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폭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HOW TO READ THE BIBLE AND STILL BE A CHRISTIAN
Struggling with Divine Violence from Genesis through Revelation
by John Dominic Crossan, HarperOne, 2015.
존 도미닉 크로산 지음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성경의 결론은 계시록의 재림 예수가 군마를 타고 심판하는 대량학살인가?
성경 자체는 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계속 부정하며 또 전복시키는가?
하나님의 폭력적인 심판과 보복을 믿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분배 정의는 비폭력적인 반면에 보복적 정의는 폭력적인 것인가?
성경이 가르치는 진짜 원죄는 무엇이며 교회는 원죄를 어떻게 오해했는가?
복음서의 비폭력적 예수와 계시록의 폭력적 예수 중에 누가 참 메시아인가?
고대 근동 제국들은 성경 저자들의 하나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세례 요한과 예수가 목숨 바쳐 가르친 하나님 나라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바울은 어떻게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계승했으며, 로마제국을 변화시켰는가?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한 인류가 성경에서 배워야 하는 지혜는 무엇인가?
“존 도미닉 크로산의 저술들은 독창적이며 흔히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만, 오늘날 신약학자들 사이에 매우 격렬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 Elaine Pagels
“크로산은 총명한 저술가이다.”
― Times Literary Supplement
“크로산은 가장 통찰력이 넘치며 생각을 자극하는 주석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탁월한 명료함과 방법론은 성경연구에서 최고이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 Booklist
“번득이는 천재성을 지닌 크로산은 깊은 이해와 연민을 갖고 책을 쓴다.”
― San Francisco Chronicle
“크로산은 신약학자들과 특히 예수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칭송을 받을 뿐 아니라 가장 논쟁적인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 Library Journal
값 15,000원
존 도미닉 크로산 교수는 예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드폴대학교 명예교수로서 미국성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역사적 예수』, 『예수: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 『예수는 누구인가』, 『가장 위대한 기도』, 『비유의 위력』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썼다.
평생 동안 성경과 예수만 연구한 저자가 80세에 탈고한 이 책은 하나님의 계획과 주장이 성경 자체 안에서 계속해서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정되고 전복되는 과정을 처음으로 분석한 놀라운 책이다. 제국들과 문명의 폭력성이 성경의 하나님을 왜곡시킨 역사적 과정을 규명함으로써,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를 밝혀준다.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이 보복과 폭력의 하나님으로 둔갑한 과정, 진짜 예수와 진짜 바울이 가짜 예수와 가짜 바울로 둔갑한 과정을 밝혀, 예수와 바울이 가르친 참 하나님이 정말로 누구인지를 증언한다. 성경 전체 속에서 하나님의 참된 계시를 계속 부정하고 전복시키는 문명(권력)의 거짓 계시를 분별하고, 예수와 바울이 가르친 참 하나님을 올바르게 증언함으로써, 성경을 잘 믿는 사람일수록 흔히 더욱 폭력적인 사람이 되며, 교회 역사가 피로 점철된 이유를 깨닫게 해준다.
창조를 통해 모두에게 당신의 형상을 골고루 나누어주시고 안식일을 창조의 면류관으로 삼아 모든 식구들뿐 아니라 노예들과 가축들까지 편히 쉬게 하시고, 희년법을 통해 철저한 분배 정의를 가르친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점차 보복하시는 하나님이 되어 계시록에서는 온 세상을 피바다로 만드는 분이 되셨는가? 저자는 율법, 예언서, 시편, 지혜, 종말론, 복음서들과 바울의 편지들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제국들의 폭력성이 어떻게 성경 속의 하나님 이해에 큰 영향을 끼쳐서 그처럼 잔혹하게 보복하는 신으로 그렸는지, 그러나 예수는 어떻게 본래적인 하나님, 즉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급진적 사랑의 하나님을 가르치고 살아내셨는지, 또한 바울은 어떻게 예수처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에 대해 도전하고 로마제국을 변화시켰는지를 치밀하게 밝혀준다.
지구 온난화와 다국적기업들의 횡포와 온갖 폭력으로 인해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한 인류가 성경을 무비판적으로 읽음으로써 폭력을 증폭시키는 비극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정의와 평화,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겠는지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들려준다.
