데 많은 학생들이 매우 높은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18).
부정확한 확신은 부정확성 자체보다 더욱 불안한 것이며, 그 부정확성과 더불어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회상하는 것은 더욱 불안하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정확성의 평균값은 7 중에서 2.95였다. 확신의 평균값은 5 중에서 4.17이었으며, "시각적으로 생생함"의 평균값은 7 중에서 5.35였다! 예를 들어, 위의 도표에 인용한 응답자의 경우 그의 1988년 기억의 확신 등급은 장소, 활동, 그 소식을 전한 사람, 같이 있던 사람들에 대해 5("절대적으로 확실하다")였으며, 시간(동부지역 시간으로 오전 11시39분이라기보다는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대해서는 4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실제 등급은 모든 조항에서 0이었다.
두 차례의 질문지를 비교한 후의 인터뷰를 통해 조사자들은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응답자들의 두 번째 기억은 1988년 10월에서 1989년 3월 사이에 "매우 일관되게" 나타났으며, 또한 그 조사자들이 그 응답자들에게 그들의 첫 번째 대답을 상기시켜주려 했을 때 "그들의 절차가 전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Neisser and Harsch 13). 심지어 그 응답자들 자신이 작성한 첫 번째 대답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을 때조차도, 그들은 "첫 번째 대답했던 것이 이제야 기억난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내가 말한 것처럼 그랬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첫 번째 기억이 완전히 지워졌다는 사실이다" (21). 섬광전구는 반짝 비추지만 동시에 눈을 감게 만들기도 한다. 적어도 검증이 가능한 이 경우에서,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나 확신에 찬 주장이라고 해서 정확성을 지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허구가 사실이 된다      
   
자신의 기억과 일반적인 기억에 대해 건강하게 불신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결론적으로 기억은 선택적이다. 즉 기억 장치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를 선택하며, 그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선택적이다... 우리는 기억의 테이프를 지우거나, 혹은 최소한 그 기억의 테이프를 변경시킴으로써,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괴롭힘 당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심리적 메카니즘을 장착하고 태어난 듯 하다... 기억의 이런 유연성은 복잡하게 만들며 또한 난처하게 만드는 현상을 뜻한다. 즉 우리의 과거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똑같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진실과 확실성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우리의 두뇌 속 어딘가에, 아무리 깊숙이 감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과거의 사건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기억의 기초적 사실들이 놓여 있다고 믿는 것이 좀더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그런 식으로 디자인되지는 않았다.        
 Elizabeth F. Loftus, Memory, pp. 147, 190

다음 상황은 허구가 사실로 둔갑하는 경우이다. 앞의 상황에서는 그 핵심적 현상이 항상 사실적으로 확실한 경우였다. 즉 해밀턴은 코니글리아로를 맞춰 그의 경력이 끝장났다. 또한 케네디 대통령은 실제로 암살당했으며, 챌린저 호도 폭발하여, 사람들이 그 사건에 관해 들었다. 그 세부사항들은 잊혀졌고 오류들로 대체되었다. 그 핵심으로부터 주변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확신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적어도 그 중심적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났으며 기억되었다. 그러나 다음 사례들에서는 기억을 통해 허구적인 이야기가 사실적인 이야기로 바뀌었다.

첫 번째 사례
장 삐아제(Jean Piaget)의 유년기에 관한 책들 가운데 매우 유명한 각주가 있다. 삐아제는 우리가 가장 어렸을 때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존한 기억들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두 살 때의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매우 분명하게 다음 장면을 기억하는데, 나는 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 장면을 믿고 있었다. 즉 나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보모가 밀어주던 유모차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나를 납치하려 했다. 그러자 보모가 그 사람을 막아섰는데, 나는 유모차의 벨트에 채워져 있었다. 나의 보모는 얼굴에 여러 군데 상처가 났으며, 나는 그녀 얼굴의 상처들을 지금도 희미하게 볼 수 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고 짧은 외투를 입고 흰 경찰봉을 든 순경이 다가왔다. 나는 지금도 그 장면 전체를 볼 수 있으며, 지하철 역 근처 어디에서 그 일이 벌어졌는지를 지적할 수도 있다. 내가 열 다섯 살 때 나의 부모는 그 보모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녀는 구세군으로 개종했다고 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의 잘못들을 고백하고 싶어했고, 특히 그 사건의 상으로 받은 시계를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그 모든 이야기를 꾸며댔으며 심지어 얼굴의 상처도 속임수였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는 어렸을 때 그 이야기를 믿었던 나의 부모로부터 그 이야기를 틀림없이 들었을 것이며, 그 이야기를 나의 과거에 투사시켜 시각적인 기억으로 만들었을 것인데, 그것은 기억에 대한 기억이었지만, 거짓이었다. 많은 실제의 기억들이 이런 종류에 속한 것들임이 분명하다"(187-188 각주 1).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결론은 재구성, 시각적 장면, 심지어 새롭게 "기억된" 세부사항들조차도 정확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거짓말이 기억으로 둔갑했으며, 허구가 사실로 둔갑했다.

