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심층연구 시리즈 02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21세기를 위한 창세기
Not in God's Name
Confronting Religious Violence
by Rabbi Jonathan Sacks.
Schocken Book, 2015.
Jonathan Sacks (1948-2020년)
랍비 조너선 색스는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이며 철학자, 성서주석가로서, 영국연방에서 가장 큰 회당 조직인 연합히브리회중의 최고 랍비를 22년 동안(1991-2013년) 역임했다. 많은 대중 강연뿐 아니라 3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한 그는 “인생의 영적 차원을 가르친 특별한 공헌”을 인정받아 2016년에 템플턴상을 수상했으며, 열여덟 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창세기에 대한 랍비들의 치밀한 해석전통과 성서문학비평(특히 롤랑 바르트)을 토대로 창세기를 철저히 재해석함으로써, 창세기가 전혀 뜻밖의 놀라운 메시지를 지녔으며, 21세기를 위해 매우 절실한 책이라는 점을 확신시켜준다. 십자군전쟁, 종교전쟁, 마녀사냥,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역사 이후에도, 9/11 사태 등 종교적 테러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저자는 그런 종교적 폭력을 “이타주의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그 원인들을 사회학(집단형성), 심리학(정체성), 철학(이원론), 신학(희생양)의 관점에서 분석한 후, 창세기에 나오는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관계 이야기들을 철저하게 재해석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각각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언약의 유일한 상속자라는 믿음 때문에, 세 종교 사이의 충돌과 폭력이 그치지 않았다. 따라서 저자는 그 믿음의 원천인 아브라함의 선택과 언약 이야기 밑에 깔린 카운터 내러티브(counter-narrative)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선택이 본래 무슨 목적과 의미인지를 새롭게 밝혀준다. 또한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가인과 아벨의 첫 번째 예배가 어떻게 첫 번째 형제살해를 초래했는지를 문명사적으로 해명함으로써, 하나님의 특성과 종교인의 존재방식을 밝힌다. 특히 오늘날 지구적자(Earth deficit)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전대미문의 기후재앙들이 악화되어 난민들이 늘어날수록, 불안과 불평등, 분노와 혐오, 폭력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종교와 국가의 영적인 초석은 무엇이며, 종교인의 존재방식은 무엇인지를 성서적으로 분명하게 밝혀준다. 다시 말해서, 왜 민족 해방을 다룬 출애굽기보다 앞서서 창세기의 복잡한 가족 문제와 정체성 문제, 올바른 신앙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줌으로써, 기독교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인 종교라는 흑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질문들:
왜 인간은 종교적 확신에서 악을 행할 때, 가장 잔인하며 즐거워하는가?
왜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학살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주장했는가?
왜 남을 탓하는 책임 회피적 “비난의 문화”와 “희생자 의식”이 위험한가?
왜 우리사회의 일베들은 자신들이 “희생당한 피해자들”이라고 규정하는가?
종교가 혐오와 폭력의 원천인가, 아니면 혐오와 폭력이 종교를 낳았는가?
왜 원수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가?
왜 아브라함의 세 종교들(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서로를 미워하는가?
왜 유일신사상은 고대세계의 다신론에 대한 정치적인 항거로 등장했는가?
유일신사상 속에 병적인 이원론이 쉽게 똬리를 트는 이유들은 무엇인가?
바벨탑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었는가?
종교를 대체하려는 노력들은 왜 모두 잔인한 전쟁으로 끝나고 말았는가?
냉정한 율법을 가르친 오경 안에 있는 많은 이야기의 기능은 무엇인가?
가인이 아벨(‘하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문명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왜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내러티브 밑의 카운터 내러티브가 중요한가?
창세기는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관계를 어떻게 치밀하게 해결하는가?
왜 형제자매 사이의 화해와 회개 없이는 새로운 사회 건설이 불가능한가?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후에도 ‘나그네’ 정체성을 유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세가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이집트를 빼낸 방법”은 무엇인가?
왜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이 자기 형상대로 하나님을 만드는가?
왜 세계의 지배구조는 바뀌지 않고, 자비 밖에는 인류에게 희망이 없는가?
인간이 종교적인 확신에서 악을 행할 때보다 더 완벽하고 즐겁게 행하는 때는 없다.
---- 블레즈 파스칼
그가 짐승, 해충, 벌레가 될 때까지
그의 온갖 특징을 과장하라.
그 배경에는 옛날 옛적부터의 악몽들,
곧 악마들, 귀신들, 악의 앞잡이들로 채워라.