목차
제1부 도전
1장. 성경의 결말: 야만적인 하나님에 대한 찬양? __ 9
2장. 성경의 중심: 의미는 중간에 있는가? __ 35
제2부 문명
3장. 양심 __ 63
4장. 폭력 __ 87
제3부 계약
5장. 창조와 계약 __ 109
6장. 축복과 저주 __ 129
7장. 예언과 기도 __ 145
8장. 지혜와 하나님 나라 __ 169
제4부 공동체
9장. 이스라엘과 로마의 도전 __ 197
10장. 예수와 하나님의 급진성 __ 215
11장. 그리스도와 문명의 정상성 __ 237
12장. 로마와 카이사르의 도전 __ 257
13장. 바울과 그리스도의 급진성 __ 279
14장. 바울과 제국의 정상성 __ 301
에필로그: 우리의 밤의 그림자를 뛰어넘기 위해 __ 323
옮긴이의 말 __ 341
성경색인 __ 347

옮긴이의 말
“탈육신”의 종교에서 “성육신”의 길로
로널드 사이더는『복음주의자들의 양심의 스캔들』(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2005) 제1장에서 미국 남부 바이블벨트 지역의 “중생한 복음주의자들”이 가정폭력, 성적 방종, 이혼율, 인종차별에서 미국인 전체 평균보다 훨씬 폭력적/공격적이라는 갤럽조사 보고서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복음주의자들이 “주님을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존 도미닉 크로산은 『하나님과 제국』(God and Empire, 2007)에서, “폭력적인 그리스도교 성경에 기초한 폭력적인 그리스도교 안에서 어떻게 비폭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p. 237). 복음주의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비종교인들보다 더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이유는 성경 자체 안의 하나님의 폭력성 때문이기에, 하나님을 자신들의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열렬하게 섬길수록 폭력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폭력의 원천이 사회적 편견과 불의, 비합리성, 경쟁적인 문화, 종교적 우월감과 배타성, 에고 중심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있다고 볼 때, 하나님의 폭력성을 극복하는 과제는 신학의 일차적 과제이다.
크로산은 마커스 보그(1942-2015년)와 함께 쓴『마지막 일주일』(The Last Week, 2006, 오희천 역), 『첫 번째 크리스마스』(The First Christmas, 2007, 김준우 역), 『첫 번째 바울의 복음』(The First Paul, 2009, 김준우 역)에서, 예수와 바울이 제국과 종교의 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으며, 인류문명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들, 특히 노예제도와 가부장제도, 위계질서, 승리를 통해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통념에 대해 어떻게 도전하고 비폭력적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했는가를 정리했다. 바울이 흔히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 했던 예수의 실천적인 메시지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타계적이며 믿음 중심의 종교로 만든 장본인으로 오해받는 이유는 “첫 번째 바울”의 급진적 메시지가 그가 죽은 후 그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쓴 “보수적 가짜 바울”과 “반동적인 안티 바울”을 통해 완전히 뒤집혀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치밀한 본문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이어서 『비유의 위력』(The Power of Parable, 2012, 김준우 역)에서는, 복음서 저자들이 어떻게 예수의 언어폭력을 점차 심해지도록 만들었는가를 분석함으로써, 예수의 메시지가 훼손된 과정을 밝혔다.
예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저자가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성경 자체 속의 폭력성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그 자신이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또한 아메리카 제국의 시민으로서 제국의 폭력을 체험적으로 인식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제국들의 폭력에 대한 하나님의 반제국주의적 생명정의평화운동의 선언서(manifesto)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 이 책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기념비적인 역작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계획과 주장이 성경 안에서 계속해서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정되고 전복되는 과정을 그리스도교 2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규명했기 때문이다. 제국들과 문명의 폭력성이 성경의 하나님을 왜곡시킨 역사적 과정을 밝히고, 성경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참된 계시(급진적 분배정의를 통한 평화)와 거짓 계시(인간의 문명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보복과 폭력)를 분명히 분별함으로써 성경의 본래적인 참 하나님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사도들의 성스러운 과업을 계승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둘째로, 저자는 그리스도교 성경 전체의 규범과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규범과 기준은 묵시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비폭력 분배 정의의 하나님에 기초한 비폭력적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살아낸 역사적 예수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정체성을 규명한 동시에 유대교와의 차이점을 확고하게 천명했다는 점 때문이다. 『예수는 신화다』이후, 신화적 그리스도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셋째로, 고대의 많은 신들, 예를 들어, 마르둑, 제우스, 주피터, 호루스,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처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섬겨왔던 신들은 오늘날 모두 죽고 말았지만,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야훼 하나님은 아직 살아 계신 이유에 대해 저자는 야훼 하나님의 성격 자체를 사회정의와 평화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갈망과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의 성격 자체 위에 근거하도록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성경 자체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전복시킨 거짓 계시들이 다름 아니라 인류문명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폭력과 보복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성경의 본래적 하나님의 성격을 분명히 증언할 뿐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정반대되는 모습—복음서들 속의 나귀를 탄 평화의 메시아와 요한계시록에서 군마를 타고 대량학살을 자행하는 심판의 메시아—으로 인해 초래된 혼란과 두려움을 깨끗하게 정리해준 이 책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너무 늦게 나왔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매우 절실한 그리스도교 복음의 의미를 밝혀준다. 