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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처드 로어 & 조셉 마르토스
번역자 김준우
출판일 2016-10-12
가격 12,000원
ISBN ISBN 978-89-97339-29-7
  • 한기연 2017.02.09 19:36 글쓴이
  • 한기연 2017.02.17 10:00 글쓴이

     데이비드 체틀라헤이 팔라딘(David Chethlahe Paladin)




                                                            최종수 목사


    한 사람이 태어나서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한 인간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큰 복 중의 복이다. 평생 살아오면서 뒤늦게 데이비드 체틀라헤이 팔라딘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또 경이 자체였다. 이 분은 자신의 상처를 “성스러운 상처”로 인식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과 세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그림 그리는 화가로, 치유사로 또 섬기는 사람으로 나머지 자기의 생애를 다 바친 분이다. 

     

    매튜 폭스 신부님은 이 분의 예술을 가리켜 “영적인 예술가는 영에게 말한다. 곧 인간 체험의 깊이를 향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한 인간으로서 창조영성 전통 안에서 자기표현을 찾아 낸 분이라고도 하였다. 영적 여정에는 네 길이 있는데, 이 네 길을 통하여 체틀라헤이의 삶과 예술을 설명한다. 긍정의 길(기쁨, 경이), 부정의 길(어둠, 고난고통, 침묵, 죽음을 통한 자유), 창조의 길(창의성), 그리고 변혁의 길(자비와 긍휼, 치유, 정의)에 비추어 그의 예술은 그의 삶이었고 또 그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바호 인디언의 아름다운 삶의 길을 걸으면서 유니테리안 목회자로, 감옥에서 형목으로, 또 경찰서에서 경목(警牧)으로 봉사하며 살았다. 이러한 삶을 산 그의 그림들은 섬기고 치유하고 긍휼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증언해 준다고 하였다.



    어린 시절


    체틀라헤이(Chethlahe)는 1926년 11월 4일 미국 애리조나 주 셰이 캐년(Canyon de Chelly) 밑바닥에서 나바호 인디언 처녀와 백인 가톨릭 신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체틀라헤이를 낳은 뒤에 수녀가 되기 위하여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을 떠났기 때문에 부모 없이 인디언 보호구역의 모든 분들이 마치 대가족제도의 가족들처럼 보호자가 되어 그를 키웠다. 뒤에 체틀라헤이는 그러한 성장 환경은 자기로 하여금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이상적인 상황이었다고 회고 하였다.


    이 아이에게 준 체틀라헤이(Chethlahe)라는 이름은 나바호 말로 “밤에 우는 작은 거북”이라는 뜻이다. 조산아로 태어나서 요람 판에 누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아기였다고 하며, 종종 요람 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누가 와서 꺼내 줄 때까지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고 한다. 마치 거북이가 목을 움츠려 등딱지 안으로 숨기던 거북 가족들을 상기시켜 주었다고 한다. 팔라딘(Paladin)이라는 성은 인디언 보호구역 근처 지역에 있는 Paladin Mesa라는 이름에서 따 온 것이고 그가 속해 있던 부족의 이름은 “쓴 물”이라는 뜻의 Bitter Water라고 한다.


    그가 자라던 인디언 보호구역의 삶은 그에게 비전을 보여주던 곳이다. 행하는 모든 제의들(rituals)은 인간이 모든 창조물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경축이고 노래와 춤은 신과 모든 것 안에 들어 있는 치유력에 대한 찬양이요 춤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죽음 역시 생성(becoming)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동굴 벽화를 늘 보고 자랐으며 양치기 하는 동안 동굴벽화 근처에 누워 그것을 바라보며 공부하였고 벽화가 주는 가시적(可視的)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모든 성소와 조상들과 교통하는 꿈의 시간이었고 또 치유사(medicine man)였던 아저씨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성장하였다.



    싼타페 인디언학교 시절


    어린 시절 캘리포니아로 가서 선교사들과 함께 지냈는데 그들은 인디언의 “환상들”을 버리라고 하였고 백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주입하려 하고 그의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아 갈등을 겪었다. 6살에서 12살 까지(1932-1938년 까지) 보호구역 밖의 싼타페 인디언 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바호 인디언 외에 프에블로(Pueblo) 인디언의 종교적 관점을 배우게 되었다. 이때에 진리란 많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과 모든 문화의 성스러운 방식들도 존중할 가치가 있다는 아주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은 그에게 인디언 전통 주제들을 그리라고 하였으나 그는 야생화를 즐겨 그렸다. 어느 독일인 할머니가 그에게 스케치 북을 주어 그것을 야생화 그림으로 채웠다. 한 선생이 그것을 발견하여 그의 화첩을 불태워 버리고 야생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식당의 학생들 앞에서 대포알을 쳐드는 벌을 받은 적도 있다. 다른 인디언 학생들과 비교하여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은 종종 그를 내세워 다른 학생들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본보기로 삼은 적도 있다. 그래서 한 인디언 친구는 몸에 온통 하얀 활석 가루를 발라 백인처럼 되어 진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한 편 다른 인디언 친구들은 그가 더 흰 피부를 가졌다 하여 그를 화나게 만들었고 또 그는 자기가 백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할 수 있는 온갖 말썽을 다 부렸다.


