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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 기독교와 망월동 기독교
1991. 3. 30. [크리스챤신문]에 기고한 홍정수의 부활절 "설교" -- 이 글은 91-92년도 감리교 "종교재판"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그는 이 글과 그의 저서 {베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단자"로 파문당하였다. 그는 당시 80년대 한국의 젊은 죽음들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급히 썼다.
1. 서울의 강북에서 한강을 건너가면, 우리 나라 최고의 명당 자리에 이름하여 '국립묘지'가 있다. 독재자 박정희 장군의 묘지도 그 한가운데 있으며, 그 후예들의 묘지도 내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발밑으로는 이름을 알 수도 없는 크고 작은 우리 시대의 영웅적 전사들이 '말없이' 누워 '눈을 감고' 있다. 아마 이것을 보고 누군가가 말했던 모양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참으로 고귀한 삶을 살다간 무명의 병사들도 더러는 거기에 누워, 잠들고 있다.
독일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 하나가 얼마 전 갑자기 그 직을 사임하고 다른 나라로 이민갔다. "저게 뭐요?" "아, 제가 6.25 때 너무나 용감히 싸웠다고 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달아준 훈장들이랍니다." "그래요?" "왜 놀라십니까?" "우리 독일 사람들은 서로를 죽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기 때문이랍니다. 설사 그런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것을 역사 앞에서 참회했을 겁니다. 그것 때문에 훈장을 달아주지는 않았을거예요."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민만 가지 않았다면 그 직원도 아마 동작동에 묻힐 수 있었을텐데.......
2. 얼마 전에 한국 교회들의 장례식 예문집을 들춰보았다({세계의 신학} 7호). 아니나 다를까, 그것들은 이교도들의 장례식 예문과 다를 바 없었다. 세계적인 칼빈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우리가 만일 생물학적 죽음의 극복과 육체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교의학 개요})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따라서 바르트식으로 말하면, 한국 교회의 장례식 예문들 속에 나타나 있는 부활 신앙은 "이교도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 예문집들은 하나같이 영혼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동시에 믿고 있기 때문이다({세계의 신학} 10호 참조). 즉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낙원'이나 '천국'에 들어감으로써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누린다. 이것은 바로 헬라적 신앙이다. 부활 없이도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라고 하는 구원의 종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모자라는지 하나님과 함께 있던 영혼은 공중이나 지상으로 되돌아와 낡은 옷과 같은 '육체'를 덧입게 되는, 소위 '부활'을 또한 믿는다. 이 두 신앙은 엄연히 서로 다른 두 체계의 신앙인데, 우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둘을 동시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인간이 죽어 그 영혼이 하나님과 보다 깊은 관계를 누리게 된다면, 그것으로서 기독교적 구원은 완성된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인간의 편에서 말하면, 임마누엘- 그것 외에 그 무엇이 더 있어야 인간의 구원이 완성된다고 믿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불신앙이다. 마치 선물을 들고 오는 아빠보다는 선물이 더 좋은 철부지 어린아이와도 같은 신앙이라고나 할까.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불로장생을 더 바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런 신앙을 가리켜 이교도적이라고 했지만, 필자는 이런 신앙이야말로 무신론적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한국 교회는 부활에 관한 한 무신론자들이다.
이같은 무신론적, 이교적 부활 신앙은 한국 교회만의 혼란은 물론 아니다. 가톨릭 신학자 발터 카스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부활 증언에 대한 해석학적 토론(의미 규정)이 별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주로 신앙의 증언을 단순하게 반복해서 전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였다"({예수 그리스도}). 즉 기독교는 '그냥' 믿고 전해 주었을 뿐, 부활의 메시지를 알아들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태만은 교회의 설교자들과 일반 신도들로 하여금 부활의 메시지를 제멋대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 우리는 부활의 메세지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 믿어왔다. 용감하게도....
