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신학적 의미와 사목 과제 -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구를 위해 프로테스트하고 있다. 또한 속량중심의 신학 대신에 창조중심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중심주의를 거부하고 신 중심주의적인 신학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이 없어지게 되기 쉽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로서는 교종의 회칙을 "예수의 복음"과 직결시켜 고백하는 과제가 필요하다. 예수의 복음은 지배체제를 구조적으로 변화시켜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대승적 차원이 중요하지만, 소승적 차원의 개인적 변화와 구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승적 차원의 사회적이며 생태적인 구원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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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아이들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식민지의 아들 예수가 경험한 현실 역시 제국의 폭력, 지주들의 폭력, 성전의 폭력이었다.
로마제국의 목표는 정의로운 세계 건설이었으며, 그 방법은 승리, 곧 정복전쟁과 반란진압을 통한 승리가 평화를 가져다주며, 평화가 선행되어야 정의로운 세계 건설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로마의 제국신학자들 역시 은총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것은 비너스 신의 은총, 승리의 여신의 은총, 전쟁의 신, 바다의 신, 군대의 신의 은총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로마의 제국신학자들 역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주장한 것은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주님," "죄를 속량해주시는 분"이신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믿음과 로마제국의 질서와 가치들에 대한 믿음이 정의를 가져다준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제국은 정의로운 세계를 건설한다는다는 대의명분 아래 정복한 지역의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면서 잔인하게 학살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다가 노예로 부렸던 폭력의 체제를 만들었던 것이다.
지주들은 부채를 갚지 못하는 소농들의 저당을 빼앗고 소작농들의 자녀들을 부채노예로 삼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라고 주장했으며, 성전의 지배자들 역시 하느님의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과 병이 들어 성전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죄인들로 차별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했다. 성전은 거룩과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선택했던 것이다.
예수의 하느님이 비폭력적 하느님이었던 이유는 예수가 이런 폭력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것에 대한 모순을 깨닫고,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폭력이 아니라 무차별적이며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하느님의 법이 아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측은지심이 하느님의 본성이며 인간이 거룩함과 정결에 이르는 근본이다.
현재의 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라 식수난과 식량난과 같은 총체적 위기가 장기간 지속되며 깊어갈수록,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잔인해지기 마련이며 더욱 폭력에 의존하기 십상이다. 서북청년단이나 나치 친위대원들, 남아메리카대륙의 살인마들 거의 모두가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학살에 앞장선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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