네 원수의 모습이 완성되면,
너는 죄의식 없이 죽일 수 있게 되고,
부끄럼 없이 도살할 수 있다.
― 샘 킨, 원수의 얼굴 (1986)
종교가 인간을 살인자들로 둔갑시킬 때, 하나님은 통곡하신다.
이렇게 창세기는 우리에게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후에, 그 첫 남자와 여자가 첫 번째 명령에 불순종하고, 또한 그들의 첫 아들이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셨다. 짧은 시간 동안에 ‘세상은 폭력으로 넘쳐났다.’ 하나님은 ‘땅 위의 인간들이 얼마나 악하게 되었는지를 보셨다.’ 그리고 우리는 종교 문헌에서 가장 통렬한 문장 가운데 하나를 읽는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창 6:6).
종교의 역사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생명의 하나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였으며, 평화의 하나님 이름으로 전쟁을 벌였으며, 사랑의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했으며, 자비의 하나님 이름으로 잔학행위를 저질렀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은 때때로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런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내 이름으로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다신론 형태의 종교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생겨났다. 그때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도 없었고, 종교는 국가에 대한 초월적 정당화였다. 도대체 왜 세상에 위계질서가 있는가? 하늘에 위계질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태양이 하늘을 다스리듯이, 파라오, 왕, 또는 황제가 땅을 다스렸다.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소수가 다수를 통치하고, 인구 전체가 노예로 전락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하늘에 기록된 거룩한 질서를 (땅 위에서)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졌다. 그러지 않으면 혼돈이 생길 것이라고 말이다. 다신론은 위계적인 사회에 대한 우주론적 정당화였다. 다신론이 만든 기념비적인 건축물들, 즉 바빌론의 지구라트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그 바닥이 넓고, 맨 위는 좁은 형태로서, 그 위계질서의 가시적인 상징물들이었다. 종교는 권력에 대한 적나라한 추구를 은폐하기 위해 입은 거룩한 옷이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아브라함의 유일신론이 하나의 계속적인 항의로서 등장했다. 갑자기는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유일신론이 비상한 주장을 했다. 유일신론은 모든 사람이 그 피부색이나 문화, 계급이나 믿음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형상과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최고의 권능이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역사 속에 개입했다.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과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 있다. 생명은 성스럽다. 살인은 범죄일 뿐 아니라 죄다. 사람들 사이에는 의로움과 정의, 자비와 마음 아파함, 용서와 사랑의 계약적 유대가 있어야만 한다. 히브리성서의 처음 책들에는 비록 전쟁에 대한 명령이 나오지만, 몇 세기 지나 이사야와 미가 같은 예언자는 평화가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첫 목소리가 되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고 창을 녹여 낫을 만들어 더 이상 전쟁을 벌이지 않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히브리성서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유일신론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배척이었으며, 또한 무력을 사용해서 누구는 주인이 되고 누구는 노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배척이었다.
전 세계 24억 명의 기독교인들, 16억 명의 무슬림들, 그리고 13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아브라함은 제국을 다스리지 않았으며, 군대를 지휘하거나, 영토를 정복하거나, 기적을 행하거나, 예언을 선포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이웃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았지만, 인간이 하나님께 말한 가장 담대한 말, 즉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창 18:25)라는 말로써, 그 이웃들을 위해 기도했고 또한 싸웠다. 그는 자기의 믿음에 투철하며, 타인들의 믿음에 상관없이 그들에게 복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런 생각은 오랫동안 무시되어왔지만, 아브라함 신앙을 가장 단순하게 정의하는 것으로 남아있다. 세상을 정복하거나 개종시키는 일, 또는 믿음의 획일성을 강요하는 일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의 과제는 세상에게 복이 되는 일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는 것은 의로움이 아니라 우상숭배다. 사랑받기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 사람들은 모세나 모하메드가 아니라 마키아벨리였다. 그런 주장은 테러리스트들과 자살폭탄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교리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처음 말했던 니체의 윤리는 권력에 대한 의지였다.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면서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거룩한 행동이 아니라 신성모독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이름을 망녕되게 일컫는 짓이다.
