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다이아몬드
우리의 진짜 자기를 찾아서
리처드 로어 지음
김준우 옮김
Immortal Diamond
The Search for Our True Self
San Francisco, CA: Jossey-Bass (2013)
1. 책소개
이 책은 생존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된 시대에 우리가 잊고 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의 자기정체성과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깨우쳐준다. 40년 넘는 사목활동을 통해 영적 지도와 심리치료를 병행하신 프란치스코회 신부님이 쓰신 이 책은 우리가 참된 자기정체성을 발견할 때 얻게 되는 온전한 기쁨과 자유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그것은 우리의 덧없는 “가짜 자기”에 대해 죽고, 불멸의 다이아몬드인 “진짜 자기”를 찾는 길이다. 자기발견의 길은 종교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의 에고 중심적인 자기 정체성/생활방식과 피해자들의 자기 정체성/생활방식이 전혀 다를 바 없다면, 나의 변화를 통한 구조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들 속에 본래 주어진 신적인 DNA가 있으며,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모든 사람들이 평생 추구하는 영적 여정의 패턴이라고 보는 저자는 왜 우리가 대부분 가짜 자기에 사로잡혀 있는지, 죄를 짓는 것은 왜 가짜 자기인지, 우리의 에고는 왜 모든 변화에 대해 극구 저항하는지, 사람들은 왜 하느님을 원하지 않는지, 왜 은총 대신에 도덕주의적인 종교를 원하는지, 종교는 왜 사람들의 가짜 자기를 강화시켜 폭력적인 바리새인으로 만들기 십상인지, 우리의 상실, 비탄, 절망, 실패처럼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를 통해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어떻게 진짜 자기라는 다이아몬드를 만드시는지, 십자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우리 영혼의 밭에 숨겨진 보물을 캐내어 그리스도의 부활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지, 상처와 죄인의 상징인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게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는지, 교회 전통 중심의 가톨릭교회와 성서 중심의 개신교의 심각한 한계는 무엇인지, 호흡기도와 몸 기도는 왜 필요한지, 우리의 저항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밝혀준다. 십자가와 부활을 대속신앙이라는 부정적 관점 대신에 우리의 에고(ego)의 변화와 신화(theosis)라는 적극적 관점에서 해명하는 이 책은 우리를 은총의 신비 앞에 벌거벗게 만들며, 영혼의 깊은 목마름을 채워주어 담대하도록 도와준다. 특히 저자가 평생 동안 묵상과 연구를 통해 깨달은 직관들을 서술한 책이기 때문에, 그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최근에 발표한 다른 책들, 특히 Things Hidden: Scripture as Spirituality (2008); The Naked Now: Learning to See as the Mystics See (2009); Eager to Love: The Alternative Way of Francis of Assisi (2014); Silent Compassion: Finding God in Contemplation (2014)에서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부분들을 역자주로 많이 덧붙였다.
돈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나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사람들이 보통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가짜 자기"를 내려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쓰라린 상실과 실패를 하느님은 어떻게 불멸의 다이아몬드로 만드시는가?
율법과 도덕 중심의 종교를 예수는 왜 은총과 잔치, 용서 중심으로 바꾸셨는가?
그리스도교는 왜, 또 어떻게 하느님의 성육신을 탈육신의 종교로 둔갑시켰는가?
십자가 보혈에 의한 대속은 어떻게 파시스트들의 세상 구원 논리로 둔갑하는가?
살인자들과 어릿광대들의 세상에서 문명의 "위대한 전환"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전통 중심의 가톨릭교회와 “오직 성서만”의 개신교의 심각한 한계는 무엇인가?
“리처드 로어 신부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마치 모닥불 둘레에 앉아 마을의 원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우리는 항상 그 이야기가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지 표현할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근원에 닿는 깊이가 있고, 분별력이 있으며, 지혜롭고 열정이 넘치는 이 책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 Rob Bell, 『사랑이 이긴다』, 『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 저자
“이 책은 용기 있으며 정직하게 살아온 삶이 맺은 아름다운 열매이다. 그처럼 깊은 지혜를 이처럼 우아한 단순함으로 표현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Cynthia Bourgeault, The Wisdom Jesus, The Meaning of Mary Magdalene 저자
“이 책의 힘은 결코 과장할 수 없다. 외과의사의 예리한 집도 기술과 프란체스코회의 심장을 지닌 리처드 로어 신부는 우리의 신앙을 형성했던 오해들과 가짜들을 남김없이 긁어낸다. 그리고는 현기증 일으킬 정도로 관점의 변화와 하느님과 인간의 친밀한 사랑을 맛보게 해준다. 그의 문장들마다 진정한 원로와 탁월한 안내자의 선물들이다.”
