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전쟁, 기근, 폭정, 전염병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 고난을 견디면서 시간이 지나면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기후 붕괴와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멸종 사태가 진행되는 지금은 구원의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때나 수운과 소태산 선생이 "개벽"을 선포했을 때보다 훨씬 더 어둡고 절박한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교회는 교회 성장주의와 성서 문자근본주의, 소위 "사영리" 복음에 사로잡혀 있으며, 기독교 신학은 여전히 대속론과 그리스도 승리자론을 읇조리고 있다. 그 결과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은 인간의 기본권의 문제인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부정하며, 차별금지법 반대에 올인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지금은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인류의 멸망"을 믿는 세상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후 불안과 무력감, 우울증은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위기를 해결할 정치인들은 에너지 재벌과 같은 세계적 거대 자본가들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고작해야 기후 위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식의 흉내만 낼 뿐이다. 기후 재앙이 더욱 악화되고 불안과 무력감, 절망이 심해질수록, 그런 기회를 적극 이용하는 극우 파시스트 정권과 경찰국가의 등장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류의 생존 자체가 가장 큰 문제가 된 이 시대의 절박한 위기에 연관성이 있는 기독교 복음을 정립하려는 새로운 조직신학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대표적 과정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특히 신정론 전문가인 데이비드 그리핀의 최근 저작(2019)을 서둘러 번역하는 이유이다.
왜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유물론과 무신론을 받아들이는지, 반면에 왜 많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과학을 배격하고 초자연주의적 전통 신학에 머물러 있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 모든 왜곡된 진리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밝힌 책이다. 이 훌륭한 조직신학 책을 한국에서는 아무도 신학 교재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불과 몇 사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시대의 조직신학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증언으로 남기는 일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기후 재앙과 핵 위협 시대의 기독교 복음
새로운 조직신학
감사의 말씀 / 7
서론 / 9
1부 하느님, 성서, 그리고 인간
1장. 성서와 신학 방법론 / 31
2장. 하느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 / 45
3장. 하느님의 사랑과 세상의 악 / 75
4장. 인간: 피조물의 면류관 / 101
2부 예언자들, 예수, 그리고 타종교들
5장. 히브리 예언자들 /
6장. 예수와 로마제국 /
7장. 기독론, 삼위일체, 그리고 부활 /
8장. 기독교인의 길과 다른 길들 /
3부 죄와 악마
9장.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 /
10장. 악마적인 것의 등장 /
11장. 아메리카제국: 신적인가 악마적인가? /
12장. 가짜 국기 공격 /
13장 핵무기 /
14장. 기후 파괴 /
4부 구원과 하느님의 통치
15장. 구원 /
16장. 하느님의 통치와 지구적 민주주의 /
5부 도덕과 기독교 공동체
17장. 도덕: 황금률 /
18장. 기독교 공동체 /
교회는 21세기를 위해 새로운 신학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신학은 전통 신학과 달라야만 한다. 전통 신학은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초자연주의란 하느님이 기적들, 즉 자연의 법칙들을 위반하는 사건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점이다. 새로운 신학은 현대의 자유주의(liberal) 신학들과도 달라야만 한다. 자유주의 신학들이 현대성(modernity)에 헌신하기 때문에, 확고한 기독교인의 삶을 뒷받침하기에는 너무 얄팍한 신학들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전개할 신학은 “진보주의 기독교”라고 알려진 신학에 속한다. 그러나 이 책의 신학은 진보적 기독교의 대부분의 유형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이 책은 방법론에서 자유주의적이지만, 내용에서는 보수주의적 책으로서, 예수의 부활과 악마적인 세력의 실체처럼 으레 초자연주의를 수반한다는 이유로 잘못 배격했던 몇몇 교리를 확증한다.(예수의 부활과 악마적 세력에 대해서는 7장과 9장에서 다룰 것이다).
