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생명사 시리즈 2
홀로코스트에 맞선 네 여성
에디트 슈타인, 시몬 베유, 안네 프랑크, 에티 힐레숨
저자 레이첼 펠데이 브레너(1946-2021)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와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토론토의 요크대학교에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30년 간 히브리 문학 교수로 봉직했으며 이스라엘 연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홀로코스트 당시의 게토 일기들과 자서전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한 그는 홀로코스트의 윤리적 및 심리적 결과, 공포 통치 시대의 저항과 무관심, 계몽주의 사상의 붕괴, 윤리학과 정치학, 야만의 시대에 글쓰기가 ‘티쿤 올람’의 과정에서 불꽃이 되는지에 관해 일곱 권의 책과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학제간 연구에 탁월한 학자로 인정받았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맞선 네 여성의 치열한 글쓰기를 통한 저항을 자세히 해명한다. 네 여성은 죽음의 위협을 항상 느끼면서도 믿음과 사랑에 헌신하다가 결국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은 에디트 슈타인(51세), 런던에서 굶어 죽은 시몬 베유(34세), 다락방에서 숨어지내다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장티푸스로 죽은 안네 프랑크(16세),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에티 힐레숨(29세)이다. 네 여성을 흔히 순교자나 성인으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그런 경향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임박한 죽음의 위협 속에서 일기와 자서전을 쓴 치열한 작가로 본다. 또한 그들의 사상사적 위치를 해명하면서, 아렌트, 프로이트, 레비나스뿐 아니라 전후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학자들과 틸리히, 몰트만, 반 뷰렌 등의 신학자들을 통해 그들의 홀로코스트 경험이 어떻게 신학과 여성에 대한 이해에서 획기적 변화의 씨앗이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네 여성이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나치의 최종 해결책 앞에서, 의식을 마비시키는 불안과 절망 앞에서 글쓰기에 몰두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지전능한 전통적 하느님이 사라지고 인간성과 개성마저 철저히 파괴하는 묵시종말적 세상에서 무엇이 그들의 인간성을 지켜주었는가?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역사의 희망을 어디에서 새롭게 찾았는가? 그들의 글쓰기는 어떻게 폭력과 절망에 맞서는 저항이었는가? 자본의 독재와 AI 로봇의 지배뿐 아니라, 기후 파국이 빠르게 다가오는 가운데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다. 선전과 오락이 지식을 대신하며, 사회적 분열, 극우 집단의 혐오와 폭력,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한 비인간적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 상태는 과연 어떠하며, 또한 비극의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 왜 파시즘을 막아내며 우리의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첫걸음이 되는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페미니즘, 신학, 윤리학, 문학 등 여러 분야의 통찰력을 결합한 이 책은 홀로코스트 해석학에서 충격적인 책이다. 저자의 신선하고 독창적인 통찰력은 절대악에 직면해서 글쓰기, 저항, 생명에 대한 헌신이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에디트 슈타인, 시몬 베유, 안네 프랑크, 에티 힐레숨의 글들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이 여성들 각자가 어떻게 잔혹성과 파멸의 악몽 한복판에서 자비심의 증인이 되기로 선택했는지를 탁월하게 밝혀준다.”
—Alan L. Berger, Chair of Holocaust Studies, Florida Atlantic University
“나치의 박해를 받은 여성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이 쓴 책들을 학자들은 대체로 증언으로 간주했을 뿐 사상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슈타인, 베유, 프랑크, 힐레숨의 사상을 살핌으로써 그런 경향을 뒤집는 데 도움을 준다.”
—Sara R. Horowitz, Modern Fiction Studies
“이 책은 매우 가슴 아픈 책이다. 브레너는 당시의 문화적, 휴머니즘적, 페미니스트적 상황을 홀로코스트와 연결시킨다. 저자의 창조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네 명의 여성 작가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Michael Phayer, Marquette University
“브레너는 설득력 있는 책을 통해 많은 사실을 전해주며 씨름하도록 만든다. 이 책은 인문학 양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읽기에 편하며 도전하는 책이다.”