― Paula D’Arcy, Gift of the Red Bird, Waking Up to This Day 저자
ISBN 978-89-97339-20-4 03230
값 12,000원
리처드 로어 신부(1943- )는 프란치스코회 사제로서, 애니어그램 등 20권 이상의 주옥같은 책을 발표했으며, 이 책은 그의 대표작이다. 1961년에 수도회에 입회하여, 1971년에 사제품을 받고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새 예루살렘 공동체”를 설립했으며, 1986년에는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행동과 묵상 센터”를 설립하여 현재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9년에 애니어그램을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그는 세계 여러 나라들을 다니면서 강연과 피정을 인도했다.
성서학을 전공했지만 세계종교, 천체물리학, 생물학, 심리학의 통찰력을 폭넓게 받아들일 정도로 넉넉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그는 사상적으로 성 프란체스코, 존 둔스 스코투스, 동방교회 교부들, 토마스 머튼, 카를 융, 떼이야르 샤르댕, 마틴 부버, 임마뉘엘 레비나스, 요하네스 뱁티스트 메츠, 일리아 델리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성서의 해방적 특성, 행동과 묵상의 통합, 성육신 신비주의, 공동체생활, 정의와 평화, 남성의 영성과 여성적 영성, 애니어그램과 개성에 관한 책들을 발표했다. 성육신 신비주의 전통과 프란체스코의 평화주의 전통에 서 있는 그는 에고 중심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경쟁과 갈등, 비극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며, 예수 그리스도가 체험한 하느님과의 일치를 따르는 불이(不二) 방식의 사랑, 체험 중심의 묵상 전통을 통해 온전한 인격과 평화 실현의 토대를 마련해준다.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영향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성육신을 탈육신으로 둔갑시켰다고 믿는 그는 예수의 복음에 철저하며 토마스 머튼을 이어 묵상 전통을 강조한다. 그는 경전과 우주와 인간의 영혼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와 사랑을 통전적으로 찾고 있다.
목차
초대하는 말씀 진짜 자기라는 불멸의 다이아몬드 __ 9
머리말 __ 19
1장 “진짜 자기”란 무엇인가? __ 29
2장 “가짜 자기”란 무엇인가? __ 55
3장 무엇이 죽고 누가 사는가? __ 85
4장 체험이라는 칼끝 __ 93
5장 당신이 그분입니다 __ 121
6장 그것이 진실이라면, 어디에서나 진실이다 __ 151
7장 총부리 앞에서의 각성 __ 163
8장 만물과 친밀하게 __ 185
9장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__ 201
에필로그 __ 213
부록 1 진짜 자기와 가짜 자기 __ 215
부록 2 은유들의 모자이크 __ 218
부록 3 무덤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태도 __ 222
부록 4 머리에서 가슴 속으로: “성심” __ 224
부록 5 아담의 호흡: 진흙으로부터 기도하기 __ 227
부록 6 지금 부활을 실천하는 열두 가지 길 __ 230
참고도서 __ 232
옮긴이의 말 __ 237
본문 속에서
영성은 배우는 것(learning)보다는 알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unlearning)이 훨씬 더 중요하다.
예수님을 비롯한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자아가 있고, 내려놓아야 하거나 “부인해야” 하는 자아가 있다고 분명히 가르친다(마르코 8:35; 마태오 10:39, 16:25; 루가 9:24; 요한 12:25).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짜 자기(스스로 조작해낸 자기)에 너무 매혹당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진짜 자기를 의심하고 거절해왔으며, 때로는 진짜 자기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염려와 불안 속에 산다. 우리는 가짜 자기를 만드는 데 워낙 많은 시간을 쏟기 때문에, 이 가짜 자기가 진짜 자기가 아니라거나 “나” 자신이 아니라고는 전혀 짐작하지도 못한다. 심지어 많은 신자들조차 매우 “그리스도교적인” 가짜 자기를 만들고 손질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기 때문에, 자신의 핵심적 자아 혹은 진짜 자기는 전혀 건들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는다(에페소서 4:24). 그런 신앙생활은 주로 에고의 가식 행위에 불과하며 결국에는 헛된 믿음으로 끝난다.
