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의 시선 - 부엉이바위에서, 팽목항에서 다시 시작하자(뼈저린 성찰로 검찰공화국을 견뎌내자)
- 한홍구
검찰개혁으로 출발한 문재인 정권은 ‘검수완박’ 소동 속에 임기를 마쳤다. 촛불로 탄생하여 20년은 너끈할 것이라던 민주정권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주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검찰총장출신 검찰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하에 5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검찰개혁을 외쳤건만, 이제 거대한 검찰권력이 대한민국을 장악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라고 공언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선거과정에서 여러 차례 “문재인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검찰을 견제하려 할 때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검찰이 이제 검사동일체(- 법적으로는 사라졌다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의 정점이 검찰총장이 아니라 대통령으로까지 확대되어 버린 상황에서 어떤 공포 또는 괴기영화가 연출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민주당은 검찰개혁의 마지막 수순이라며 ‘검수완박’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새 정권의 2인자, ‘소통령’으로 불리는 법무장관 지명자 한동훈에게 ‘야반도주’라는 치욕적인 조롱을 당하며 물러난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한겨레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개혁과제로 단연 검찰개혁(31%)을 꼽았다. 두 번째 정치제도 개혁은 21.3%였고, 우리 국민들의 큰 관심사인 재벌개혁(12.7%), 언론개혁(11.8%), 교육개혁(9.8%)을 꼽은 비율을 합친 것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검찰개혁을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여기고 있었다. 사실 검찰개혁은 촛불정권만의 과제가 아니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검찰개혁은 민주계열이나 보수계열을 가릴 것 없이 모든 후보들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과제였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 중에 검찰 없는 나라 없고, 선거 안 하는 나라 없겠지만, 30년 넘게 선거 때마다 검찰개혁이 모든 후보의 주요 공약으로 제기된 나라는 대한민국 말고는 없다.
그만큼 검찰개혁이 절실했고, 그동안의 개혁이 모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검찰이 법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나라는 없다. 수사권, 수사지휘권, 소추권 등을 모두 가졌을 뿐 아니라, 법적으로는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도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의해 상명하복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대한민국의 검찰이다.
검찰공화국의 완성?
검찰이 막강한 법적 권한을 획득한 것은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되면서부터였다. 그 때도 수사권, 지휘권, 소추권을 모두 몰아주면 괴물검찰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찰의 힘을 견제하는 것이 시급했다. 분단 상황은 식민지의 조선인 경찰들을 프로-잽(친일)이 아니라 프로-잡(직분에 충실했던 것)이라며 면죄부를 주었고, 빨갱이를 때려잡는 전문가로 우대했다. 더구나 미군정은 영미법 체계에 따라 경찰에 수사권을 주려했다. 경찰의 힘이 어찌나 셌던지, 경찰은 걸리적거리는 검사 2명을 암살(1947.9 정수복 검사)하거나 여순사건의 혼란기에 좌익으로 몰아 처형(1948.10 박찬길 검사)하기도 했다. 서기와 여직원까지 합쳐봐야 천 수백 명 선인 검찰은 10만이 넘는 막강 경찰에 비해 너무나 약한 존재였다. 경찰에 수사권을 줄 경우 경찰파쇼는 눈앞에 벌어질 현실이었다. 당시 국회는 당장의 경찰파쇼보다는 미래의 검찰파쇼를 택한 것이다.
군사독재 하에서 검찰은 청와대나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권력의 시녀였기에, 검찰파쇼는 현실화될 일이 없었다. 5공화국 시절에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 처리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찰에조차 밀릴 정도였다. 경찰이 자행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묻히지 않고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검찰이 중요한 역할을 한 데에는 경찰에조차 밀린 검찰의 자괴감도 한몫했다.
민주화의 최대의 수혜자는 검찰이었다. 검찰은 안기부와 보안사, 그리고 대공경찰이 물러선 빈자리를 메우며 정권수호의 버팀목으로 등장했다. 특히 1991년 분신정국 당시 검찰은 유서대필사건을 조작해 정권을 위기에서 구함으로써 보수연합 내에서 입지를 확실히 했다. 김영삼은 대통령이 된 뒤에야 검찰의 힘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검찰총장 자리는 장관 20개 하고도 안 바꾼다는 명언(?)을 남겼다. 검찰이 보인 심각한 문제점 때문에 역대 정권이 시도한 검찰개혁은 오히려 개혁에 대한 검찰의 내성만 키워주어 더 막강한 검찰을 탄생시켰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은 과거 정권의 비리를 열심히 파헤쳐 새로운 정권의 신임을 얻는다. 문재인 정권도 윤석열을 중앙지검장으로 발탁해 ‘적폐수사’를 맡기면서 검찰개혁의 골든타임을 허비해버렸다. 정권이 후반기에 들어서면 검찰은 죽어가는, 그러나 아직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 칼을 들이대, 한편으로는 정의로운 검찰의 이미지를 세우며 다른 한편으로는 야당이 검찰개혁의 방파제가 되도록 만든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검찰은 BBK 사건을 덮어버림으로써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최고의 킹메이커가 되었다. 그리고 15년 뒤 검찰총장 출신이 검찰왕국의 ‘킹’이 되었다.
