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감리교 종교재판의 전말/ 동작동 기독교와 망월동 기독교

by 한기연 posted Nov 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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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연 2016.01.18 14:39 글쓴이

    The Man He Killed


    by Thomas Hardy
     

    Had he and I but met

    By some old ancient inn,

    We should have set us down to wet

    Right many a nipperkin!

     

    But ranged as infantry,

    And staring face to face,

    I shot at him as he at me,

    And killed him in his place.

     

    I shot him dead because - 

    Because he was my foe,

    Just so: my foe of course he was;

    That's clear enough; although

     

    He thought he'd 'list, perhaps,

    Off-hand like - just as I -

    Was out of work- had sold his traps -

    No other reason why.

     

    Yes; quaint and curious war is!

    You shoot a fellow down

    You'd treat, if met where any bar is,

    Or help to half a crown.
     
     

    그가 죽인 사람
     
    그와 내가
    오래된 한 선술집에서 마주쳤더라면
    우리는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일 수도 있었겠지
    단번에 여러 잔의 맥주를!
     
    하지만 보병으로 배속되어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며
    그가 나를 향해 총을 쏘듯 나도 그를 향해 쏘았고
    그는 내 손에 죽고 말았네
     
    나는 그를 죽였지
    그가 나의 적이었기 때문에
    그래, 그는 나의 적이었어
    그건 아주 분명한 사실이야, 허나 그래도,
     
    아마 그도 나처럼 별 뜻 없이
    군인이나 되겠다고 생각했을 거야
    일자리도 잃고, 세간살이마저 처분해버렸으니
    그 밖에 다른 이유는 없었을 거야
     
    그래, 전쟁이란 참으로 이상한 거야!
    우리가 선술집에서 만났더라면
    술도 사고 돈도 좀 보태줬을지도 모를
    그 사람을 내 손으로 쏴 죽이다니

    ----------------
    개인적으로 "냉천동 잔혹사"를 떠올릴 때 가끔씩 생각나는 시다. 냉천동에서 만나지 않고 어디 다른  대학이나 어느 선술집에서 만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냉천동에서 만나 그처럼 못되고 험한 꼴들을 보였구나. 시인은 비록 전투 현장에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부득이 저지른 짓에 대해서조차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계속 머뭇 머뭇거리면서 자신의 깊은 상처와 슬픔과 회한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 냉천동 사람들과는 매우 달랐지만 말이다. 
    
  • 한기연 2017.12.27 21:18 글쓴이

    성한 신학교가 하나도 없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1735


    신학교는 지금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3905


    2017년 신학교 학내 사태 종합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5066


    


    오랫동안 참으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지극정성으로 존중하며 선후배 사이에도 동역자로서 서로 아끼며 돌보아주어야 하는 곳이 신학교이며,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들임을 실제로 경험해야 하는 곳이 신학교여야 하지만, 도대체 왜 온갖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며, 심지어 학내사태가 마무리되는 과정에서는 보통 정치목사들이 교수들과 한패가 되어 학생들은 대체로 일방적으로 패배하든가 아니면 타협하고 마는가 하는 문제는 정말로 궁금한 수수께끼였다.


    일반대학에서는 선배라고 해서 후배들에게 상당히 친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반말을 지껄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신학교 선배라는 자들 가운데는 초면에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를 향해서도 반말을 지껄이는 자들이 많았다. 심지어 1980년대에는 신학교 기숙사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빠따를 치는 것이 전통이 되기도 했으니, 참으로 기막힌 모순이다.


    또한 이사회는 흔히 정치목사들이 집결하는 기구이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왜 교수이며 목사라는 사람들이 그토록 터무니없는 짓들을 벌이는가? Ph.D.가 Permanent Head Damaged를 뜻한다는 농담이 신학교에서처럼 자주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들이 또 있을까?


    실제로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선 자들이 다름 아닌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과 신학자들이었던 이유는 돈 큐핏의 <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에 잘 설명되어 있다. 성전중보체제는 하느님과의 직접적 만남을 가르치는 직접 종교를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위협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제사장과 같은 종교 브로커가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예수의 직접종교를 제사장들과 신학자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종교재판 이후 20여 년이 지나서, 신학교의 일반적인 몰상식과 잔인함의 원인을 찾은 것은 리처드 로어 신부를 통해서였다. 특히 <야생에서 아름다운 어른으로: 남자들의 영성에 관한 성찰 >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근본 문제는 성직자라는 신분이 최고의 자기 방어적 페르조나를 갖게 만들며, 또한 시골 출신이 비교적 많은 신학교에서 남들보다 성적 잘 받아 유학가고 박사학위 받고 돌아와 교수에 임용되면, 그야말로 인생에서 멈춤 없이 승승장구한 성공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라서, 에고가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팽창되기 쉽기 때문이다. 요나처럼 인생에서 뼈아픈 실패나 좌절을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한 성직자나 신학교 교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거나 십자가의 자기비움, 겸손을 배울 기회가 그만큼 없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솔직하게 벌거벗은 채로 자기 그림자를 성찰하는 일이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대학들에 비해서 온갖 해괴하고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기 쉬운 곳이 신학교 아닐까 싶다. 