우리가 성공했다고 해서 진짜 자기로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성공은 당신이 젊어서 진열한 장식품에 불과하다. 성공이 우리에게 삶의 여정을 위한 어떤 계기는 마련해줄 수 있겠지만, 삶의 진정한 목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성공한 순간에는 자신이 훌륭하며 제대로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잠시뿐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우리의 가짜 자기를 내려놓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고착되어 있으며 덫에 걸려 있다는 뜻이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전통적인 용어가 죄였다.) 이것은 단지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영적으로 조숙한 사람들은 대개 비교적 일찍 자신의 가짜 자기를 간파한다. 많은 사람들은 나처럼 늙어서도 여전히 가짜 자기를 옷 입고 있다(나는 이제 예순아홉 살이다). 당신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도 가짜 자기만 붙들고 있다면, 영원히 계속될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덧없다. 이런 옷들은 주로 우리의 정신적 에고가 만들어낸 “우연한 것들”이다. 우리의 가짜 자기는 변하고, 우리가 죽으면 사라지고 만다. 오직 우리의 진짜 자기만 영원하다.
여러분이 진짜 자기를 발견하면 여러분의 어깨에서 수십 킬로그램의 무게가 떨어져나간 것처럼 가벼움을 느낄 것이라고 여러분에게 나는 약속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도 없고 보호해야 할 필요가 없다. 진짜 자기로 살아가는 일은 훨씬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참된 하느님을 만나는 것과 진짜 자기를 만나는 것은 대체로 동시에 경험하게 되며 둘은 함께 성숙해간다.

옮긴이의 말
어둡고 힘겨울수록 떨쳐 일어나 마음속 촛불을 밝혀야 한다. 상처들이 너무 많아 악몽에 시달릴수록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닦아야 한다. “살인자들과 어릿광대들의 세상”(엘리 위젤)에서 영혼이 피폐해질수록 생명의 신비와 인간의 존엄성을 신뢰해야 한다. 아이들의 목숨과 꿈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들의 억울함이 하늘에 사무칠수록, 청년들의 절망이 깊어갈수록, 인간의 생명권과 공동선을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마저 무너져 내리고 파시즘의 망령이 덮쳐올수록, 더욱 밝고 담대하게 자기 정체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이라는 거대한 탁류가 바닥 모를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수록 인간의 아름다움과 사랑만이 우리를 견딜 수 있게 하는 희망이라는 믿음을 놓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붕괴로 인한 수단, 시리아, 예멘 등의 내전사태를 보면서 10년 후에는 본격화될 전 지구적 식량폭동을 예상하며 참담했던 나에게 로어 신부의 글(『생태 영성』)은 다시 믿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하느님의 성육신이 빅뱅에서 시작된 은총임을 역설했다.『벌거벗은 지금』(Naked Now, 2009)과 『프란체스코의 다른 사랑』(Eager to Love, 2014)은 내 눈에서 또 다른 비늘을 벗겨냈다. 그리스도교가 예수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성육신(incarnation)을 탈육신(excarnation)으로 둔갑시켰다고 믿는 그는 역사의 모든 비극의 근본 원인이 에고중심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믿음과 교리 중심의 종교에서부터 신비주의 전통에 기초해서 삶의 모순과 역설을 포용하는 비이분법적(non- dual) 사랑과 묵상 중심의 종교로 변화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책을 읽었다. 하느님은 우리의 상실, 비탄, 절망, 원한, 실수, 패배처럼, 빼앗기고 짓밟히고 견디기 힘든 삶의 무게들을 통해 우리의 피눈물을 다지고 또 다져서 우리의 진짜 자기라는 독특한 다이아몬드로 만드시며, 짙은 어둠 속에서 그 보석을 캐내는 것이 바로 우리를 부활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해석이 충격이었다.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죄책감은 자기를 파괴할 정도로 깊고 처절한 것이지만, 이런 상실과 아픔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짜 자기라는 돌무더기를 헤치고 진짜 자기를 찾도록 인도하시며,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처럼 “끝장난” 상황 속에서 그리움을 부둥켜안고 하늘의 뜻을 찾는 이가 마침내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시스템이 무너지고 생지옥으로 바뀌는 근본 원인도 우리 자신의 “소아” 중심적 삶의 방식이 구조화된 탓이며, 생지옥 속에서 존엄성을 지키는 길은 진짜 자기를 발견하도록 인도하시는 분을 내 안에 모시는 길이다. 탐진치 삼독(三毒)의 뿌리를 뽑아내는 길도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내 안에 계신 분의 사랑 앞에 벌거벗은 채 섬으로써 가짜 자기를 벗어나는 길이다. 구조악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에고의 집착과 영적인 미망에서 비롯되기에, 문제의 증상이 아니라 그 뿌리(에고)에 직접 도끼로 내리치는(마르코 3:10) 이 책은 내가 그동안 번역한 많은 책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전을 받은 책이었다.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된 이들을 생각하며 “실패자들(losers)을 위한 로어 신부의 복음”을 번역했다.