    그러나 결국 그는 백인도 아니고 인디언도 아니었다. 그러한 때에 인디언 학교에서 죠 윌슨(Joe Wilson)이라는 인디언 친구를 만나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그는 혼혈아인 체틀라헤이(Chethlahe)에게 “그것이 무슨 문제냐? 우리의 내면이 중요한 것이지”하며 그를 격려하였다. 그 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혼혈아인 자기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 친구는 모든 것을 직접 보기를 원하는 그런 타입의 사람이었다.



    모험의 길 위에 나선 체틀라헤이


    어느 날 선생이 시카고에 대한 말씀을 하시자 바로 다음날 친구 죠와 그는 자동차를 히치하이크 하면서 시카고로 가고 있었다. 당시는 대 공항기여서 이들이 아주 어린 소년들이었음에도 차를 잘 태워주었다. 시카고에서 굶주리다가 경찰에 붙잡혀 인디언 학교로 되돌아 와 호되게 야단을 맞고 벌을 쓰기도 했지만 이들의 가출 버릇을 바로 잡지는 못하였다.


    하루는 친구 죠와 그가 역시 히치하이크로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부둣가에서 배와 부두를 연결하는 배다리를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몰래 배 안으로 들어가 세계가 둥글다는 것을 둘러 볼 좋은 기회를 잡았다. 배 안에서 테드 켁(Ted Keck)이라는 독일 청년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그들이 호주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독일 청년은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호주 정부에 체포될까 두려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친구 죠와 그는 배에서 뛰어내려 1941년 초 까지 호주와 남태평양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들은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검거되어 호주로 보내졌고 여행 도중 본 것에 대하여 호주와 미국 당국에 보고하였다. 체틀라헤이가 가출 소년인 것을 알게 된 미국 당국에서는 그가 CIA의 전신인 OSS(전략사무국)요원으로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에서 그에게 비행기 탈취, 금고나 성벽 폭파, 적지 안에서 첩보활동 등의 훈련을 시킨 뒤 적지에 투입하였다.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몇 년 뒤 체틀라헤이는 전에 배에서 만났던 독일 청년 테드를 다시 만났는데, 그는 독일군 장교가 되어 있었고 체틀라헤이는 전쟁 포로 신세였다. 체틀라헤이는 독일 진지에서 독일군 군복을 입고 첩보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마침 독일 청년 테드가 다른 사람의 명찰을 그의 목에 걸어 줌으로써 그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대신 작업 캠프로 가는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가 15살 반이었을 때 독일 수용소에서 아주 추운 성탄 아침을 맞게 되었다. 그 때 수용소에는 주로 유태인들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독일인들은 칠 팔 백 명의 유태인들의 머리를 때리고 강제로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독일인들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다. 눈 폭풍을 맞은 유태인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얼어붙게 되었다. 그 가운데 50여명은 무릎을 꿇은 채 얼어 죽었는데 죽은 사람들 대부분이 어린이들이었다. 이것을 본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였고 분노로 불타올랐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또는 그 어떤 좋은 것도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을 수 없었다. 밤이 되자 문이 열리고 눈을 뒤집어 쓴 창백하고 여윈 유태인들이 들어 와서 촛불 앞에 잠시 멈추더니 “고요한 밤, 거룩한 밤”노래를 나직이 부르기 시작하였다. 독일어로 노래하였으나 억양은 유태인의 그것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열 두어 살 된 유태인 어린이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헝겊과 담요 쪼가리를 엮어 만든 외투를 선물로 주었다. 외투 위에는 미제 낙타 담배와 성냥이 놓여 있었는데, 그 어려운 상황에 그 미국 물건들을 어떻게 구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다음날 그들은 트럭에 실려 아우슈비츠로 향하였고 그 뒤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유태인 소년이 주고 간 선물은 체틀라헤이가 살아 있는 한 그의 기억에서 지울 수 없었고 인종과 종교의 장벽을 넘어 인류 공동체에 대한 그의 믿음을 강화해 주었다. 그 뒤로도 그는 수용소를 전전하게 되었고 수용소에서 그는 인간이 될 수 있는 최선과 최악의 모습을 모두 다 만나게 되었다. 나치가 포로들에게 자행하기 좋아하였던 일들 가운데 하나는 포로들이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때까지 원을 그리며 행진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 번은 그의 앞에서 행진하던 가톨릭 신부가 탈진하여 넘어지자 그는 미처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내밀어 신부를 붙잡아 주었다. 이것을 본 독일장교는 즉각 체틀라헤이를 움켜잡더니 마치 그리스도처럼 행동하였다고 비난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를 건물 안 마룻바닥에 눕히고 그의 발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벽에 손을 벌리게 하여 손바닥에도 못을 박으려 하자 다른 장교가 그것을 못하게 말렸다. 못을 박던 독일 장교는 잔인한 행동을 멈추고 대신 체틀라헤이를 마룻바닥으로부터 끌어 잡아 당겨 못 대가리가 그의 양쪽 발의 살을 뚫고 나왔다.