3. 최근의 신학적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가 이렇게 큰 혼란에 빠져 있었던 사실의 배경에는 성서의 언어 세계에 대한 무지가 깃들어 있다. 성서의 언어 세계는 헬라 문화의 언어와 다를 뿐 아니라, 17세기 이후의 지구인들을 지배해 왔던 과학적 사고 방식(모더니즘)과도 현저히 다르다. 이러한 반성을 신학의 초점으로 삼고 있는 신학을 소위 '포스트모던 신학'이라고 한다. 포스트모던 신학의 지적을 충분히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우리는 성서의 언어 세계가 뜻밖에도 한국인의 일상적 언어 세계와 매우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그같은 전제에서 예수의 부활 신앙과 또 한국인들을 향한 그의 부활 사건의 메시지를 정리해 보자.
4. 예수의 언어 세계의 골격이 유태민족사일 것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페르샤 문화와 헬라 문화에 의하여 오염된 세계에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유태인이었다. 아니 그는 그 민족을 의식하며 살았고, 또한 목회했다. 따라서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페르샤적 껍데기와 헬라적 탈을 예수와 그 제자들의 진정한 메시지로 혼동하는 일을 피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절 메시지를 오늘의 한국인들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는 동작동과 망월동을 함께 생각하면서 그것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5. 우리 시대의 의인들, 충신들은 지금 동작동에 묻혀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죄인들, 역적들은 대부분 망월동에 묻혀 있다. 그런데 동작동 부근에 가면 "정숙"이라고 하는 대형 경고판이 붙어 있다. 어르신네들의 영원한 쉼을 혹시라도 방해할까 걱정을 해서이다. 그런데 망월동에도 그런 표지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는 당신들이 말하는 곳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었기에 아직도 눈감지 못하고 있는,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저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하는 뜻으로 말이다.
이 두 공동묘지를 나란히 두고 성서의 부활 사건 이야기를 읽으면 그 의미는 이렇게 분명해진다. 부활 사건은 망월동에 묻혀 있던 죄인, 역적 하나가 "하나님에 의하여 이 역사 속으로 되돌아 오게 된 사건"이요, 또한 천지개벽의 시작이었다. 즉 이미 영원한 쉼을 쉬고 있던 자들 중의 하나가 징그럽게도 무덤을 박차고 되살아난 사건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임금이 역적과 죄인이라고 처형해 버린 불의한 자들, 곧 망월동에 묻혀 있던 자들 중의 하나가 "하나님에 의해서 되살아난 사건"이다. 이것은 썩다가 만 한 인간의 부활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시작을 뜻한다. 이것을 어렵게 말해서 "종말적 사건"이라고 한다. 현존의 정치 질서, 곧 각종 구조적 갈등과 민족적 분단의 세계를 정의로운 세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몸으로, 삶으로 저항하다가 그들에 의하여 고문당하고 죽어갔던 한 청년이 하나님에 의하여 되살아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있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아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처형한 그 죄인이 이제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 세상을 심판할 새로운 정의로서 확정되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부활 사건은 망월동에서 시작되어 동작동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심판 사건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망월동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심판 사건의 시작과 완성(재림)의 중간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6.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는 부활 사건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예수의 제자들과 오늘의 기독교인들의 사명을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다. 성경에 의하면, 부활의 소식은 제자들에게 기쁨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였다(눅 24:38, 막 16:11). 왜? 왜 자기들의 스승의 부활이 불안과 공포가 되었겠는가? 이 비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부활절 메시지는 완전히 이교도적인 설교가 될 것이다. 부활이 인간의 무궁한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 특히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 동작동의 사람들, 다시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는 부자들에게 커다란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정의의 회복)의 시작을 의미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든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부활한 사람이 바로 우리 모두가 역적이요 반역자라고 죽여버린 그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가 되살아나 우리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있다면, 우리는 영락 없이 죽은 목숨이다. 이 어찌 두렵지 않으리요! 당시의 예수의 제자들은 (가룟 유다 만이 아니라) 세상과 짝하여 도망치고 있었다. 즉 이 세상의 훈장을 받으려고 동작동으로 가고 있었다. 따라서 자기들이 역적이라고 하여 죽인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정의의 잣대가 되었다는 소식은,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소식이었다. 망월동에다 거짓 역적들을 묻어놓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안심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다가 동작동에 묻혀 이제는 다 됐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망월동 원혼이 되살아나고 그들에 의해서 세상이 새로와지며, 더 나아가 이미 죽은 자들도 되살아나 그들에 의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면 이 어찌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으랴?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부활은 핵심이지만, 그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정의가 결코 죽지 않았다는 소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삶을 탐하고 죽기를 서러워하는," 비겁하고 허황된 인간 욕망을 보증해 주는 것이 아니다.