이 책에서 나의 관심은 종교와 폭력 사이의 일반적 연관성이라기보다는 21세기의 정치화된 종교적 극단주의라는 구체적 도전에 맞추어져 있다. 종교가 전 지구적인 힘으로 다시 돌아온 현상에 대해 세계는 전혀 대비하지 못했으며 또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목차
I. 나쁜 믿음
1. 이타주의적인 악 / 17
2. 폭력과 정체성 / 49
3. 이원론 / 73
4. 희생양 / 103
5. 형제자매간 적대감 / 133
II. 형제자매들
6. 이복 형제들 / 161
7. 천사와의 씨름 / 189
8. 역할 뒤바꿈 / 219
9. 배척을 배척하다 / 245
III. 열린 가슴
10. 낯선 나그네 / 267
11. 정의의 보편성, 사랑의 특수성 / 283
12. 어려운 본문들 / 307
13. 권력의 포기 / 325
14. 증오심 내려놓기 / 351
15. 권력 의지인가, 생의 의지인가 / 371
참고문헌 / 395
옮긴이의 말 / 413
“탁월한 랍비 조너선 색스는 ISIS가 사실상 우리가 앞으로 몇 십 년 뒤에 보게 될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 저자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종교적 폭력에 대한 해결책을 종교 자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David Brook, The New York Times
“저자의 강력한 주장의 핵심은 창세기에 대한 수긍할 수밖에 없는 해설인데, 창세기 이야기를 새로운 눈으로 다시 읽게 만든다. … 이 책은 오늘날과 같은 폭력적 세상에 대한 값비싼 탐구로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군 전쟁에 기금을 대도록 사용되는 기초 본문들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듣도록 초청한다. 그 대안으로 이 책이 권위 있게 공통의 인류에 근거한 공적인 삶의 실천을 가리키는 것은 모든 부족적인 유혹들을 뒤엎어버린다. … 지혜롭고 중요하다.”
―Walter Brueggemann, The Christian Century
“종교적 폭력의 뿌리에 대한 긴급하고도 권위 있는 탐구로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가운데 한 분이 쓴 책이다. 창자를 뒤틀리게 만드는 저자의 첫 문장에서부터, 독자들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이 완벽한 학자가 깊게 생각하고 치밀하게 선택한 언어들임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가 히브리성서를 독해하는 것은 빈틈이 없으며, 흔히 사람들이 놓치는 의미의 층들을 밝혀준다. 저자는 명민하며 확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학자로서, 그의 방법론적 해체는 성서에 대한 오독을 폭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향해, 혐오를 내려놓게 만드는 신학을 향해 나아가도록 역설한다.”
―Barbara Mahany, Chicago Tribune
“이 놀라운 책에서 저자는 종교 전쟁들이 이슬람에만 독특한 것이 아님을 치밀하게 문헌으로 뒷받침한다. 그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믿는 종교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폭력에 반대하는 논증들이 세속적인 사상들에서만이 아니라 신학 안에서도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E. J. Dionne Jr., The Washington Post
“저자의 분석은 철학, 정치학, 사회과학들과 치열하게 대결한 박식한 정신을 보여준다. 저자가 그 문제에 주목하고 그 모든 자원들을 이용해서 종교적 신앙과 폭력 사이의 연결성에 대해 신학적으로 씨름하는 데서 그의 가장 위대한 공헌을 찾아볼 수 있다. … 나는 신앙인들이 읽고 함께 공부하기 위한 새로운 책으로 이 책보다 더 중요한 책을 생각할 수가 없다. … 저자는 온 세상을 위해 깨달음을 주며, 그의 메시지는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울림을 주고 있다.”
―Michael Jinkins (president, Louisville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The Huffington Post
“저자는 이슬람의 폭력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경전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더욱 지혜로운 믿음과 부드러운 하나님을 밝혀준다. 이 책은 통찰력이 넘치며, 날카롭고 아름답게 쓰여진 책이다.”
―William Saletan, The Wall Street Journal
2001년 9월 11일에 뉴욕의 트윈타워와 펜타곤이 공격을 받은 이후, 종교적인 동기로 발생한 폭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리비아와 시리아에 대한 개입, 중동 지방의 여러 국가들에서의 정권 교체와 ISIS(이슬람국가)의 등장 이후, 10년 넘게 이 문제와 씨름한 후에 서방세계는 약해진 반면에 급진주의 정치적 이슬람은 더 강해졌다.