‘검수완박’ 하면 검찰개혁이 될까?
대선과정에서 너무도 많이 나온 이야기지만, 윤석열을 대통령으로까지 키운 것은 문재인 정권의 정략적인 적폐수사와 어설픈 검찰개혁이었다. 검찰개혁의 실패가 결국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을 낳았고, 그와 검찰이 다스리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황망함이 ‘검수완박’을 낳았다. ‘검수완박’에 마지못해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검찰개혁을 열열이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 매우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검수완박’을 밀어붙였을까? ‘검수완박’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문재인 정권은 왜 이를 지지율이 80퍼센트에 이르던 집권 초기나, 국회의석 180석을 확보한 2020년 21대 총선 직후에 추진하지 않고 임기를 며칠 앞두고 이렇게 허겁지겁 하는 것일까? 그리고 저 허점투성이 법안대로 ‘검수완박’하면 진짜로 검찰의 수사권이 박탈되고 검찰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2년여의 극한대립 끝에 마침내 2021년 초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과연 어떠한가? 그 당시 공수처 설치가 곧 검찰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처럼 요란을 떨었지만, 과연 공수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공수처가 1호 사건으로 ‘조희연 교육감 특별채용 의혹’을 선정했을 때, 벌써 이런 꼴 보려고 공수처에 그렇게 목 매달았나 하는 얘기가 벌써 나왔다. 공수처의 실패나 무력화, 어쩌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는 사실 예견된 것이었다. 검찰 출신이지만, 검찰개혁에 적극적이었던 금태섭 ‘전’ 의원은 공수처가 초래할 문제점 또는 공수처가 검찰개혁에 별다른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다가 공천에서 탈락했다. 금태섭 효과는 민주당의원들이 이번 검수완박 법안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동안 아무도, 공수처만 설치하면 검찰개혁은 다 되는 것처럼 외쳤건만 검찰의 힘은 더 커졌는지를 성찰하지는 않았다. 검찰개혁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검찰의 중립성 확보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였다. 그러나 검경수사권 조정을 미루고 공수처 설치를 얻어낸 셈이 된 문재인 정권이 개혁 시도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어디 공수처뿐이었을까? 왜 민주진영이 소리 높여 추진한 개혁, 이것만 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중요시했던 개혁방안들은 왜 실시된 뒤에 핫바지에 바람 빠지듯 힘을 잃었을까? 친일진상규명법안이나 친일재산환수법으로 친일잔재는 청산되었을까? 그토록 소리 높인 적폐청산으로 과연 민주진영에서 적폐라 부르던 것들은 청산되었을까? 소득주도성장으로 소득도 늘고 한국경제는 성장하였을까? 기승전 최저임금을 부르짖었지만, 박근혜 정부 연평균 7.4% 인상보다 낮은 문재인 정부의 연평균 7.3% 인상을 코로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부동산투기를 막고 힘없는 입주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은 어떻게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재앙으로 인식되며 시장을 혼란으로 빠뜨렸을까? 민주진영이 선한 의도를 갖고 강력히 추진한 법안이나 제도개혁은 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때로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일까?