1991. 3. 30. [크리스챤신문]에 기고한 홍정수의 부활절 "설교" -- 이 글은 91-92년도 감리교 "종교재판"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그는 이 글과 그의 저서 {베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단자"로 파문당하였다. 그는 당시 80년대 한국의 젊은 죽음들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급히 썼다.
1. 서울의 강북에서 한강을 건너가면, 우리 나라 최고의 명당 자리에 이름하여 '국립묘지'가 있다. 독재자 박정희 장군의 묘지도 그 한가운데 있으며, 그 후예들의 묘지도 내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발밑으로는 이름을 알 수도 없는 크고 작은 우리 시대의 영웅적 전사들이 '말없이' 누워 '눈을 감고' 있다. 아마 이것을 보고 누군가가 말했던 모양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참으로 고귀한 삶을 살다간 무명의 병사들도 더러는 거기에 누워, 잠들고 있다.
독일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 하나가 얼마 전 갑자기 그 직을 사임하고 다른 나라로 이민갔다. "저게 뭐요?" "아, 제가 6.25 때 너무나 용감히 싸웠다고 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달아준 훈장들이랍니다." "그래요?" "왜 놀라십니까?" "우리 독일 사람들은 서로를 죽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기 때문이랍니다. 설사 그런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것을 역사 앞에서 참회했을 겁니다. 그것 때문에 훈장을 달아주지는 않았을거예요."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민만 가지 않았다면 그 직원도 아마 동작동에 묻힐 수 있었을텐데.......
2. 얼마 전에 한국 교회들의 장례식 예문집을 들춰보았다({세계의 신학} 7호). 아니나 다를까, 그것들은 이교도들의 장례식 예문과 다를 바 없었다. 세계적인 칼빈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우리가 만일 생물학적 죽음의 극복과 육체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교의학 개요})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따라서 바르트식으로 말하면, 한국 교회의 장례식 예문들 속에 나타나 있는 부활 신앙은 "이교도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 예문집들은 하나같이 영혼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동시에 믿고 있기 때문이다({세계의 신학} 10호 참조). 즉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낙원'이나 '천국'에 들어감으로써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누린다. 이것은 바로 헬라적 신앙이다. 부활 없이도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라고 하는 구원의 종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모자라는지 하나님과 함께 있던 영혼은 공중이나 지상으로 되돌아와 낡은 옷과 같은 '육체'를 덧입게 되는, 소위 '부활'을 또한 믿는다. 이 두 신앙은 엄연히 서로 다른 두 체계의 신앙인데, 우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둘을 동시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인간이 죽어 그 영혼이 하나님과 보다 깊은 관계를 누리게 된다면, 그것으로서 기독교적 구원은 완성된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인간의 편에서 말하면, 임마누엘- 그것 외에 그 무엇이 더 있어야 인간의 구원이 완성된다고 믿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불신앙이다. 마치 선물을 들고 오는 아빠보다는 선물이 더 좋은 철부지 어린아이와도 같은 신앙이라고나 할까.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불로장생을 더 바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런 신앙을 가리켜 이교도적이라고 했지만, 필자는 이런 신앙이야말로 무신론적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한국 교회는 부활에 관한 한 무신론자들이다.