이 책은 생존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된 시대에 우리가 잊고 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각자도생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깨우쳐준다. 나의 참된 정체성을 찾고 내 인생의 본래적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내 안에서 먼저 죽어야만 하는 것은 흔히 “신본주의자들”이 말하듯 인성이나 주체성이나 육체가 아니라, 가짜 자기이다. “폭력이 구원한다”는 신화가 인류 역사를 지배하게 된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타인을 향해 폭력을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절대적 가치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이런 절대적 가치들은 집단의 내부에서 밖을 바라보는 에고 중심의 이분법적 사고방식, 즉 남들과 비교하고 판단하고 경쟁하는 양자택일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는 체제의 밑바닥에서, 가장자리에서, 바깥에서 전체와 연결시켜 부분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 즉 “둘이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불이적(不二的) 사고방식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절대적 가치들을 상대화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는 마음과 용서, 포용을 통해 에고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도록 안내함으로써 생지옥 속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셨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고난이며 사랑이다.
성서의 예언자들은 악마가 장악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서 하늘에서 내려올 메시아나 정치군사적 영웅만이 아니라, “남은 자들” 속에서 참사람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음에 할례를 받는” 새로운 언약을 통해 인간이 새롭게 창조되는 날을 기다렸다.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서로 섬기면서 당당하게 고난을 견딜 희망의 근거는 예수가 “안티 메시아”(anti-Messiah)였다는 점이다(Rosemary Reuther, 2014: 203). 세례자 요한을 비롯해서 유대인들이 기다려왔던 메시아는 다윗 왕과 같은 영웅적인 전사, 강권적이며 폭력적이며 일방적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인물이었다. 이들은 사람들의 복수심을 일시적으로 충족시킬 수는 있어도, 세상의 문제들은 전혀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예수는 메시아주의(“폭력이 구원한다”)가 얼마나 위험하며 비주체적이며 무책임한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화된 자유인이 되어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를 기대하시는 하느님을 믿고(로버트 펑크), 친밀하며 비폭력적인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나눔과 섬김을 통한 평등공동체를 세우고 확대하는 방법뿐이라는 것을 예수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예수는 세례자 요한이 품었던 미래에 대한 소망과 묵시를 현재의 사랑과 섬김, 분배정의 구현을 통해 이루어나가는 길을 찾았다(토마스 쉬한, 도미닉 크로산). 예수가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제자들의 투사를 매우 경계한 대신에 모든 이들에게 참사람의 길을 걸어가도록 용기와 힘을 실어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월터 윙크). 따라서 예수가 꿈꾼 후천개벽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개인의 철저한 변화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에 이르는 미륵상생의 길이라고 믿는다.
전통중심의 가톨릭 전통과 성서중심의 개신교 전통 모두를 극복하는 프란치스칸-웨슬리안적이며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인간, 하느님, 예수, 성령, 복음, 부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재해석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참사람의 길을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서 온갖 상처들로 인해 지치고, 자신과 세상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해 피폐해진 영혼들이 하느님의 신비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영적 담대함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