—Maurice Hamington, National Catholic Reporter
“독자들은 네 여성에 관해 솔직한 전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깊은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통렬한 요점은 대다수 홀로코스트 문학의 부정성을 능가한다.”
—Robyn Sassen, Jewish Affairs
차례
감사의 말씀 / 7
서론: 저항의 의미 / 9
제1부 저항과 휴머니즘 윤리
1장. 계몽주의와 불/연속적 대화 __ 25
2장. 지속적인 자기 향상 __ 35
3장. 타인에 대한 초월론적 의식 __ 51
제2부 저항과 종교적 정체성
4장. 에큐메니즘과 반유대주의 사이에서 __ 87
5장. 슈타인과 베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 __ 97
6장. 슈타인과 베유:
자기 긍정과 자기 부정 사이에서 __ 127
7장. 프랑크와 힐레숨:
정체성과 하느님 찾기 __ 165
제3부 자전적 글쓰기의 저항 행동
8장. 예술과 자아가 만나는 지점 __ 201
9장. 슈타인과 베유: 추방된 자전적 자아 __ 207
10장. 프랑크와 힐레숨: 일기 쓰기를 통해 성장한 예술가 __ 217
제4부 저항과 여성성
11장. 공포 통치 속의 젠더 의식 __ 251
12장. 슈타인과 베유: 여성의 본성과 운명 __ 255
13장. 지적이며 정서적인 성숙을 향하여 __ 279
결론: 저항의 유산 __ 291
참고문헌 / 309
옮긴이의 말 / 316
저자 소개 / 320
이정배 교수의 서평
“홀로코스트에 맞선 네 여성” < 칼럼 < 교계·교회 < 기사본문 - 에큐메니안
2년만에 완전히 폐허가 된 가자 지구 동영상
A wasteland of rubble, dust and graves: how Gaza looks from the sky | Gaza | The Guardian
옮긴이의 말
모든 것이 드러나는 묵시의 시간이며, 마침내 “하느님의 세상 대청소”(크로산) 시간이다. “신의 생명사 시리즈”로 이름을 정한 이유는 오늘날처럼 인류가 초래하는 전대미문의 대멸종 시대에는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하느님이라는 고백을 확대할 때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인간중심의 낙관적 역사관을 자연의 역사까지 포함하는 “신의 생명사”로 확대할 필요성 때문이다. 자멸의 길로 치닫는 인류의 책임과 소망을 “신의 생명사”에서 찾기 위해서다.
유대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기로 결정한 후 천사들에게 의견을 물으셨다. 사랑의 천사는 인간이 사랑할 것이라며 인간 창조에 찬성했다. 그러나 진리의 천사는 인간이 거짓이 가득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정의의 천사는 인간이 정의를 실천할 거라며 찬성했다. 평화의 천사는 인간이 많이 싸울 거라며 반대했다. 진리의 천사는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났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경건한 인간만 말하고, 악한 자들에 대해서는 숨기셨다. 마찬가지로 반대했던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부하들은 모두 하느님의 불길에 타서 죽었다. 대천사 라파엘은 상황을 파악하고 찬성했다(Ginzberg, The Legends of Jews, I, 52-53).
반대하는 천사를 모두 죽인 후 인간을 창조할 만큼 “동산지기”가 절실했던 하느님은 노아 홍수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제국의 도시(바벨) 문명을 통해 당신이 지으신 세상을 완전히 파괴할 것을 염려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 우르(오늘날 뉴욕)를 떠나, “정의와 공도”(창 18:19)를 실천하여 “복의 근원”(창 12:12)이 되도록 당부하심으로써 인류를 자멸에서 구원하실 대행자로 선택하셨다. 제국은 정복 전쟁, 노예제도, 가부장제, 위계질서, 빈부격차, 생명보다 이윤 추구, 노동 착취와 같은 약육강식 체제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의 거룩한 존엄성과 찬란한 잠재력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문명을 통해 자연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하는 테러 통치체제이기 때문이다. 만물의 성스러운 신비와 각자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거룩한 사명, 만물이 서로 하나로 연결됨에 대한 인식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이 사라지면, 인류 공동체와 문명은 유지될 수 없고, 야만과 지옥, 자멸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인류를 제국 문명의 자멸에서 구원하라는 하느님의 사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우선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직접 경험해야 했으며, 광야의 방랑, 포로 생활도 겪어야만 했고, 2,500년 가까이 나라 없는 민족으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뼛속 깊이 배우고, “정의와 공도,” 즉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는 생명의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원칙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직접 체험을 통해 배우도록 철저히 단련시킨 세월이었다.
