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기독교 운동이 어려운 이유

 

(제목에서.. '대안기독교 운동'이지만 '대안종교 운동'이라해도 내용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기는 <새기운>의 장인 만큼 대안기독교 운동으로 얘기해본다. ) 

 

기득권자들의 세계에서 기독교는 예수 아닌 그들 지도자?들의 즐거운 서식처다

또한 그곳에는 그들의 서식을 도우며 환타지로 매일매일을 연명하는 회중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곳에도 몇몇 분파가 있긴 하지만 기복이 중심에 있기에 큰 문제는 없다

기독교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상 오늘 시장자본주의의 본류이기에 그러하다

금력과 권력에 복종하며 가이사의 것을 운운하는 이들의 해프닝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이해관계로 대동단결하는 수구보수기독인들은 자본과 영원한 한 몸이기 때문이다.

 

원형 예수의 길은 자본과 적대할 수밖에 없는 갈릴리 논리를 갖고 있다

해서 진보적 기독인들은 사회정의에 관한 시대정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숙명을 타고 난다

그러나 진보적 기독인들이라해도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인지라

특정 정당과 정파에다, 3연(혈연/학연/지연)이라는 전근대적 족쇄를 차고 다닌다

게다가 다수는 가족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수행하는 까닭에 그들의 사자후는 언어 성찬에 그치곤 한다

해서 그들은 이론과 실천을 두고 항상 양날의 칼 위에서 고민하는 경계인들인 경우가 많다. 

 

수구보수기독인들은 단순 무식하지만 내꺼를 사수하겠다는 강인한 열정과 일관성이 있다

진보적 기독인들은 상대적으로 유식하지만 내꺼와 사회정의를 공유하겠다는 형용모순을 안고 산다

진보적 기독인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대안기독교 운동이 어려운 이유다

내꺼.. 내꺼..  그렇다 사적 소유.. 그것이 운동을 항상 부차적으로 전락시킨다

대안에서 두 마리 토끼는 없다. '내꺼'를 버릴 것인지 '예수'를 버릴 것인지..

대안기독교 운동을 펼치는 이들이 결단할 때만이 세상을 바꿀 새 기독교 운동의 장은 열릴 것이다.  

 

 

          
△ 엘살바도르 한 마을 벽에 그려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그는 당시 군부세력의 인권 유린 실태를

비판하고 다수 빈민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다 내전이 한창이던 1980년 3월 24일 프로비덴시아 병원
내 경당 미사를 집전하다 극우 군부세력에 의해 암살됐다.
 
 
새로운 기독교를 여는 운동 (새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