대부분의 신학들은 보편적이고자 한다. 즉 모든 시대와 장소에 사는 사람들에게 연관성이 있는 기독교 메시지를 진술하고자 한다. 그러나 모든 신학은 불가피하게 지역적이기도 하다. 즉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다는 말이다. 그런 신학들은 복음이 신빙성이 있으며 당시 기독교 신앙이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연관성이 있는 복음을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신학이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 신학이 되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신학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신학은 일차적으로 보편적이고자 하여, 기독교인들에게 그런 보편적 신학을 제시하려고 했다. 보다 최근에는 많은 신학들이 지역적 신학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서, 신학들이 기독교 신앙을 확정된 형태로 말하기보다는 현재의 지역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신학은 아메리카제국이 다른 국가들과 지구의 생명,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된 상태를 강조한다. 인류 생존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은 미국의 대외정책, 핵무기 개발과 기후 위기에 대한 미국의 책임에서 죄와 악마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신 존재를 위한 논증을 제공했던 신학자들은 오랫동안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 흔히 “설계로부터의 논증”(argument from design)이라고 부르는 것의 조금씩 변형된 형태를 사용했다. 그들은 세상, 또는 그 일부가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는 증거를 지적함으로써, 그런 설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강력하고 지적인 창조자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한 형태는 우주를 시계와 비교하는 것으로서 18세기에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에는 이런 주장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런 주장이 전능한 신적 설계자를 전제했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다윈주의가 그 명백한 설계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설계로부터의 목적론적 논증이 실질적으로 과학에 근거한 사상가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유일한 신 존재 논증이 되었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은 거의 한 세기 동안(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유신론을 위한 지적인 논증이 영원히 파괴되었다고 생각하며 흡족해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설계를 위한 논증의 다른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다윈의 증거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형태였다. 왜냐하면 그 논증은 생명이 등장하기 오래 전에 세상의 명백한 설계가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기본적 주장은 우주가 “생명을 위해 미세조정”(fine-tuned for life)되어 왔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미세조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물리학의 상수들로서, 자연계의 네 가지 힘, 즉 중력(gravity), 강력(strong force), 약력(weak force), 전자기력(electro- magnetism) 같은 것들이다.
중력은 매우 먼 거리에서 서로 끌어당기는 힘으로서, 중력이 없다면 별과 행성들이 없었을 것이다. 중력은 (전자나 양성자로 구성된 미시세계에서는) 다른 힘들에 비해 매우 약하다. 그러나 중력이 더 약했다면, 별들은 적색왜성(red dwarf stars)이 되었을 것이며, 이런 적색왜성들은 매우 오랫동안 불탔을 것이지만, 행성들 위에 생명이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정도로 충분히 뜨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중력이 약간 더 강력했다면, 모든 별들은 푸른 거성들(giant stars)이 되어 너무 뜨겁게 타서 생명이 발전할 만큼 수십억 년 동안 지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John D. Barrow and Frank J. Tipler, The Anthropic Cosmological Principle (Oxford University Press, 1986), 336.
우주가 어떻게 생명을 위해 미세조정되어왔던 것처럼 보이는지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강력”(strong force)이 제공하는데, 이 힘은 매우 강력하지만 짧은 거리의 힘이다. 강력은 원자의 핵 안에서만 영향을 미치며,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시킨다. 이 힘은 원자들이 핵융합을 할 때 방출되는 에너지의 양을 결정한다. 별의 수소가 헬륨으로 바뀔 때, 헬륨 원자는 그것을 만드는 두 개의 양성자와 두 개의 중성자보다 약간 가볍다. 따라서 수소 질량의 0.007은 에너지로 바뀐다.
그러나 만일 이 숫자가 0.007 대신에 0.006이면, 양성자들과 중성자들은 결합하지 않게 된다. 그럴 경우, 헬륨은 형성될 수 없고, 우주는 온통 수소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숫자가 0.008이라면, 양성자는 중성자의 도움 없이 결합했을 것이며, 따라서 수소는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의 천문학자 라틴 리스는 “놀라운 것은 만일 이 숫자가 0.007 대신에 0.006이거나 0.008이었으면, 탄소에 기초한 생물계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Martin Rees, Just Six Numbers: The Deep Forces that Shape the Universe (Basic Books, 2000), 54-57.
라고 말했다.