알카에다와 그것이 파생한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는 전 세계에 수십 개, 아마도 수백 개의 연관된 집단들을 만들어냈고, 그 집단의 테러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예를 들어, 2014년 11월에, 14개 국가에서 664건의 지하드 공격이 있었고 전체 5,042명을 죽였다. BBC 월드 서비스와 런던 킹스 칼리지의 급진주의화 연구센터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알카에다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의 극단주의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
우리는 텔레비전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중세시대에만 벌어졌던 것으로 생각한 광경들을 보는 데 익숙해졌다. 인질들이 참수를 당했다. 군인들이 도끼로 처형되었다. 요르단 조종사는 산 채로 불태워졌다. 무고한 사람들이 도살당했다. 어린 학생들이 냉혹하게 살해당했다. 어린 소녀들이 성폭행당하고 노예로 팔렸다. 열 살 먹은 소년들이 자살 폭탄범들이 되었다. 아동의 권리에 대한 유엔 위원회가 2015년 2월 발표한 보고서는 ISIS가 소년들을 대량 처형한 것과 참수당하거나 산 채로 불에 태워진 아동들에 대해 보고했다. 교회들, 회당들, 그리고 무슬림 사원들이 파괴되었으며, 거룩한 장소들이 더럽혀졌으며, 기도하던 사람들이 살해되었으며, 기독교인들이 납치되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오래된 공동체들이 그들의 집에서 추방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조직적으로 박해당하고 있다. 그들은 중동지방 전역에서 위협, 투옥, 죽음에 직면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독교는 거의 사라졌다. 2010년에 마지막 남아있던 교회가 완전히 전소되었다.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은 사형선고에 직면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약 45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탈출했다. 다른 종교인들, 즉 무슬림의 소수 신앙인들인 (시아파) 만데안, (쿠르드족) 야지디스, 바하이들도 박해와 죽음을 겪었다.
이집트에서는 5백만 명의 콥트인들이 공포 속에 살아간다. 2013년에는 14세기 이후 기독교인들에 대한 가장 큰 공격에서 50개 이상의 교회들에 폭탄이 투척되었거나 불에 탔는데, 이 공격은 ‘이집트의 크리스탈나흐트’라고 불렸다. 젊은 콥트족 소녀들이 납치당해, 자신들의 의지에 반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강제로 무슬림 남자들과 결혼했다. 그 소녀들이 다시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가려 하면, 그들은 투옥되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
2001년에 이라크에는 15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40만 명이 채 안 된다. 2014년에 ISIS는 기독교인들을 참수하고 도륙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십자가에 처형되거나, 아니면 그들의 손과 발을 절단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기독교인들은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모술에서 추방당했는데, 기독교인들은 그 도시에 1600년 동안 존재했었다.
수단에서는 1984년 이후, 아랍 무슬림 민병대 자냐위드가 약 150만 명의 기독교인들을 살해했다. 파키스탄에서는 기독교인들이 공포 속에 살고 있다. 2010년 11월에는 펀자브 지방 출신의 기독교 여성 아시아 노린 비비가 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교수형이 선고되었다. 그녀가 무슬림 농장 노동자들과 함께 물을 마셨다는 것이 고발당한 이유였다. 그 무슬림 노동자들은 기독교인이 그 물 잔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항의했다. 그들은 그녀를 신성모독으로 고발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녀는 독방에 감금되어, 상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한 세기 전에는 중동지방의 전체 인구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20%를 차지했다. 오늘날에는 4%에 불과하다. 지금 벌어지는 사태는 종교적인인종청소에 해당한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자행되고 있는 인류에 대한 범죄 중 하나다.
무슬림들 역시 미얀마, 태국 남부, 스리랑카, 중국, 우즈베키스탄에서 박해를 받고 있다. 1995년에 스레브레니차(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도시)에서는 8천 명의 무슬림들이 집단학살을 당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강간, 고문을 당했거나 추방되었다.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대에 거의 50만 명이 크메르루지에 의해 살해당했고, 무슬림 사원들 132개가 파괴되었다. 헤브론에서는 1994년에 미국 태생의 의사이며 종교적 유대인이었던 바룩 골드슈타인이 ‘아브라함의 무덤’에서 기도하던 무슬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총기를 난사하여 29명을 살해했고 125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2014년 7월 2일에는, 세 명의 이스라엘 십대 소년들이 살해된 데 대한 보복공격에서, 열일곱 살 난 팔레스타인 소년 모하메드 아브 크데어가 납치되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2015년 2월 10일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채플 힐에서 호전적 무신론자를 자칭한 사람이 세 명의 무슬림을 살해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의 폭력에서 대다수 희생자는 무슬림들이다. 메릴랜드대학교의 “지구 테러 데이터베이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테러리스트 공격의 약 절반과 그 사상자의 60%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발생했는데, 이들 국가의 인구 대부분은 무슬림들이다. 가장 비극적 사건 중 하나가 2014년 12월 15일,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발생했는데, 탈레반 군인들이 군대가 운영하는 학교에 난입하여 141명을 살해한 사건으로서, 그 중 132명은 어린이들이었다. 한편 미국이 주도하여 벌인 이라크 전쟁에서 민간인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파키스탄에서 드론 공격들이 행해지며,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또는 무슬림이 소수인 국가들에서 무슬림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적대감 등에서, 무슬림들은 이것이 서구인들의 적대감이 표출되는 것으로 보아 크게 위협을 느끼고 있다.
