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구성
경제 상황에 대한 자세한 탐구는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지만, 우리는 ... 성전과 제사장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비와 연관시켜 몇 가지 점을 고찰할 것이다.... 경제 상황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지만, 나는 세금에 관해 논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금을 논의하지 않고는 그 전반적인 세금 체제 안에서 종교세의 위치를 잘못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E. P. Sanders, Judaism, pp. 120, 159.
이제까지 설명한 것은 이 책 전체의 기본적인 물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물음은 이 책의 행간에, 혹은 이 책의 모든 장면들 배후에 언제나 있는 물음이다. 즉 당신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인간은 육체를 입은 영혼, 자의식을 지닌 육체로서, 영혼과 육체가 구분은 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 일원론적 상호작용인가? 아니면 육체와 반대되는 영혼, 육체 위에 있는 영혼으로서, 육체가 기껏해야 영혼을 산란하게 만드는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영혼을 감금시키는 이원론적 분리로 이해하는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 자신의 감각은 전자를 받아들이는데, 여기서 내가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받아들인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 약한 느낌이다. 나는 이런 나 자신의 인간 이해가 아일랜드인 전통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그 둘 모두에서 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건 나 자신의 인간 이해는 분명히 그렇게 일원론적이다. 나는 전통적 유대교 역시 헬라적 이원론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는 이런 일원론적 인간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고 이해한다. 그런 일원론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당신이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처럼, 종교와 정치, 정의와 사회, 신학과 경제도 분리시킬 수 없다. 예를 들어, 위에 인용한 글에서 틀린 점은 샌더스의 책이 종교는 설명하면서 경제는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다. 틀린 점은 종교가 그 제의가 상징하거나 축하하는 것을 망각한 제의나 의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경제에 대한 설명 없이는 종교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의 하느님은 율법에 따라 계약을 맺은 정의와 의로움의 신이며, 그 계약은 그 땅에서 정의와 의의 백성들과 맺은 계약이다. 당신은 그 "경제 상황"과 분리해서 그런 유대교의 "믿음과 실천"을 설명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그렇게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면, 당신은 "기원전 63년부터 기원후 66년까지"의 기간 동안의 유대교, 즉 100년 동안의 종교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 다음 100년 동안에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세 차례의 참혹한 반란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는 책을 쓰게 될 따름이다. 역사적 예수와 최초의 바울 이전의 기독교 모두를 낳은 전통적 유대교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전통적 유대교는 종교와 정치, 윤리와 경제, 신성과 인간성도 분리시키지 않았다. 이것들은 서로 엉켜 있었으며,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만 이해되었다. 당신은 물론 그것들을 구분할 수는 있었지만, 분리시킬 수는 없었다.
이 책에 대해 내가 원래 붙였던 제목은 Life After Jesus ({예수 이후의 삶}, 혹은 {예수를 뒤따르는 삶})였는데, 이 제목은 나의 아내가 제안했던 제목으로서, 나의 아내는 그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했던 것이다. 나는 이 제목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아내의 해석과는 별도로, 두 가지 의미가 그 속에 적절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After"라는 말의 첫째 의미("이후의")는 시간적이며 연대기적인 의미였다. 이 책은 예수가 처형되기 전부터 예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의 처형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와 함께 했는지에 관한 책이다. 예수와 그의 첫 동행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심지어 로마제국의 십자가 처형조차 그 상호작용을 영원히 종식시킬 수 없었는가? 요세푸스는 그들의 사랑이 계속되었다고 말했다. 타키투스는 그들의 감화력이 확산되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왜? 그들 사이의 원래의 상호작용이 예수 처형 이전부터 처형 이후에도(from before to after) 계속되도록 만들 수 있었던 것, 혹은 심지어 그런 계속됨이 불가피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After"라는 말의 둘째 의미("∼를 뒤따른다")는 패러다임이 되고 통합적인 의미이다. 예수를 뒤따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독점하고 있어서 그 혼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가? 아니면 예수가 보여준 것이 그 생활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모든 사람들이 그 생활방식을 계속하도록 초청한 것인가? 나의 편집자 존 로우돈은 그 제목이 너무 아리송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기독교의 탄생}(The Birth of Christianity)이 그 의도와 의미 전달에 있어 보다 명확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이 이 새로운 제목으로 책을 읽으면서, 나의 원래 제목도 함께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기독교의 탄생은 예수 이후의 삶이며 동시에 예수를 뒤따르는 삶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탄생}이라는 제목은 매우 치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용어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유대교와 매우 분리된 종교를 생각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이런 생각이 정확하지만, 1세기 초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하느님 나라 운동, 예수 운동, 혹은 그리스도 운동, 혹은 또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 역사적으로 정확하고, 우리로 하여금 유대교로부터 분리된 종교를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어느 것도 핵심 문제의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 내가 이 책에서 기독교적 혹은 기독교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언제나 유대교 안의 한 종파(a sect)를 가리킨다. 