그리스도교의 일반적 복음 이해는 “4영리 교리”에 바탕을 둔 저 세상 천국의 보상이나, “성공과 번영의 복음”이 가르치는 “재물, 성공, 건강”이었지만, 이런 “공포의 심리학이나 욕심의 전술”(홍정수)이 가르친 “보상논리에 근거한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신학적으로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생명나무, 선악과나무, 원죄에 대한 문명사적인 해석도 독창적 해석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가르친 구원의 길이 세례자 요한과 달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상식적이며 인간과 하나님이 협력하는 구원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인간론이 “전적 타락”을 기초로 했으며, 구원론 역시 “오직 십자가 보혈의 은총”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인간은 자기 구원에서 철저히 무기력하며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크로산의 인간 이해와 구원 이해는 철저하게 성경 해석에 근거하여 “예수 르네상스”의 무대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예수 자신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벗어나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또한 “하나님의 처벌”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인간적 귀결”로 대체한 점이다. 자연재해와 사고들을 제외한 고난은 인간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처벌이 아니라 인간 행동의 귀결에 대해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라 너무 늦기 전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인간이 변화할 가능성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성경이 증언하는 인간의 양심과 능동적 책임성을 천명한 것으로서 “예수 르네상스”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시작된 “예수 르네상스”는 신화적 그리스도 대신에 인간 예수를 새롭게 찾았을 뿐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잠재능력과 능동적 책임성도 되찾을 수 있었다. 성경에서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던 돌부리들과 가시덤불들을 모두 뽑아낸 저자의 평생의 수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예수 르네상스의 남은 과제는 “너무 늦기 전에” 인간의 변화와 사회 변혁, 문명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과제이다. 더욱 악화되는 경제적 양극화와 기후붕괴 현실이 보여주듯이 지속 불가능한 인류문명이 자멸을 향해 돌진할수록, 온갖 폭력도 더욱 증폭되며 고통도 심해지고 있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체념과 사회에 대한 냉소, 문명에 대한 절망도 깊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정신병자가 아니라 말짱한 정신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이 더욱 근본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지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교, 특히 성경문자주의의 불합리성과 몰상식과 폭력성을 제거할 신학적 근거가 확보된 상황에서, 이제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지난 반세기 동안 예수 연구는 크로산을 중심으로 한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해명이 엄청난 공헌을 했다. 제국의 폭력과 종교적 차별에 맞선 예수의 무차별적 사랑과 나눔, 섬김의 하나님 나라를 규명했다. 또한 월터 윙크가 『참사람: 예수와 사람의 아들 수수께끼』(한성수 역, 2014)를 통해 잘 정리해 주었듯이,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을 복음서 연구에 적용시킨 연구도 예수 자신에 대한 종교적 투사 대신에 참 자기를 발견함으로써 개성화를 도와준 예수의 자의식과 교육 방법론을 규명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고백되기 이전에 예수 자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성육신했는지를 밝혔다.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토머스 머튼이 그 맥을 되찾은 묵상전통이다. 토마스 키팅, 리처드 로어, 신시아 부르조 등이 이어간 이 전통을 통해 예수 연구와 신비주의가 만나, 하나님과 일치한 신비가 예수의 비이분법적 사고와 지혜를 중심으로 한 성육신의 길을 회복시켜주었다. 이런 흐름들 모두 전통적인 예수에 관한 종교 대신에 예수의 종교를 찾는 데 공헌했다.
지난 2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가 예수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아서, 물질, 육신, 여성, 자연을 경멸하고, 말과 교리와 믿음만 앞세우며 공격적인 탈육신(excarnation)의 종교가 되었지만, 최근 예수 연구의 이런 세 가지 흐름은 서로 협력하여 예수의 본래적 성육신 종교를 회복하는 길을 제시했다. 신화적인 그리스도 믿기에서 사람의 아들 예수 살기로 가는 길을 제시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전능성이 부정되는 현실에서 예수 르네상스의 남은 과제는 결국 예수가 가르친 것처럼, 나의 에고(ego)만을 전부로 믿는 가짜 자기에서 벗어나 우주 안에서 진짜 자기를 찾고, 이미 우리들 속에 와 있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자유와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일이다. 십자가 사건을 포함해서 “폭력이 구원한다”는 주장에 대해 철저히 반대한 “안티 메시아”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급진적 생명평화의 길은 점차 생지옥으로 변해가는 이 묵시적 세상에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