두 번째 사례
1944년의 영화 [편대와 기도](A Wing and a Prayer)에는 남태평양에서 작전하던 해군 수뢰폭격기 승무원 세 사람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그 피격된 폭격기가 아래로 곤두박질치자 사수는 탈출을 준비하는데, 조종사는 부상당해 움직이지 못하게 된 통신병에게 "우리는 끝까지 같이 타고 가자"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잭 테이트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에 기고한 기사 "1944년 2월 1일, 영국의 비행단 기지"에 썼는데, 여기서는 한 사수가 또 다른 부상당한 사수에게 "진정해, 우리는 끝까지 같이 타고 가자"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는 "이 비행단 기지에서 거의 전설로 유포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런 단서 조항은 그 해 4월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이 이야기를 축약하여 발표한 기사 속에서는 삭제되었다.
로널드 레이건은 1976년과 1980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주장했으며, 1983년 12월 12일, 뉴욕에서 개최된 국회 무공 훈장 수상자 연례회의에서도 반복했다. 그 이야기는 영국해협 상공에서 B-17기 조종사와 사수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사수의 손을 잡고 '걱정 마라, 우리는 함께 타고 간다'고 말했다. 그들이 죽은 후에 국회 무공 훈장이 수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 데일리 뉴스의 워싱턴 지국장 라스에릭 넬슨이 2차 세계 대전 무공훈장 수상자의 인용문 434개를 조사한 결과, 그처럼 용감한 행동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백악관 대변인 래리 스피크스가 그 이야기의 정확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신이 만일 똑같은 이야기를 다섯 번 되풀이하면, 그 이야기는 진실이다"고 대답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편대와 기도]라는 영화를 보았으며,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애독자로서, 자신이 육군에 복무하던 시절에 그런 용감한 행동에 대한 훈장을 추천하는 "인용문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고 주장했다(Cannon 58-60).

레이건이 허구와 사실, 혹은 선전과 역사를 구분할 수 없었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의 기억 속에서 일어난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허구가 사실로 둔갑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비판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레이건이 육군 시절에 읽었다고 기억하는 그런 인용문이 실제로는 없었다고 누가 입증할 수 있는가? 반면에, 그런 인용문이 있었다고 누가 믿는가?

비사실(Non-Fact)이 사실(Fact)이 된다

에일린의 기억[20년 동안 억압되었던 기억으로서, 1969년 9월 22일, 샌프란시스코 근처 포스터 시티에서, 그녀의 아버지 조지 프랭클린이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수잔 네이슨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그녀의 환상에 가까운 지나친 상상력이 지난 수 년 동안의 신문 기사, 텔레비전 방송과 수많은 대화들이 제공한 실제 이야기의 잡동사니들과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것인가?
Elizabeth F. Loftus and K. Ketcham, The Myth of Repressed Memory, p. 93.