내가 말하는 기독교적 유대교란 당시 1세기 팔레스타인의 여러 종파들, 즉 바리새파 유대교, 사두개파 유대교, 에세네파 유대교, 묵시종말적 유대교 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문화적 국제주의와 로마의 경제적 상업화에 맞서서 자신들의 옛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던 종파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집단들이 서로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했던 간에, 로마제국이라는 외부적 압력과 경제적 압력이 그 민족 내부의 응집력과 종교적 결속력을 아무리 찢어놓았던 간에, 유대인 내부에서 논쟁이 있었다.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심지어 다른 모든 집단)에 대해 무슨 말을 했던 간에, 사람들이 동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집단에 속하지 않고 다른 집단을 따르는 것에 대해 어떤 비판을 했던 간에, 그 대결은 결코 외부로부터 유대교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내부에서 다른 유대인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심지어 기독교가 결국에는 유대교로부터 갈라졌다고 말하는 것조차 정확한 말이 아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성서적 유대교의 모체와 제2 성전 말기 유대교의 대혼란으로부터 결국 두 위대한 전통, 즉 초기 기독교와 랍비적 유대교가 대두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두 전통은 각기 자신만이 과거와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그들 각자가 모두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상대의 전통 못지 않게 위대하게 도약한 것이며 타당한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그들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아니라, 똑같은 어머니를 둔 두 아이들이다. 물론 가인과 아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 제목의 "탄생"이라는 용어도 똑같이 중요하다. 내가 탄생과 성장을 구분하는 것은 예수의 처형 이전부터 이후에도 최초의 계속됨(that earliest continuation from before to after the execution of Jesus)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예수의 처형에서 곧바로 50년대의 기독교의 확장으로, 바울의 편지들과 도시들, 즉 당시의 자료들을 갖고 있는 시기로 넘어가는 것은 좀더 쉽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앞에서 보야린이 정확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는 플라톤적 이원론에 의해 헬레니즘화한 유대교 속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며, 그처럼 헬레니즘화하지 않은 유대교로부터 어떻게 헬레니즘화한 유대교로 바뀌었는지를 주목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헬라적 유대교 사이에 명확한 구분은 없다. 1세기의 모든 유대교는 헬라적 유대교였다. 그러나 비록 그 오래된 지리적 구분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보다 이데올로기적인 또 다른 구분은 항상 타당하다. 즉 헬레니즘화를 누가 거부했고 누가 수용했는가? 이 질문은 너무 큰 질문이기 때문에, 나는 보야린이 확립한 제한된 컨텍스트 안에서 그 질문을 다시 할 것이다. 즉 1세기 유대교 안에서, 영혼과 육체의 헬라적 이원론이 어디에서는 수용되었으며, 어디에서는 거부되고 저항을 받았는가? 나는 탄생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 질문이 이 책의 밑에 깔려 있는 문제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내가 갈릴리의 마을들과 예루살렘의 길거리에서 재구성하는 최초의 기독교는 플라톤적 이원론에 물들지 않은, 헬라화하지 않은 기독교이다. 이 사실이 이 책의 근본 골격이다.
이 책의 외적인 구조는 역사적 예수로부터 최초의 기독교까지의 계속성을 재구성하기 위한, 즉 기독교 자체의 탄생을 묘사하기 위한 네 개의 핵심 질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에서 다룰 첫째 질문은 도대체 왜 (why)그런 재구성을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정경 복음서들, 즉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의 마지막 장들과 사도행전의 처음 몇 장에 나타난 기본적 이야기를 왜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다. 제2부와 제3부에서 다룰 둘째 질문은 나는 어디에서(where) 나의 자료들을 발견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만일 내가 그런 정경 속의 자료들을 종합하여 이 책을 쓰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어떤 자료들을 갖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서 나의 정보를 얻는가?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30년대, 혹은 40년대의 새로운 자료들을 갖고 있지 않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에서 나의 정보를 끌어내는가? 제4부와 제5부에서 다룰 셋째 질문은 내가 어떻게(how) 그 자료들을 다룰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내가 첫째 질문과 둘째 질문을 풀었다 하더라도, 나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며, 다른 방법이 아니라 바로 그 방법을 사용하는 정당성은 무엇인가? 제6부에서부터 제10부까지 다룰 넷째 질문은 내가 얻을 수 있는 재료들에 나의 방법을 적용시켜서 나는 무엇을(what) 얻는가 하는 질문이다. 가장 두드러진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두 개의 중요한 시작 전승들(two great inaugural traditions), 즉 제6부에서부터 제8부까지의 생애 전승(the Life Tradition)과 제9부와 제10부의 죽음 전승(the Death Tradi- tion) 사이의 구분이다. 생애 전승은 예수의 말씀과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삶에 대해 강조하는 전승으로서, 갈릴리 안에서, 또한 갈릴리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한 전승이다. 한편 죽음 전승은 예수의 부활과 그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사는 삶에 대해 강조하는 전승으로서, 예루살렘 안에서, 또한 예루살렘으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한 전승이다. 비록 과거에는 죽음 전승이 종종 우세하게 되었고, 생애 전승은 거의 인정받지 못했지만, 현재의 도전은 그런 차별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 두 전승 모두를 똑같이 강조하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도전은 그 두 전승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피고, 공동식사 전승(the Common Meal Tradition)을 그 두 전승 모두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인정하려는 도전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의 탄생은 서로 다른 두 장소에서 일어났지만, 그 모체는 단지 하나로서, 그 공동체가 식사를 나눈 것이 유대인들의 정의의 하느님을 이 세상에 현존하도록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