이같은 무신론적, 이교적 부활 신앙은 한국 교회만의 혼란은 물론 아니다. 가톨릭 신학자 발터 카스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부활 증언에 대한 해석학적 토론(의미 규정)이 별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주로 신앙의 증언을 단순하게 반복해서 전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였다"({예수 그리스도}). 즉 기독교는 '그냥' 믿고 전해 주었을 뿐, 부활의 메시지를 알아들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태만은 교회의 설교자들과 일반 신도들로 하여금 부활의 메시지를 제멋대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 우리는 부활의 메세지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 믿어왔다. 용감하게도....
3. 최근의 신학적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가 이렇게 큰 혼란에 빠져 있었던 사실의 배경에는 성서의 언어 세계에 대한 무지가 깃들어 있다. 성서의 언어 세계는 헬라 문화의 언어와 다를 뿐 아니라, 17세기 이후의 지구인들을 지배해 왔던 과학적 사고 방식(모더니즘)과도 현저히 다르다. 이러한 반성을 신학의 초점으로 삼고 있는 신학을 소위 '포스트모던 신학'이라고 한다. 포스트모던 신학의 지적을 충분히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우리는 성서의 언어 세계가 뜻밖에도 한국인의 일상적 언어 세계와 매우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그같은 전제에서 예수의 부활 신앙과 또 한국인들을 향한 그의 부활 사건의 메시지를 정리해 보자.
4. 예수의 언어 세계의 골격이 유태민족사일 것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페르샤 문화와 헬라 문화에 의하여 오염된 세계에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유태인이었다. 아니 그는 그 민족을 의식하며 살았고, 또한 목회했다. 따라서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페르샤적 껍데기와 헬라적 탈을 예수와 그 제자들의 진정한 메시지로 혼동하는 일을 피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절 메시지를 오늘의 한국인들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는 동작동과 망월동을 함께 생각하면서 그것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5. 우리 시대의 의인들, 충신들은 지금 동작동에 묻혀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죄인들, 역적들은 대부분 망월동에 묻혀 있다. 그런데 동작동 부근에 가면 "정숙"이라고 하는 대형 경고판이 붙어 있다. 어르신네들의 영원한 쉼을 혹시라도 방해할까 걱정을 해서이다. 그런데 망월동에도 그런 표지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는 당신들이 말하는 곳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었기에 아직도 눈감지 못하고 있는,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저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하는 뜻으로 말이다.
이 두 공동묘지를 나란히 두고 성서의 부활 사건 이야기를 읽으면 그 의미는 이렇게 분명해진다. 부활 사건은 망월동에 묻혀 있던 죄인, 역적 하나가 "하나님에 의하여 이 역사 속으로 되돌아 오게 된 사건"이요, 또한 천지개벽의 시작이었다. 즉 이미 영원한 쉼을 쉬고 있던 자들 중의 하나가 징그럽게도 무덤을 박차고 되살아난 사건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임금이 역적과 죄인이라고 처형해 버린 불의한 자들, 곧 망월동에 묻혀 있던 자들 중의 하나가 "하나님에 의해서 되살아난 사건"이다. 이것은 썩다가 만 한 인간의 부활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시작을 뜻한다. 이것을 어렵게 말해서 "종말적 사건"이라고 한다. 현존의 정치 질서, 곧 각종 구조적 갈등과 민족적 분단의 세계를 정의로운 세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몸으로, 삶으로 저항하다가 그들에 의하여 고문당하고 죽어갔던 한 청년이 하나님에 의하여 되살아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있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아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처형한 그 죄인이 이제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 세상을 심판할 새로운 정의로서 확정되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부활 사건은 망월동에서 시작되어 동작동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심판 사건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망월동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심판 사건의 시작과 완성(재림)의 중간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6.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는 부활 사건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예수의 제자들과 오늘의 기독교인들의 사명을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다. 성경에 의하면, 부활의 소식은 제자들에게 기쁨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였다(눅 24:38, 막 16:11). 왜? 왜 자기들의 스승의 부활이 불안과 공포가 되었겠는가? 이 비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부활절 메시지는 완전히 이교도적인 설교가 될 것이다. 부활이 인간의 무궁한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 특히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 동작동의 사람들, 다시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는 부자들에게 커다란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정의의 회복)의 시작을 의미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든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부활한 사람이 바로 우리 모두가 역적이요 반역자라고 죽여버린 그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가 되살아나 우리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있다면, 우리는 영락 없이 죽은 목숨이다. 이 어찌 두렵지 않으리요! 당시의 예수의 제자들은 (가룟 유다 만이 아니라) 세상과 짝하여 도망치고 있었다. 즉 이 세상의 훈장을 받으려고 동작동으로 가고 있었다. 따라서 자기들이 역적이라고 하여 죽인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정의의 잣대가 되었다는 소식은,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소식이었다. 망월동에다 거짓 역적들을 묻어놓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안심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다가 동작동에 묻혀 이제는 다 됐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망월동 원혼이 되살아나고 그들에 의해서 세상이 새로와지며, 더 나아가 이미 죽은 자들도 되살아나 그들에 의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면 이 어찌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으랴?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부활은 핵심이지만, 그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정의가 결코 죽지 않았다는 소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삶을 탐하고 죽기를 서러워하는," 비겁하고 허황된 인간 욕망을 보증해 주는 것이 아니다.