이런 사례가 보여주듯이, “미세조정”은 극히 정밀하다. “약력”(weak force)도 마찬가지로, 이 힘 역시 원자의 핵 안에서만 영향을 끼치며, 중성자들을 양성자들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약력이 약하기 때문에 태양이 “수십억 년 동안 부드럽게 수소를 태울 수” 있게 만들어, 우주가 생명을 생성시킬 시간을 갖게 허락했다. John Leslie, Universe (1989; Routledge, 1996), 34. (Freeman Dyson, “Energy in the Universe,” Scientific American, September 1971: 51-59를 인용했다).
만일 이 힘이 훨씬 약했다면, 수소를 만들 여분의 양성자들이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온통 헬륨뿐인 별들의 세상이 되어 생명이 등장할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을 것이다. Paul Davies, Cosmic Jackpot: Why Our Universe is Just Right for Life (Houghton Mifflin Co., 2007), 143.
그러나 만일 약력이 약간만 더 강했다면, “빅뱅의 핵 연소는 헬륨을 지나 철까지 진행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핵융합하는 별들이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Leslie, Universe, 34.
미세조정의 상당 부분은 비율(ratios)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electromagnetism)은 중력보다 훨씬 강해서, 약 10의 36승 정도 강력하다. 약 1조 곱하기 1조 곱하기 1조 곱하기 정도로 훨씬 강력하다. “Gravity is Really Weak?” Stanford Solar Center.
그러나 그것이 훨씬 크게 달랐을 수는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생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만일 중력이 훨씬 더 강하다면, 별들은 더 작을 것이며, 너무 뜨겁게 타서, 그 수명이 너무 짧아 생명이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중력이 훨씬 더 약하다면, 행성들이 훨씬 작을 것이며, 소형화된 태양은 훨씬 더 빠르게 연소할 것이다. 그러면 태양은 고작 1만 년 정도 지속될 것이라서, 탄소와 산소처럼 생명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보다 무거운 원소들을 만들어내기에 필요한 100억 년보다는 훨씬 짧은 기간만 지속될 것이다. “The Strength of the Force of Gravity as an Example of Cosmic Fine Tuning,” God: New Evidence; “What If Gravity Was Weaker or Stronger?” Science Bits.
전자기력과 강력의 비율 역시 정밀하게 조정된 것처럼 보인다. 만일 강력이 훨씬 더 강하다면, 전자기력은 양성자들이 서로 달라붙는 것을 막을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지 못해서, 수소를 형성할 자유로운 양성자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강력이 훨씬 더 약했다면, 복잡한 원자핵(생명이 의존하는)은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전자의 전하(electric charge)가 약간만 달랐어도, 별들은 수소와 헬륨을 연소시킬 수 없었거나, 아니면 별들이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Stephen Hawking, A Brief History of Time (Bantam, 1998), 129.
마지막 사례를 보자. 중성자는 양성자보다 무겁지만, 매우 조금만 무거울 뿐이다. 그 질량의 비율은 939.56563 대 938.27231이다. 만일 중성자의 질량이 700개 중 한 개만 증가하면, 수소는 헬륨으로 바뀔 수 없으며, 별들은 형성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중성자가 조금만 가볍다면, 온통 헬륨뿐인 우주가 될 것이며, 생명을 위한 가능성은 없다. Oliver Sacks, “My Periodic Table,” New York Times, 24 July 2015; Paul Davies, The Goldilocks Enigma: Why Is the Universe Just Tight for Life? (Mariner Books, 2006), 141-43.
이런 것은 우주 안에서 생명이 발전하려면 정밀하게 조정되었어야만 하는 수많은 근본적 상수들 가운데 단지 몇 개에 불과한 것인데, 한 연구에 따르면, 그런 상수가 26개 있다고 한다. Ethan Siegel, “It Takes 26 Fundamental Constants to Give Us Our Universe, But They Still Don’t Give Everything,” Forbes, 22 August 2015.
미세조정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명백한 미세조정의 증거는 너무 강력해서 실질적으로 그것을 반박할 논증은 없다.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에 따르면, “우주가 여러 측면에서 생명을 위해 ‘미세조정’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이제는 물리학자들과 천문학자들 사이에 폭넓게 합의하고 있다.” Paul Davies, “How Bio-Friendly is the Universe?” International Journal of Astrobiology, 2 (2003).