반대로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몇몇 사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미FTA가 시행되면 나라가 망하고 한국은 미국의 경제식민지 된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났던가?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어 10년을 훨씬 넘게 유통되었지만, ‘뇌숭숭 구멍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그저 다행으로만 여겨야할까? 과거의 군사독재정권은 물론이고 민주화 이후의 보수정권도 북한에 대한 공포를 체제 유지와 지지층 결집의 수단으로 써먹은 것처럼, 진보진영도 대중들에게 필요에 따라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거나 방치해 온 것은 아니었던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검수완박’ 법안은 여론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것은 내용과 추진과정에 모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보수언론 탓만 할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검수완박’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민주당 의원들이 법무장관 후보자 한동훈이 청문회에서 ‘검수완박’이란 용어를 사용했다고 난리를 치는 지경에 몰렸을까? 청문회에서 ‘검수완박’을 주도한 의원들의 민망한 헛발질은 왜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게 되었는가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했으니,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왜 검찰개혁의 대의에,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에 적극 찬성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서, 특히 그 처리방식에 대해서 펄쩍 뛰며 반대했을까? 장애인 인권보호에 노력해 온 김예원 변호사 등 다수의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지적하는 문제에 대해 늦었지만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중수청을 시급히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청 하나 신설하는 것이 1년 만에 가능할까? 지금의 공수처를 보면 중수청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 전망이 솔직히 밝은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권이 한동훈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다면, 이제 민주당은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지만. 상설특검제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로 인사검증 권한까지 틀어쥔 법무장관의 칼춤에 우왕좌왕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검찰공화국을 다시 민주공화국으로
검찰공화국의 도래는 현실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치하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공화국일 수 있을까? 뒤늦었지만 어쩌다가 정권을 내주게 되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복기와 반성이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겠지만, 다시 소를 키울 것이라면 외양간을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먼저 대단히 높은 국민적지지 속에 출발한 검찰개혁이 어떻게 ‘조국 수호’로, ‘공수처 설치’로, ‘윤석열 짜르기’로, 그리고 대선 패배 이후 ‘검수완박’으로 찌그러져 갔는가를 아프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민주진영에게는 정권을 내 준 것이 가장 뼈아픈 것이지만,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첫째, 박근혜 탄핵을 같이 외쳤던 촛불대오가 갈가리 찢겨 나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조국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검찰권 남용으로 분노한 시민들도 많았지만,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특히 젊은 층들이 권력핵심에 자리 잡은 386들에 대해 더 큰 위화감을 느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검수완박’으로 검찰 전체를 적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검찰은 검사 수만 2천명이 넘는 거대 조직이고, 이들의 절대 다수는 정치바람을 타는 공안이나 특수 쪽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을 다루고 있다. 상명하복으로 일관해 온 검찰의 조직문화에 상당수 검사들이 물든 것도 사실이지만, 젊은 시절 가졌던 정의감이나 상식을 유지하면서 과거 검찰의 권력남용과 제 식구 챙기기에 대해서도 정치권력의 검찰 중립성 훼손 못지않게 문제의식을 느끼는 검사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윤석열 검찰총장의 노골적인 특수통 챙기기에 대한 불만은 추-윤 갈등 국면에서 한때 추미애 장관에게 상당한 힘이 실리게 만드는 동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검수완박’ 파동을 거치면서 검찰개혁의 대의에 공감하던 검사들이 거의 전부 현실에서 ‘검찰개혁’이란 명분하에 추진되는 모든 일에 강한 거부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무릇 개혁을 하려면, 특히 인적 청산을 하려면 적을 최소화하고 지지세력을 최대화해야 하는데, 개혁은 말로만 하다 보니 반대파만 늘려준 셈이 된 것이다.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문재인 정권이 진정 놓친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개혁을 하지 않은 점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이 검찰에 힘을 실어줘 검찰을 키운 과정은 이전 정권의 비리를 캐냄으로써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 시도한 과정이기도 했다. 비리가 발생했으니 그것을 수사하고 척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시민들은 김영삼 대통령 아들의 구속, 김대중 대통령 아들 3형제의 구속, 노무현 대통령 형의 구속과 검찰의 모욕주기의 제물이 될 상황에서 스스로 존엄한 마무리를 택한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 이명박 대통령과 만사형통 형님대군의 구속,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대대적인 적폐수사를 계속해서 보아왔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부패정치인이나 사기꾼들만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일까? 이런 일이 한 번도 빠짐없이 반복된 데에는 1987년 체제가 마련한 승자독식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권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을 힘 있게 추진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개헌 추진을 완전히 안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알리바이 만드는 수준이라고 밖에는 평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월 개헌안을 발의하였지만, 이 안은 5월 국회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되었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의석을 얻었지만, 그 후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은 시도되지 않았다. 검찰은 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잘 드는 칼이었다. 검찰개혁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개혁 없이 검찰을 통한 적폐 청산과 인적 청산을 시도하다 보니 검찰개혁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적폐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검사는 박근혜 정권 시절의 국정원의 대선 개입 수사 당시 박해를 받으며 영웅이 된 데 이어, 또다시 한쪽에서는 영웅으로, 다른 쪽에서는 최악의 공적으로 떠올랐다. 그 후 윤석열 검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대통령까지 되었는지는 굳이 이 자리에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제도개혁 없는 인적 청산이 검찰의 도구화와 맞물릴 때 민주주의에 어떤 재앙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지금 겪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당장 지방선거가 코앞이라고 난리이다. 지방선거 잘 치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대선 패배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반성이 필요하다. 어쩌면 먼저 좀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놀라운 성취를 거듭해 여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이 모양일까? 놀라운 성취의 바로 뒤에는 믿을 수 없는 실수 또는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말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파친코>의 등장인물들처럼 역사가 망쳐놓은 그들의 운명을 견뎌내면서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에 힘입은 성취를 잘 유지 발전시켜야할 책임을 지닌 정치엘리트들이나 지식인들은 과연 그 역할을 다했을까?