세 번째 상황은 비사실이 사실로 둔갑하는 경우들이다. 사건의 세부사항들을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를 꾸며내는 경우들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설명한 상황들 가운데 가장 불안한 것이지만, 앞의 상황들의 논리적 귀결에 이르도록 만든다.
첫 번째 사례
엘리자베쓰 로프투스는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기억하는 것에 대한 실험--이 실험은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결과를 설명한다. "그들이 더욱 오래 동안 기억하려 할수록, 더욱 많은 동창생 이름을 떠올렸다. 다음 페이지의 그래프는 한 여자가 자기 동창생을 기억하는 데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1980:130). 그 그래프는 "기억 시간의 회수"(=10)에 따라 "기억한 [정확한] 이름의 숫자"(=220)를 점으로 찍은 것이다. 그것은 매우 인상적인 것으로서, 열 시간 동안, 600명의 동창생 가운데 220명의 정확한 이름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 그래프에는 "착오"의 숫자(=100)도 나타나 있다. "그 여자는 기억 시간마다 더욱 많은 이름들을 기억해냈지만 또한 더욱 많은 착오도 있었다. 많은 경우에 그 착오는 다른 학년, 혹은 그녀의 인생의 다른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들이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상당수의 이름들은 착오였다. 이 연구에서, 열 시간째에 새로 기억해낸 이름들의 거의 절반은 착오였다"(1980:133). 이처럼 정확한 자료를 갖고 진행한 통제된 실험에서는 기억을 입증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600명의 동창생 가운데 220명을 올바로 기억하고 100명을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그런 비사실적 착오가 쉽게 사실로 둔갑한다. 

두 번째 사례
로프투스는 또한 자기 자신이 진행한 실험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이 실험은 아동들 속에 상처를 주는 거짓 기억을 만들어낸 다음에 그것을 사실로 간주할 가능성에 대해 평가하기 위해 그녀가 고안한 실험이었다. 윤리적 잘못을 피하기 위해 그 상처를 준 사건은 일시적인 것으로서 좋게 끝나는(happy ending) 것이어야만 했다. 예컨대, "어렸을 때 백화점에서 미아가 된 적이 실제로는 없었지만, 그랬던 적이 있었다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Loftus and Ketcham 1994:96). 이 실험은 다음 번의 좀더 과학적으로 통제된 실험의 예비적 단계였지만, 여덟 살에서 마흔 두 살까지의 다섯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대여섯 살 때 어떤 큰 건물에서 미아가 된 적이 있었다고 그 가족들이 (거짓으로) 말하도록 시켰다. 그들 모두 그 거짓 기억을 사실로 받아들였으며, 즉시 세부사항들을 새롭게 꾸며댔다. "그 사람들이 기꺼이 그 기억을 확대시키고 힌트조차 주지 않았던 세부사항들을 꾸며낸 것은 그 기억이 진짜였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였다"(99). 다음의 한 가지 예만 보아도 충분할 것이다.
열 네 살 먹은 소년에게 그 형이 어렸을 때 겪었던 네 가지 사건, 즉 세 사건은 진짜였고 한 사건은 거짓인 사건을 한 문단으로 표현했다. 그 소년에게 닷새 동안 매일 그 네 사건에 관해 쓰고 그가 그 각각의 사건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쓰도록 시켰다. 만일 그가 기억할 수 없다면, 단지 그 사실 자체만을 쓰도록 시켰던 것이다. 다음은 그 거짓 기억과 그에 대해 그 소년이 닷새 동안 기록한 내용이다.   

1981년인가 82년의 일이었다. 크리스는 다섯 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유니버시티 시티 쇼핑몰로 물건을 사러 갔다. 한참 당황했던 우리는 크리스가 울면서 어떤 키 큰 노인(내 생각에 그는 면 셔츠를 입고 있었다)의 손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 노인은 방금 전에 크리스가 눈이 뚱그래져서 울고 다니는 것을 보고 그 부모를 찾아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첫째 날: 그 사람에 대해 약간 기억난다. 나는 "와! 정말로 좋은 분이구          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둘째 날: 그날 나는 너무 겁에 질려서 다시는 가족들을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큰 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셋째 날: 엄마는 내게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기          억이 난다.
넷째 날: 나도 그 노인의 셔츠가 기억난다.
덧새째 날: 그 가게들이 기억나는 것 같다.

크리스는 그 노인과의 대화도 기억하여 "그 사람이 내게 가족을 잃어버렸는지를 물어보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하고, 그 노인이 대머리에 안경을 썼다고 기억했다. 크리스는 그 거짓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자유롭게 꾸며댔다(비록 진짜 사건들 가운데 하나에 대해서는 닷새 동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에 크리스의 어머니는 닷새 동안 계속해서 그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닷새째 되던 날, 그 어머니는 "어쨌건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97-99).