이런 합의는 전통적 유신론자들과 이신론자도 공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스티븐 호킹 많은 사람들이 호킹을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2014년에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기 전에는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을 믿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제 과학은 보다 확신을 주는 설명을 제공한다. 내가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뜻은, 만일 하느님이 있다면, 하느님이 아시는 것 모두를 우리가 알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없다. 나는 무신론자다.” Alan Boyle, “‘I’m an Atheist’: Stephen Hawking on God and Space Travel,” NBC, 23 September 2014.
과 같은 무신론자들도 공유하고 있다. 스티븐 호킹은 이렇게 썼다.
과학 법칙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많은 근본적인 숫자를 담고 있는데, 전자의 전하 크기, 양성자와 전자의 질량의 비율 같은 것이다. … 놀라운 사실은 이런 수치가 생명이 생겨나고 발전하도록 매우 정밀하게 조정되어왔던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Stephen Hawking, A Brief History of Time, 125.
그러나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이 있는가?
우주적 미세조정자(A Cosmic Fine-Tuner)
가장 단순한 설명은 그런 미세조정이 지적인 우주적 행위자의 작품이었다는 설명이다. 폴 데이비스가 설명한 것처럼, “마치 누군가 우주를 만들기 위해 자연의 숫자들을 조정했던 것처럼 보인다. … (누군가) 설계를 했다는 인상은 압도적이다.” Paul Davies, The Cosmic Blueprint (Simon & Schuster, 1988), 203.
이런 인상은 일부 무신론자들을 개종시켰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무신론자였던 철학자 앤터니 플루는 “신적인 정신”(divine Mind)이 “자연법칙들의 기원에 대해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Antony Flew with Roy Varghese, There is a God: How The World’s Most Notorious Atheist Changed His Mind (Harper Collins, 2007), 121.
또 다른 개종자는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이었다. 그는 워낙 유신론에 반대해서, 우주는 항상 변하지 않는다는 정상우주론(steady-state view of the universe)을 선호해서 “빅뱅” 이론을 배격할 정도였다. 정상우주론이 유신론을 덜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소와 관련한 미세조정의 증거를 알게 된 후에, 그의 유명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즉 “무엇인가 초계산적 지능(supercalculating intellect)이 탄소 원자의 특성을 설계했음에 틀림없다.” Sir Fred Hoyle, “The Universe: Past and Present Reflections,” Engineering and Science, November 1981.
우주가 미세조정되었다는 견해는 신적인 창조자에 호소함으로써만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수학자이며 과학철학자인 존 레녹스가 쓴 책 ≪신의 작업자≫를 통해서도 자세히 개진되었는데, 이 책의 부제목은 ≪과학이 하느님을 매장했는가?≫다. 레녹스는 미세조정에 관해 “우리가 우주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창조자가 있다는 가설은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으로서 더욱 신뢰성을 얻는다” John C. Lennox, God’s Undertaker: Has Science Buried God? (Lion Hudson, 2007), 68.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대답이다. 적어도 19세기 중반 이후로, “하느님”은 과학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과학계 주류와 서양문화 일반에서 받아들여졌다. 이런 상황을 전제한 후, 철학자 로베르토 웅거와 물리학자 리 스몰린은 우주론의 “짧은 역사에서 최대의 위기”는 우주가 생명을 위해 미세조정되었다는 발견 때문에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것을 위기로 간주한 이유는 그런 미세조정에 대해 과학자들이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Roberto Mangabeira Unger and Lee Smolin, The Singular Universe and the Reality of Tim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353-54, 360.
조정자 없이 미세조정?
