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브라이언 스윔

 


이 책을 집어들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토마스 베리 신부의 사상을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으로서 독자들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얼마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베리 신부는 지구라는 우리의 혹성의 안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단지 현재의 지구만이 아니라, 약 6억 년 전의 지구, 즉 바다에는 생명체들로 가득 차고 땅에는 이끼들로 인해 푸르게 되기 시작하였을 때의 지구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 즈음에 지구의 생명에 눈[眼]이 생겨났다. 이전까지 수십 억 년 동안 생명체들이 발전해왔지만, 아직 시력을 갖지는 못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의식작용에서 시각적 요소를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생명체들이 눈을 갖지 못한 채 발달해 온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실제로 수십 억 년 동안 생명체들은 눈이 없이 발전해왔다. 당시까지는 그 생명체들이 비록 눈이 없어도 훌륭하게 투쟁하였으며 놀라운 전략을 구사하였을 뿐 아니라 힘찬 기운을 경험하였다. 비록 폭포를 볼 수 없었고 푸른 하늘에 매혹당하지 못했으며 첫 번째 빗줄기 속에 드러나는 사막의 색깔을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토마스 베리 신부의 이 글들은 지구를 보게 할 눈을 얻게 해 주는 것과 같다.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지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귀를 다시 조정하게 만든다. 물론 우리는 눈과 귀가 있어서 지구를 감지할 수 있다. 사진, 지리적 탐사, 역사 연구, 문화인류학적 보고서들을 통해 우리는 지구의 상당부분을 더듬을 수 있다. 우리들은 측량, 도표, 지도 등을 통해 지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마스 베리 신부가 가리키는 지구는 그것 이상이다. 베리 신부의 글에는 자주 "우리는 바로 눈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만일 우리가 보고 듣는다면 이처럼 지구를 파괴시키지 않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처럼 어리석게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베리 신부는 "우리가 눈이 멀었으며 귀도 먹었기 때문이다"고 대답한다. 산업사회에 익숙한 우리들의 눈과 귀에는 지구와 우주의 참다운 모습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베리 신부의 이 글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고쳐주는 약으로서, 이 세계 안에서의 우리의 시각적, 청각적, 지적, 상상력의, 감정적, 영적 오리엔테이션을 바로 잡아준다. 이 글들은 새로운 눈과 귀를 만드는 유전학적-문화적 재료들이다.
토마스 베리 신부의 저작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과학의 기본적 진리, 즉 우주는 발전하고 있는 실재라는 진리를 기억해야만 한다. 이것은 전체 우주의 진화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또한 지구라는 혹성의 진화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특히 지구의 눈[眼] 자체의 진화도 계속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십 억 년 동안 지구의 눈은 계속해서 진화해 왔다. 눈만이 아니라 귀, 마음, 감각 등 모든 것들도 계속해서 진화해 왔다. 이 글들은 이처럼 길고 오랜 동안의 발전에서 오늘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5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진화과정은 주로 유전자 구조가 형성하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문화가 등장함으로써 우리의 상징적 구성에는 진화의 중요한 차원이 결합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지구의 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리학, 신경학, 해부학 등을 공부해야 할 뿐 아니라, 우파니샤드, 수트라, 성경, 희랍 철학, 로마와 러시아의 역사, 구석기 시대의 띠, 프랑스 철학, 마르크스주의, 신유교 등 모든 중요한 인간의 문화활동을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쉽게 "중립적"이며 "생물학적으로 확정된" 것이라고 간주하는 지구에 대한 우리의 "파악"은 실제로는 인간의 역사 뿐 아니라 유인원의 역사도 포함하는 오랜 동안의 진화과정의 결과이다.
토마스 베리 신부는 평생동안 우리의 상황에 관한 보편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일에 헌신한 매우 드문 사람이다. 그는 현대와 중세 유럽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인도, 일본, 중국 등의 아시아 문화전통과의 만남을 통하여, 또한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특히 생태학 연구를 통하여, 토착민 특히 북미 원주민 전통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현대 세계의 기업, 경제체제, 기술의 진보, 법적인 전통, 교육의 모색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인문학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쌓았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의 연구를 통해서만 사람의 눈과 정신이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토마스 베리 신부가 우리의 현실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성찰한 결과이다. 그는 때로 복잡한 지식을 완전히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대학의 도서관에 필요할 방대한 양의 논문들을 발표한 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대 전통의 무당처럼, 궁극적인 문제들에 대해 오랫동안 성찰한 후에 사람들을 치유하는 비전을 갖고 등장했다. 그는 단순한 것들, 즉 하늘, 강, 토양, 사람들의 웃음, 살아있는 공동체 등에 관해 말한다. 그는 지구에 관해 말하며, 어디에서나 발견하는 비전, 곧 먼 옛날이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도 발견하는 비전에 관해 말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우리의 생각들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아마도 어느 정도의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눈을 갖게 된 동물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서 충격적인 환희를 경험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짐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토마스 베리 신부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눈을 통해 우리가 지구에 대해 새롭게 경험하게 될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색깔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빛깔들을 드러내주는데, 모든 빛깔들이 우리를 진정시키는 것은 아니다. 소리들은 새로운 의미들로 높아지지만, 모든 의미들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인간의 행동들은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졌지만, 모든 의미가 축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과 고통 모두 속에서 지구는 이 비전을 통해 그 자체에 더욱 친밀하게 접근해 들어간다. 주술과 같은 이런 말들을 통해 우리는 이제까지 미처 보지 못했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지구의 아름다움을 엿보게 된다. 우리는 지구의 모험이라는 창조적인 근원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다는 확신에 사로잡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