기억이라는 신화

신약성서 속의 예수전승은 여러 세대에 걸친 것이 아니라 단지 몇 십년에 걸친 것이며 단지 소수의 사람들이 간직했던 전승으로서, 이 전승에 대한 연구는 ... 구전전승(oral tradition)이 아니라 구두증언(oral testimony)에 속할 것이다.
      Øivind Anderson, in Jesus and the Oral Gospel Tradition, p. 17

나는 우리가 어떤 것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이 안 된다. 또한 기억이 상상력의 또 다른 이름이라거나,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암시와 사회의 영향을 받아 꾸며낸 것들이라는 주장도 아니다. 그것 역시 말이 안 된다. 그러나 내가 이제까지 말한 경우들은 모두 첫째로, 기억은 믿을 수 있다는 상식적 안도감을 깨트리며, 둘째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기억할 때, 우리는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기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해준다. 이 재구성의 과정은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기억하는 사실들과, 그와 유사한 사건들을 보거나 듣거나 상상한 사실들을 뒤섞어놓는다. 이 재구성의 과정은 세부사항들을 기억하기보다는 그 골자를 기억하며, 주변적인 것들보다는 핵심적인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어느 것이 골자이며 어느 것이 세부사항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목격자가 살인자를 지목하는 과정에서, 턱수염은 골자인가 아니면 세부사항인가, 핵심인가 아니면 주변적인 것인가?) 이 재구성의 과정은 흔히 우리가 실제로 기억하는 것과, 우리가 창조적으로 꾸며낸 것이 똑같이 정확하며 똑같이 진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에 관한 이 장, 즉 실험심리학이 보여줄 수 있으며 인지신경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것에 관한 이 장을 제3장("구전전승의 비밀")과 긴장관계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브라운이 예수의 수난 설화에서 마태오와 루가가 모두 마르코와는 달리 기록한 부분적 일치를 설명하기 위해 구전전승을 이용한 것을 기억하라. 또한 그가 베드로복음을 과거 오래 전에 신약의 복음서들에 대해 듣거나 읽었던 기억으로 설명한 것도 기억하라. 당신은 어떤 기억 이론에 근거해서, 기록된 자료를 이용한 저자가, 오히려 구전전승을 통해 구문론적으로 정확한 회상을 얻음으로써 그 기록된 판본을 무효로 만든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떤 기억 이론에 근거해서, 베드로와 마태오, 혹은 베드로와 마르코,  혹은 베드로와 루가, 혹은 요한 사이의 차이점을 베드로의 부정확한 회상 때문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는가? 그 재구성은 어떻게, 왜 그런 식으로 재구성되었는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제임스 던(James Dunn)은 오병이어의 기사에 관해 설명하면서, "숫자에 관해서는 언제나, 네 복음서들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즉 2천 데나리온 ... 5병2어 ... 5천 명 ... 부스러기 열두 광주리 등이 그렇다"(363)고 썼다. 이처럼 정확한 관찰로부터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확정된 점들은 숫자들이었던 것 같다. 나머지 일치하는 세부사항들은 대부분 그 숫자들에 달려 있으며, 거의 불가피하게 이 세부사항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전개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구전전승에 대해 정확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복음서 기자들이 그 이야기를 되풀이한 확정된 세부사항들은 그 기자들의 표현대로 다듬어짐으로써 그 언어와 다른 세부사항들은 달리 기록되었지만 ... 그 이야기의 실체는 그대로 남았다"(364). 그러나 인간의 기억과 구전전승이 그런 숫자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 숫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아니면 그 이야기의 핵심, 혹은 요지를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그런 숫자들을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만일 후자의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면, 그 구체적 숫자들이 정경 속에서건 정경 밖에서건 한결같이 일치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 이야기가 매우 초기에 의례화(ritualization)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글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더욱 구전전승에 의존하는 집단은 우리들보다 더욱 나은 기억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경우들 모두는 오늘날 문자 문화에 속한 사례들이다. 예수 당시에는 95∼97 퍼센트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기억과 구전이 오늘날과는 매우 다르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기억, 구전, 문헌기록의 교차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장을 통해, 우리가 기억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가 기억에 대해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점을 언제나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목격자들이 항상 틀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를 들어, 만일 목격자의 증언이 검사의 유일한 증거일 경우에는, 그 증언에 대해 이성적인 의심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항상 그래야 한다. 존 보하논과 빅토리아 사이몬즈(John Bohannon and Victoria Symons)가 지적한 것처럼 "목격자의 증언에 관한 연구에서, 확신과 정확성 사이의 상관 관계는 기껏해야 0.40 정도이다"(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