그러나 나치에 의해 6백 만 명이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겪고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를 자행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국가”를 지구상에서 지워버리려 획책하고 있다. 성서 최초의 신학자가 활동한 솔로몬 왕 시대 전후처럼, 하느님의 백성이 “복의 근원”은커녕 “저주의 근원”으로 둔갑한 것이다. 또한 세상에 본보기가 되는 “산 위의 등불”(마태 5:14)이라는 청교도 소명감으로 출발한 미국은 기후 위기 자체를 부인하며,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의 문명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팔레스타인 학살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반유대주의”로 낙인찍고, 미국의 정책에 비판적인 국가들에 대해서 높은 관세율을 부과함으로써 국제적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산업”(노르만 핀켈슈타인)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런 악랄한 테러의 근거가 되고 있을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피해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여, 이스라엘의 국가 안보와 국토 팽창을 정당화하며,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한 비판조차 “반유대주의”라고 낙인을 찍는 현실이다. 과거의 제노사이드를 기억하는 것이 약자들에 대한 잔인한 제노사이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서에 근거해서 자신들과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한 나라들의 반성서적이며 비인도주의적이며 반생태적 태도는 이스라엘과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서를 읽고 폭력적인 인간이 되는 이유는 예수의 비폭력의 상징인 십자가조차 “구원하는 폭력”(redemptive violence)으로 둔갑시키기 때문이다. 유대교-그리스도교 제국들의 이런 자기 배반과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우경화 현실에서 홀로코스트에 맞선 여성들의 믿음과 사랑, 저항에 대해 새롭게 배워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마음의 문제다. 임박한 죽음의 위협 앞에서 불안과 절망에 저항한 젊은 여성 작가들의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과 생명에 대한 헌신을 통해 개인적 자기만족과 감정적 마비 상태에서 깨어나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경제 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진 저성장 시대에는 대다수 사람에게 “먹고사니즘”이 가장 긴급한 관심이 되었다. 한국인 가운데 무종교인 비율이 60%(19-29세는 78%, 성해영)가 넘어, 공산국가들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궁극적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마음의 병이 이미 심각한 문제가 된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 타인과 미래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은 우리 모두의 마음공부가 얼마나 시급하고 어려운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둘째로, 머리의 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속인, 신천지를 비롯한 많은 유사종교 집단은 불안과 외로움, 욕망의 지표다. 부정 선거론과 비상계엄을 지지한 핵심 세력이 개신교인들이다. 현실 착각과 분노는 극단주의의 발판이다. “동성애 반대”에 올인하는 대다수 교회의 근본주의적 혐오 역시 나치 시대처럼 매우 위험한 “생각 없음”(thoughtlessness)을 보여준다. 무종교인 비율보다 더 심각한 건 평균 독서량이다. 한국인의 연간 독서량(2023년 정부조사)은 3.9권(독일 48권, 미국 12권, 중국 8권, 프랑스 7권)이다. 기후 파국과 문명 붕괴가 다가올수록, 비극적 역사에 대한 기억, 혐오와 “생각 없음”과 분노를 초래하는 근본주의 신앙의 위험성, 파시즘의 작동방식에 대한 현실 인식이 시급히 요청된다.