    그 결과 상처가 발을 썩게 만들어 결국 포로수용소 진료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발의 괴저증상은 점점 더 악화하여 다리에까지 번졌다. 그 때 진료소 직원이 아니었던 다른 독일 장교 한 사람이 진료소에 아무도 없을 때 나타나군 하였는데 그는 체틀라헤이의 썩어들어 가는 다리 상처 위에 구더기를 얹어 놓고 생닭고기 내장을 그의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체틀라헤이는 너무나 허약하여 독일 장교를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 독일 장교는 이러한 행위를 즐기려 하는 것 같아 체틀라헤이는 그 장교는 물론 그의 행위에 대하여 점점 더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포로 수용소의 호된 시련이 끝나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하자 1945년과 46년 뉴렘베르그 전쟁범죄 재판정에 나아가서 증언하게 되었다. 당시 체틀라헤이의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고 다리 버팀목과 목발에 의지하여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비인간적 행위로 고통을 안겨준 독일 장교에 대한 불타는 증오가 남아 있었다. 독일 장교들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그의 증언이 끝나자 또 다른 사람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는 독일 장교에 대한 변호가 아니라고 하면서 체틀라헤이의 썩어들어 가는 상처에 구더기를 얹어 썩은 살을 먹게 하여 새 살이 돋게 하고 생 닭고기 내장을 먹여준 행위는 어쩌면 체틀라헤이의 생명을 건져준 것 같으니 고려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증언은 체틀라헤이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해묵은 쓰라린 감정이 풀리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앞으로 다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와 정죄를 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다.


    그는 독일 포로수용소 시절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에 대한 비인간성과 동시에 사랑, 나눔, 도움의 손길을 뻗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함께 경험하고 배웠다. 인간은 한 개인으로 한 없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랐고 독일인이고 누구고간에 특별히 더 잔인하다고 말 할 수 없다는 것과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또 비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허지만 수용소에서 가톨릭, 집시, 유태인 등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 하나하나가 진실과 사랑과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 뒤에 그는 누구나 끌어안는 포용(inclusiveness)에 전념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존중 용납하고 그들의 찬양 노래를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었으며 또 그들의 신앙을 배울 수 있고 그들과 함께 자라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몸무게가 겨우 62파운드(약 28Kg)에 2년 반 동안이나 콤마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 때 그는 자기가 아니었다. 콤마 상태에서 그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불확실하였다. 뒤에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돌아와 아저씨에게 이러한 정신적 혼란에 대하여 말하자 아저씨는 그가 자신을 용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콤마 상태에서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창조의 다른 측면에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뒤로 체틀라헤이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서 분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공통의 영이나 창의적 힘을 나누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치유의 길로 이끈 인디언 물치료법


    그러나 당시 그는 젊었고 불구였으며 혼란과 절망 가운데 있었다. 그는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돌아와 재향군인 병원으로 가기 전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어쩌면 그는 평생 재향군인 병원에서 지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가 재향군인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인디언 한 분이 그에게 말했다. “넌 포기할 수 없어!” 그리고 그와 다른 인디언들이 체틀라헤이에게 인디언 치료법인 물치료법(hydrotherapy)을 행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체틀라헤이의 허리를 밧줄로 묶고 걷기 위한 인공장구들(목발이나 다리 버팀목 등)을 치운 다음 홍수처럼 흘러가는 리틀 콜로라도 강물에 그를 던져 넣었다. 그는 물 위로 떠오르거나 아니면 물속에 잠길 수밖에 없다. 그는 친구들이 자기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 가 싶어 화가 났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친구들이 그에게 가한 호된 시련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새로운 길, 새로운 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신의 몸을 사용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동안 그가 취했던 모든 생존방식은 결코 그를 완전히 회복하여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생존을 위하여 오로지 태고의 우주로부터 끌어 온 자기 자신의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친구들이 가르쳐 준 것이다. 그는 곧바로 인식하였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그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순간 그는 그가 지닌 힘과 더불어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경험이 치유의 씨앗이 되어 그는 자신의 신체적 제약을 다루기 시작하고 마침내 1960년대 말 목발과 다리 버팀목 사용을 중지하고 그것들의 도움 없이도 걷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춤추는 치료사(The Dance of the Medicine Man)