뼈들이여 일어서십시오. / 조헌정 목사(향린교회)
에스겔 37장 1-7절
김준태시인의 ‘오월 광주’는 이렇게 첫머리를 시작합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제가 광주 518 민주항쟁의 소식을 들은 것은 미국에서였습니다. 70년대 박정희유신독재 시절 한국신학대학을 다니면서 데모로 구류를 살긴 하였지만, 8, 90년대의 그 숨막히던 시절 고국을 떠나 있었던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서기가 매우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민주화 통일 운동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오신 선배 목사님도 계시고 30년 전 투쟁의 현장을 지켜온 분들도 계시리라 여겨지기에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간 해외에서 민주화와 통일 운동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과 광주는 저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남아 있는 고향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오! 광주>의 붉은 빛 세 글자로 시작하던 기록영화의 장면 장면들은 저의 젊은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소꿉놀이 친구들과 한가롭게 거닐던 금남로와 도청의 거리들이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탱크와 군화발로 짓이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히틀러의 아우슈비치는 언제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는 오늘의 사건임을 깨달았고, 박정희의 죽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시며 자유와 민주와 통일이 곧 오리라 믿었던 우리의 바람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결국 광주의 피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전두환 노태우 도당으로 이어지는 군부 정권을 막 내리게 만들었고, 이후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김대중, 노무현의 정부 아래에서 우리는 자유와 통일에 대한 광주의 꿈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와 진실화해조사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 얼마나 악랄하고 추잡한 일들이 꾸며지고 억압과 거짓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여 왔는지를 깨달았고 이제는 그런 어둠의 역사들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불과 이명박정권이 출발한지 2년여, 우리는 땅 투기와 강바닥뒤집기에 기초한 경제 숫자놀이와 용산참사로 대변되는 빈익빈부익부의 모순 속에서 또 다른 독재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기업가들 앞에서 자신을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라고 소개하였듯이, 그 이후 남한 땅은 대규모 건설현장으로, 청와대는 현장사무소로 탈바꿈하였고, 이와 동시에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대한민국 토건회사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모두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자기 배만 부르기를 소원하는 돼지 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타오르던 촛불은 잠시였고, 이것이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남한의 현실입니다.)
여기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살아내기를 다짐하는 소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예수 이름으로 예수의 명령을 따라 이곳 우리 민족의 성지인 518 광주 민주묘역에 모였습니다.