한편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도처에서 반셈족주의가 다시 등장했다. 2000년 1월 27일, 스톡홀름에서는 아우슈비츠 해방 55주년 기념일을 맞아, 유럽의 모든 국가 지도자들이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반대와 홀로코스트 교육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후, 모든 유럽 국가들에서 반셈족주의가 등장했다. 유대인들은 공포를 느끼고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벨기에, 헝가리를 떠나고 있다. 유럽연합의 인권위원회가 2013년 1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1/3이 유럽을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다.
2015년 2월 14일, 코펜하겐에서는 한 유대인 안전 자원자가 회당 바깥에서 살해당했다. 파리에서는 2015년 1월 9일, 네 명의 유대인들이 코셔(유대인 음식) 수퍼마켓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2014년 5월에는 세 명의 유대인이 브뤼셀의 유대인 박물관에서 사살당했다. 툴루즈에서는 2012년에 유대인 교사 한 명과 세 학생이 살해되었다. 이 세 사건 모두에서 범인들은 모두 프랑스 태생 무슬림들이었다. 2014년 여름에는 파리 중심부의 바스티유 근처 회당을 에워싼 성난 무리들이 “유대인들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이처럼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라!”는 외침이 독일의 길거리에서 다시 울려 퍼지고,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유대인들이 살기에 불안한 장소라고 간주되는 것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입법 활동, 종교간 대화, 그리고 홀로코스트 교육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비상한 사태임에 틀림없다. 유대인들은 “결코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는 주장이 “다시 벌이자”는 사태로 전개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처럼 폭력의 위협을 당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유일신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만이 아니다. 불교도, 힌두교도, 시크교도, 조로아스터교도, 바하이교도 역시 마찬가지다. 북부 이라크에서는 고대 야지디스 종파가 ISIS의 대량학살을 피해 가까스로 탈출했다. 아브라함의 종교가 아닌 사람들, 특히 민족주의적 불교도들과 힌두교도들은 희생자가 될 뿐 아니라 가해자들이기도 했다. “인권선언” 제18조 항에 새겨진 종교 자유의 권리는 오늘날 세계 1/4 이상의 국가들에서 위협을 당하고 있다. 2012-14년의 현황에 대한 ≪세계의 종교 자유≫ 보고서는 세계 196개 국가들 가운데 55개 국가에서 종교 자유가 상당히 위축되었는데, 그 이유는 독재정권들 때문이거나 이슬람주의자 집단들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현실은 오늘날의 시대가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지를 보여준다.

바로잡기
110쪽 첫째 문단 여섯 째 줄
1979년에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1989년에 러시아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 대안 세력이 기회를 잡았는데, 처음에는 하싼 알반나였고, 1928년에는 무슬림 형제단이었다.
-> 1979년에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1989년에 러시아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 대안 세력이 기회를 잡았는데, 이들 대안 세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 하싼 알반나와 무슬림 형제단을 통해서였다.
119쪽 둘째 문단 둘째 줄
끈질길 편견이었다. -> 끈질긴 편견이었다.
126쪽 첫째 문단 첫째 줄
시리의 국방장관 -> 시리아의 국방장관
131쪽 첫째 문단
희생양을 만드는 일의 문제는 그런 해결방식이 그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희생양을 삼게 되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견딜 수 있는 긴장상태를 “누가 나에게 이런 짓을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버린다.
-> 희생양을 삼게 되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누가 나에게 이런 짓을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버림으로써 내부의 긴장상태를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146쪽 위에서 여덟 째 줄
마침내 하갈도 아들 이삭을 낳았고 -> 마침내 사라도 아들 이삭을 낳았고
190쪽 위에서 여섯 째 줄
너의 맏아들의 권리 -> 너의 맏아들의 권리를
271쪽 첫째 줄
비인화 -> 비인간화
302쪽 아홉째 줄
그들의 ->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