    이차대전이 끝난 뒤 절망과 혼란에 빠져 있던 체틀라헤이에게 그의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춤의 신이 땅을 창조하였을 때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주셨다. 죄가 무엇인가?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네가 소극적으로 응답하였을 때에도 너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항상 그것을 넘어서 가야 한다. 계속 춤추어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언제나 네가 가진 최상의 능력으로 응답하라. 그리고 그 응답 때문에 너 자신을 비난하지 말라. 거기 집착하지 말고 놓아 보내라. 그리고 춤추어라, 춤을 추어. 

     

    아들아, 어떻게 춤추어야 하는 지 절대로 잊지 말아라.

    치료사의 춤을 추어라.

    우리 조상들의 영을 부르고 그들의 지혜의 음악을 들으며

    조상들의 심장의 북을 울리고 그들의 목소리로 읊조리어라.

    그리고 춤추어라.

    너의 꿈의 소리와 섞일 때 그들의 영의 음악에 맞추어 춤추어라.

    춤추어라! 춤추면 너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너의 발자취에서 춤출 것이며 너의 소리와 함께 노래할 것이다.

    너의 손을 통하여 치유하며

    너의 심장을 통하여 사랑할 것이다.



    꿈을 그리는 화가가 되어


    그는 화가가 되었다. 시카고 미술 학교에서 러시아 화가 샤갈을 만났다. 그가 체틀라헤이에게 말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꿈꾸고, 그 꿈을 그려라.”체틀라헤이에게는 아름다운 인디언 유산이 있고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그저 잠자고 꿈꾼 것을 그려보라고,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려보라고 샤갈은 격려해 준 것이다. 그래서 꿈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화가가 되는 과정과 그의 그림에 관해서는 더 자세한 내용이 책에 실려 있다.)



    샤먼의 노래(Shaman's Song)


    그리고 그는 샤먼이 되었다. 샤먼은 이야기꾼, 거룩한 정치가, 거룩한 기술자, 거룩한 광대다. 샤먼은 꿈꾸는 사람, 비전을 보는 사람, 신화를 만드는 사람, 마음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필요에 응하기 위하여 뜻 깊은 길을 찾는 사람이다. 샤먼은 전사다. 그들의 상처는 두려움과 고독과 절망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다. 그들은 자기들의 상처를 선물로, 기회로 체험한다. 샤먼의 임무는 그 상처를 취하여 그것을 자랑스럽게 몸에 입는다. 또 인생의 상처를 견디는 모든 것을 위한 열린 장소로 여기고 견딘다.


    “샤먼들은 상처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상처이며, 고통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어머니 지구의 고통이며, 눈물이 참으로 정화(淨化)하는 빗줄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와 상처 입은 전사는 하나다. “우리가 죽었기에 춤춥시다. 우리는 자유입니다. 재로부터 부활한 것입니다.”샤먼의 상징은 죽음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죽음이란 나의 총체적 존재를 내 동료 인간과 나눌 수 있는 문턱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사람은 삶 자체의 총체성과 혼인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의 마지막 기도는 자기의 전 존재를 신과 나누고자 하는 기꺼운 마음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창조성 말고 인류에게 줄 내가 가진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이해, 용납, 친절, 그리고 사랑이라는 형태의 일치라는 선물(the gift of unity)일 것입니다.” 

     

    체틀라헤이(David Chethlahe Paladin)는 1984년 12월 19일(58세)에 사망하였다. 그가 죽은 뒤 그의 부인 린다 팔라딘(Lynda Paladin)은 "한 인간의 엄청난 창의성의 깊이와 넓이를 세상과 나누고자”아래의 책을 엮었다고 하였다. @


    David Chethlahe Paladin, Painting The Dream: the Shamanic Life and Art of David Chethlahe Paladin, Rochester, Vermont: Bear & Co., 1992, 2003. 위의 글은 이 책에서 발췌 초역한 것이다. (샤먼을 무당으로 번역하면 부정적 의미를 연상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베리아나 북미의 또는 남미의 샤먼의 지위와 역할은 우리나라의 왜곡된 무당의 그것과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 한기연 2017.02.20 19:30 글쓴이
  • 한기연 2017.02.25 15:32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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