과학에 기초한 사상가들은 일반적으로 생명이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는 생각에 깊이 헌신해왔다. 우주가 생명을 낳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생각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하느님”은 과학적 가설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는 근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다른 가설에 이르게 되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우리의 우주는 각각 서로 다른 법칙들을 지닌 수십억 개 또는 심지어 수천억 개의 우주로 이루어진 다중 우주(multiverse)의 한 작은 부분이다. 그 가설은 그렇게 많은 우주들 가운데 하나가 생명이 창발하기에 필요한 법칙들과 변수들을 갖도록 우연히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주가 극히 정밀하게 조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상 우주적 미세조정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Sean Carroll, “Does the Universe Need God?,” The Blackwell Companion to Science and Christianity, ed. James B. Stump and Alan G. Padgett (Wiley- Blackwell, 2012).
이 관점에서 보면, 우주가 수십억 개 또는 수천억 개 있다는 믿음은 유신론의 필요성을 제거한다.
그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만일 우리의 우주가 유일한 우주라면, 목적을 지닌 창조자 없이 우주가 생겼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즉 우리의 극히 미세조정된 우주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는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있을 법하지 않다. 따라서 명백하게 미세조정된 우주는 과학자들이 유신론을 혐오했다 하더라도 유신론을 받아들일 필요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주장이 신적 창조자 개념에 반대했던 과학자들로 하여금 다중 우주 개념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던데, 다중 우주론은 그들의 신념, 즉 생명의 존재는 우연이었다는 신념을 유지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과학자들이 도대체 왜 많은 과학자들이 다중 우주 가설을 선호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노 펜지어스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로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목적을 지니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그들은 목적과 모순되는 사태들을 지적하고, 자신들이 본 적이 없는 사태들을 억측하는 경향이 있다.” Denis Brian, Genius Talk: Conversations with Nobel Scientists and Other Luminaries (Plenum Press, 1995), 164.
캘리포니아 공대의 션 캐롤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초자연적 행위자에 전혀 호소하지 않는 이론을 선호한다” Carroll, “Does the Universe Need God?”
고 말했다.
“만일 섭리적인 설계를 믿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미세조정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면,” Martin Rees, Our Cosmic Habitat (Phoenix, 2003), 164.
다중 우주 가설이 하나의 선택을 제공한다고 마틴 리스는 말했다.
스티븐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많은 일들이 벌어져 서로 협력한 것”은 “만일 우리의 태양계가 우주에서 유일한 태양계라면,” 자비한 하느님이 만든 기적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우주와 같은 우주들이 많이 병행적으로 존재하며, 그 각각의 우주가 서로 다른 법칙들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의 우주가 생명을 위해 이상적으로 부합한다는 그 “명백한 기적”은 사라진다. 즉 “다중 우주 개념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주를 만든 자비로운 창조자를 필요로 하지 않은 채, 물리법칙이 미세조정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다.” Stephen Hawking and Leonard Mlodinow, The Grand Design (Bantam, 2012), 153, 165.
다중 우주론에 대한 반대 주장
우주적 미세조정자는 유신론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그것에 반대하는 논증들은 반철학적이다. 신을 혐오하는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희망 때문에 자신의 신념에 영향을 받는 것은 신이 존재한다는 희망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만큼이나 비합리적이다” Thoma Nagel, Mind and Cosmos: Why the Materialist Neo-Darwinian Conception of Nature Is Almost Certainly False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131.
라고 말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에 의해서도 부당하게 영향을 받는 일을 최선을 다해 피해야만 하며, 가능한 한 냉정하게 다른 대안이 최상의 증거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야만 한다. 또한 웅거와 스몰린은 왜 우주론이 위기에 처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유신론적 대답이 하나의 가능한 대답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덧붙여서, 다른 설명, 즉 다중 우주 가설이라는 설명은 “존재론적 환상” Unger and Smolin, The Singular Universe, 117-19, 160.
이라고 말했다.
다중 우주론을 배격하는 많은 과학적 이론들은 다음과 같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에 대한 위반: 다중 우주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반론 가운데 하나는 다중 우주론이 오컴의 면도날을 극적으로 위반한다는 것인데, 오컴의 면도날에 따르면, 다른 모든 것들이 동등할 때, 가장 단순한 가설을 선택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폴 데이비스는 “다중 우주는 오컴의 면도날을 언어도단처럼 크게 위반한 것을 대표하는데, 고작 우리 자신의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관측할 수 없는 우주들의 엄청난 총체를 전제한다” Paul Davies, Cosmic Jackpot: Why Our Universe is Just Right for Life (Houghton Mifflin Co., 2007), 179-85.