    신학교들이 이처럼 몰상식하고 잔인한 곳이 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인 것으로 생각된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신학교 교수들이 대체로 일반대학 교수들에 비해서 연봉이 적어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 우애와 유머와 동지의식이 깊었지만, 1982년부터 신학교 학생 정원이 대폭 늘어남과 함께 1987년 이후부터는 신학교 교수들의 연봉이 대폭 올라가고 심지어 때로는 일반대학 교수들 연봉보다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상당수 교수들이 맘몬이라는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자 점차 서로 돌봄은 사라진 대신에 시기심과 지독한 파벌들이 생겨나고 우애와 동지의식도 사라지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악령에 사로잡혀 있으니 "성한 신학교가 하나도 없다"는 현실이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고 신학교에 온 이들에게 이처럼 신학교가 사랑의 공동체로서 천국을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지옥을 경험하는 곳이라는 혹독한 모순을 겪게 하시는 데에는 어떤 뜻이 있지 않을까? 냉혹한 정글 속에 던져 넣으심으로써 교회 현장이라는 곳이 흔히 살벌하고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현장임을 미리 깨닫게 하며, 마치 원시부족들의 잔혹한 성년식처럼, 순수한 영혼들이 피눈물을 통해 유약함에서 벗어나도록 단련하여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인간의 양면성과 특히 학자들의 위선을 깨닫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예수처럼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지는 못한다 해도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앞세우는 냉혈한이 되지 않고, 분별력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도록 단련시키는 한편 여러 유형의 반면교사를 통해 그런 몰상식과 냉혹함을 결코 배우지 말도록 신학생 시절부터 혹독하게 훈련시키시는 은총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온갖 상처들과 그림자를 직시하지 못한 채, 지독한 열등감이든 시기심이든 명예욕이든 맘몬이든 악령에 사로잡혀 눈물을 잃어버린 괴물이 될 것인지, 아니면 십자가의 고난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문이라는 가르침처럼, 모순과 역설마저 끌어안고 함께 연대하여 피뢰침처럼 사람들의 증오심과 적개심마저 온몸으로 받아 녹여내겠다는 결기와 모든 사람들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끈질기게 간직하는 강인한 사랑의 전사가 될 것인지는 각자 경험한 은총에 따른 선택과 수행의 결과일 것이다. 또한 신학교는 "한 분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우리의 피붙이로서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우고, 예수는 그 진리를 위해 죽었다는 점을 배우는 곳이지만, 몰상식과 폭력이 자주 나타나는 교회와 신학교 안에서 완장차고 설쳐댄 참으로 못난 선배들이 저지른 모든 어리석음과 폭력의 죄업을 씻어내는 길이란 바로 남은 고난을 온몸으로 걸머지고 험난한 역사의 고개길을 넘어갈 방법을 찾는 거룩한 길이며, 그래야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갈 수 있다는 것 역시 후배들의 피할 수 없는 몫이라는 것도 엄중하게 깨닫게 하시는 정화의 장소일 것이다. 사랑과 따스함이 없는 신학은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으며, 신학사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신학도의 삶 자체이며, 또한 신학 박사들보다 청소부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더 깊을 수 있다는 말은 신학생 모두가 평생 기억해야 할 충고일 것이다.



  • 한기연 2018.01.18 13:01 글쓴이

    국민의 절반이 가톨릭 신자이고 그 나머지는 루터교인인 나라, 가장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나라인 독일에서 홀로코스트(the Holocaust)가 일어났다. 그리스도교는 이 문제를 반드시 다루어야만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 그렇게 전적으로 무력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희생양이신 예수님을 예배한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가 역사 속에서 수없이 희생양을 만들어온 주된 사람들이 되었다. 유대인, 이단, 죄인, 마녀, 동성애자, 가난한 사람, 다른 교단, 다른 종교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악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고 거기에서 자신은 의롭다고 여기며, 그 악을 미워하는 패턴은 모든 사람들의 본성 속에 있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악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지 않은가? 아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사고 과정, 즉 배타적인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항상 어떤 차원에서는 폭력적인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 리처드 로어, <성서의 숨겨진 지혜들>

    

  • 한기연 2018.01.24 15:30 글쓴이
  • 한기연 2018.02.09 19:42 글쓴이


    1894년 9월 말, 전봉준이 2차 봉기를 준비하자, 일본군과 관군은 "농민군을 모조리 섬멸하라"는 명령에 따라 전국을 폐허로 만들어나갔고, 마침내 해월 선생은 "앉아서 죽기보다야 서서 죽는 게 낫다"며 대동원령을 내렸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공주공방전은 마침내 11월 8일부터 4일간 우금치에서 총력전을 벌였으나 패배하여 수만 명이 살해되었고, 도망친 농민군들은 그 이후 나주, 장흥, 강진, 보은, 영암, 해남 등지에서 토벌군에 의해 수만 명씩 학살당하고, 얼어죽고 굶어죽은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다.


    광야의 떨기나무처럼 이름없는 이들이 때로는 그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불타오르고 학살당하지만 그 저항의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고 자녀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려다가 처절하게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거나 연대하는 기쁨을 통해 거룩함에 참여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어느 누구의 영혼도 어떤 이유에서건 파멸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 한기연 2018.02.23 11:00 글쓴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일제의 그림자 / 서승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211026001&code=990100

     

    어린 아기들까지 학살하는 이런 잔인성이 일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 모두에게 있다는 점은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잔인해질 수 있다. 특히 어느 집단이든 우두머리에 있는 사람의 탐욕과 오판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고백은 우리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고백이며 오직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