한국현대사는 긍정적인 놀라움과 부정적인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해방 직후에 친일청산에 실패하리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광주에서의 참담한 학살에서 7년 만에 일어서 6월항쟁을 만들어낸 민주진영이 그토록 갈망했던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리라 생각이나 했었을까? 3당합당 보수대연합의 인위적 정계개편을 7년 만에 무력화시키고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정권이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한 재벌들의 개혁에 실패하고, 재벌공화국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2004년 탄핵 당시 위기에 빠진 대통령을 구해 내고 여당 우위의 새 국회까지 만들어주었는데, 국가보안법 폐지 등 아무런 개혁성과도 내지 못하고 3년 여 뒤의 대통령선거에서 맥없이 패배하리라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마저 그런 비극을 당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 긴 목록에 우리는 결정적인 한 줄을 더하게 되었다. 2016-2017 장엄한 촛불로 잡은 정권을 어떻게 5년 만에 내 줄 수 있었을까?
성찰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과거의 민주진보진영이라 할 만한 영역은 지리멸렬한 지 오래 되었다. 가장 주된 책임이 있는 정치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시민사회나 비판적 지식인들도 매우 답답한 지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회의원이나 ‘어공’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던 시민사회는 권력 감시로 쌓아온 신뢰를 거의 상실했다. 여러 차례의 촛불항쟁을 거치면서 촛불시민들은 시민단체의 영역을 딱 연단 차리는 정도에만 인정해 주었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공’이나 다른 자리로 빠져나가다 보니, 시민단체의 감시역량 자체가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비판적 지식인들도 해체되어 버린 지 오래다. 급속한 대학의 상업화와 진실 따위는 중요치 않은 post-truth 시대, 그리고 유튜브 등 매체 환경의 급변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또한 한국연구재단(과거의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비판적 지식인들 다수를 논문기계로 만들었고, 특히 여러 가지 상황변화가 겹치면서 비판적 지식인의 조직적 재생산은 사실 상 멈춰버렸다. 믿을 것은 촛불시민들 뿐인데 시민들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사실 2016~2017년의 촛불항쟁은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았지만,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이뤄 낼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많은 나라의 대중운동은 촛불을 보고 감탄하며 그 모델을 따라 보려 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진영은 5년 만에 촛불혁명의 성과를 말아먹고 만 것이다. 촛불정권을 어떻게 5년 만에 내주게 되었을까? 필자는 여러 가지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에 관계해 왔지만, 한국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진실로 진상규명이 필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시민들에게 다시 촛불을 들자고 말할 수 있을까? 주변에 다시는 촛불집회 같은데 안 나가겠다고 넌더리 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촛불은 여전히 유효한 대안일 수 있을 것인가?
전후 일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회한의 공동체’란 말을 했다. 일본이 군국주의에 빠져 전쟁으로 치달아갈 때 그것을 막지 못한 지식인들의 책임을 지적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일본군국주의 잔재의 부활을 막고,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진상규명운동에 든든한 벗이 되었던 일본 양심세력의 성격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다. 기억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빈소에서 “우리는 폐족이 되었다”던 어떤 정치인의 울부짖음을! 그 때 한국의 진보진영은 회한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다. 너무 빨리 출세해 버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폐족 신세였던 사람들에게 놀라운 기회를 제공했다. 비서실장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고, 폐족이라 울부짖던 정치인은 한 때 차세대 지도자로 각광 받았지만, 민주당 정권 몰락의 상징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정권교체로, 그리고 2020년 총선으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지지율 놀음과 정치공학에 빠져 기회를 놓쳐 버렸다. 돌이키기 싫지만 부엉이 바위로, 팽목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거기서부터 그 아픔을 뼈 속 깊이 새기며 성찰의 공동체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검찰공화국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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