고 말했다. 하나의 신보다는 수십억 개, 아마도 무한한 숫자의 우주를 전제하는 것은 오컴의 원리를 위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 극단적인 추정: 다중 우주론을 비과학적이라고 부르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진화학자 루크 반스에 따르면, 다중 우주론은 “만일 이 개념이 과학의 한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전체 과학에서 가장 극도의 추정을 한 이론이라는 명칭을 영원히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Luke Barnes, “The Fine-Tuning of the Universe for Intelligent Life,” Publications of the Astronomical Society of Australia 29/4 (2012): 529-64.
• 거짓을 입증할 수 없다: 하나의 가설을 단지 철학적인 것으로 만들기보다 과학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가설이 원칙상 다른 가능한 관측에 의해 논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프린스턴대학교의 폴 스타인하트는 다중 우주 개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이후에, 그것을 반박했다. “그것은 심지어 과학 이론조차 아니다. 그것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Maggie McKee, “Ingenious: Paul J. Steinhardt,” Nautilus 25 (Semptember 2014).
• 과학 마개(Science Stopper): 다중 우주론에 대한 또 하나의 반대는 그 이론이 비성숙한 대답을 받아들일 핑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다중 우루론을 지지하는 책을 두 권 쓴 브라이언 그린 Brian Greene, The Elegant Universe: Superstrings, Hidden Dimensions, and the Quest for the Ultimate Theory (W. W. Norton, 2010); The Hidden Reality: Parallel Universes and the Deep Laws of the Cosmos (Vintage, 2011).
조차도 그 이론이 “과학 마개”로 사용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사실이라면 다중 우주론은 … 풍성하며 놀라운 격변이겠지만, 잠재적으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타당성을 평가하는 본래적 난관 너머에, 보다 전통적인 과학적 설명 환경에서 우리는 언제 다중 우주라는 사고의 틀을 불러들여야만 하는가? 만일 다중 우주론이 100년 전에 등장했다면, 연구자들은 어떻게 다중 우주의 한 구석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는가에 관한 여러 신비들을 다중 우주 탓으로 돌리고 연구를 더 진척시키지 않음으로써,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놀라운 모든 과학적 발견을 하지 못하게 만들지 않았겠는가? … 납득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관측들에 직면해서, 연구자들은 다중 우주라는 틀을 섣불리 불러냄으로써, 일부 현상을 선언하여 우리 자신의 버블 우주 안의 조건들을 단지 반영하고 결과적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더 깊은 이해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Brian Greene, “The Multiverse,” in What Is Your Dangerous Idea? Today’s Leading Thinkers on the Unthinkable, ed. John Brockman (Harper Perennial, 2007), 120-21.
• 미세조정을 제거하지 말라: 다중 우주론의 또 다른 문제는 비록 그것의 동기가 미세조정을 제거할 욕망이며, 신적 창조자도 제거할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제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폴 데이비스에 따르면, “과학적 다중 세계 가설은 단순히 그 문제를 우주의 차원으로부터 다중 우주의 차원으로 바꿀 뿐이다.” 그 이유에 대해 데이비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중 우주는 많은 짐들과 함께 오는데, 그 모든 폭발(bangs)을 맞이할 엄청난 공간과 시간, 그 모든 폭발을 촉발시킬 우주 창발 구조, 물질들로 우주들을 채울 물리적 장(fields), 사물들을 발생시킬 힘들의 선택 등이다. 우주론자들이 이런 특징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다중 우주에 스며 있는 포괄적인 ‘메타 법칙들’을 상상하고 또한 각각의 우주에 구체적인 부수법들을 만드는 방법이다. 메타 법칙들 자체는 설명되지 않은 채, 영원불변하며 초월적 실체들로서 그냥 존재하며 단순히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메타 법칙들은 설명되지 않는 초월적 신과 비슷한 지위를 갖는다. Davies, The Goldilocks Enigma, 204; Davies, “Stephen Hawking’s Big Bang Gaps,” Guardian, 4 September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