80년대 초, 고국 방문시에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있는 저의 유일한 사촌 남동생과 함께 예전의 망월동 묘지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 남동생은 광주항쟁 마지막 날 도청을 떠난 자신의 비겁함을 저주하며 술로 삶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때는 11월, 을씨년스러운 찬바람이 부는 오후였습니다. 여기저기 죽은 자를 그리워하고 그날을 잊지 말자는 문구들이 새겨진 하얀 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의 청년들은 운동가를 부르면서 소주잔을 기울고 있었고 저와 사촌동생 또한 아무 말 없이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 자리에서 만난 하얀 소복을 입은 한 50대 후반의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518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해 아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를 찾아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말인즉 지난 몇 년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 나와 아들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예수 이름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것은 바로 그러한 민중들의 한과 아픔들이 계속 저의 주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학혁명의 자유혼들, 백 년 전 오늘 일제 강제 늑약에 죽음으로 맞선 애국 지사들, 기미년에 독립만세를 부르다 죽어간 수많은 학생들과 농부들, 그리고 장백산에서, 하얼빈에서 직접 총칼을 들었던 안중근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투사들, 정신대와 징병 징용으로 끌려가 전쟁의 총알받이로 죽어간 무수한 우리의 조상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미소의 농간으로 인한 제주43항쟁을 비롯한 수많은 이념의 희생자들, 60년 전 3년간이나 지속된 강대국을 대신한 동족상쟁, 그리고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 이름도 요상한 키리졸브 전쟁연습을 하다 이유 없이 죽어간 천안함 장병들 그리고 이를 돕다가 희생당한 어부들, 죽음 죽음 죽음! 우리 민족의 수난의 아픔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보다 더 무서운 죽음이 우리 한반도를 뒤덮고 있으니 그건 민족의 죽음입니다.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형제자매를 우리를 끊임없이 침략해 온 이웃 나라 백성들보다 더 미워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죽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앞장 서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다는 말입니까? 그래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 하고 있고 돌아서서 상종 못할 민족이라고 침을 뱉고 있습니다만, 돈에 환장한 우리들은 그저 핸드폰 하나, 자동차 한 대 더 팔아 좋다 하며 희희낙락입니다. 어찌 보면 암덩어리가 온 몸에 번져가고 있으니 굳이 총에 맞지 않아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함석헌선생은 우리 민족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요, 마치 세계사의 하수구와 같아 모든 썩은 물이 한반도를 통과하여 가지만, 바로 이 고난을 통해 세계의 운명을 바꿔나갈 새 생명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의 믿음은 아직 거기에 가 있지 못합니다. 그저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억울하고 분할 따름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가 있던 에스겔 선지자 또한 어떡하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꼴이 되었는가 하여 억울함과 분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하느님께 항의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하느님! 과연 당신은 살아계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항의하던 에스겔 선지자에게 어느 날 야훼 하느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밖으로 나가 들 한가운데 서라. 그래 그곳에 가 섰습니다. 거기에는 마른 뼈들이 가득히 널려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묻습니다.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주께서 아십니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 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그래 뼈들이 붙고 힘줄이 이러지고 살이 붙어 커다란 무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억울하고 한 많은 비극의 역사 현장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지금 마른 뼈들이 널려 있습니다. 지금 야훼 하느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주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 이 뼈들을 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이들이 어떻게 무덤 문을 열고 나옵니까?
마가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직접 그 몸을 나타나시지 않고 한 젊은이를 시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터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여라.” 그러나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였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왜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었을까요?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 때문에 덜덜 떨었을까요? 아니면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얘기에 덜덜 떨었을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후자입니다.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다 이루지 못했던 하느님 나라 운동을 계속 이어가라는 말씀이기 때문이고 그 끝은 또 다른 십자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라는 그리스어는 ana-stasis입니다. ana는 다시 혹은 위라고 하는 의미가 있는 부사이고 stasis는 일어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다시 일어선다 혹은 위를 향해 일어선다는 뜻입니다. 곧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위를 향해 일어선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란 예수의 부활을 믿고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곧 갈릴리의 현장에 가서 위를 향해 일어서는 삶을 말합니다. 이 자리는 평화평등의 하느님 나라를 꿈꾸었던 민주열사들이 누워있는 자리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 자리는 죽음의 뼈가 묻힌 곳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 자리는 에스겔 선지자가 경험했던 민중 부활의 현장이요, 하느님 나라 복음운동이 새롭게 시작되는 갈릴리의 현장입니다.
김준태시인의 '5월 그날'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 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