셋째로, 행동의 문제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해 지구에 추가되는 열량이 “매일 히로시마 원폭 80만 개”(제임스 핸슨)에 달하며, 그 열량의 90%가 바다에 흡수되어 바다가 끓고 있다. 섭씨 40도가 넘는 살인적 폭염과 산불, 가뭄과 폭우로 인한 막대한 피해와 식량 생산 감소는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40년대에는 “북반구에서 동시다발적 식량 폭동”(나오미 오레스케스)이 예상된다. 이처럼 문명의 파국이 빠르게 다가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근시안적인 생존 불안과 절망은 극단주의자들의 온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식량과 에너지 자급 생태마을을 만들며, 재난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역적 비상대응체제를 만들 것인가(데이비드 스즈키) 하는 절박한 과제 앞에 서 있다.
홀로코스트에 저항한 네 여성의 믿음과 사랑, 저항에 관한 이 책이 제국의 논리와 가치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깊이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머리를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우리 후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믿음과 사랑을 통해 야만의 체제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하면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실제로, 그 네 여성이 죽은 후에 발표된 자전적 작품들을 신성하게 다루는 것은 전쟁 후에 그 끔찍함을 완화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즉 슈타인은 카르멜 수녀회 소속으로서 순교자로 미화되었고, 안네 프랑크는 희생된 아이들의 보편적 아이콘이 되었고, 베유와 힐레숨은 성인다운 이타주의자들의 만신전(pantheon)에 들어갔다. … 더군다나 그런 표현은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론 중에서)
나는 이 여성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바로 믿음이 사라진 세상 현실에서 믿음을 지키고, 사랑이 없는 세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세상을 사랑하려는 투쟁이었다고 믿는다. (서론 중에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요구하는 성스러움을 지녀야 합니다. 그 성스러움 자체도 유례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예견이라도 한 듯, 베유는 이렇게 주장했다. “마치 페스트에 시달리는 도시에 의사가 필요하듯이, 세상에는 천재적인 성인들이 필요합니다.” (1장에서)
비유대인이었던 카뮈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위협적이며 갑갑한 상황에서, 나치라는 “페스트”의 희생자들이 된 이들 네 여성은 휴머니즘의 이상인 공감과 연대가 실패했음을 직접 경험했다. … 인종에 대한 혐오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처럼 희망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처럼 그 희생자들이 임박한 죽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상의 미래를 바라보게 했던 세계관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1장에서)
폭력과 죽음이 냉혹하게 다가오는 상황에서조차 그처럼 정서적 성숙, 도덕적 책임감, 지적인 정직성에 몰두하게 만든 뿌리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2장에서)
도대체 왜 그 여성들은 당시에 자기의 이익에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는 가치들을 계속 품었으며, 또한 그 이상들을 실천하려 했는가? 훨씬 더 현실주의적 방법을 택했다면, 그들은 자신의 안녕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2장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대신에 우리는 그들의 불행을 거절한다. 궁핍한 상태로 전락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무엇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외면한다. (3장에서)
베유와 힐레숨이 악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취한 것은 고난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서 공통적 근거를 설정해준다. 자유주의자들의 세계, 그 계몽된 세계관은 악, 불의, 고난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베유와 힐레숨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악”을 인간 존재의 뺄 수 없는 부분으로 이해한다. (3장에서)
나치 정권이 네 여성을 유대인으로 선언한 현실에서, 그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강한 친근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유대인 정체성을 봉착하게 된 것은 피할 수 없었다. … 그들은 어떻게 종교적으로 그처럼 두 개의 신분과 관계를 맺었는가? 그들은 부과된 유대인 정체성을 받아들였는가, 아니면 그에 반발했는가? 그들은 둘을 화해시키려 노력했는가, 아니면 자신의 유대인 신분을 부정하려고 했는가? (4장에서)
더군다나, 슈타인이 독일 유대인들을 위해 교황이 중재하도록 자신이 알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반복해서 요청했고, “자기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질” 의향을 고백한 것은 자신의 유대인 신분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증명한다. 슈타인이 그리스도교 교회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해받는 유대인들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연대감을 보여준 것은 용감한 저항 행동을 나타낸다. (5장에서)
이처럼 베유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베유가 당시에 유대인들에 대한 말살이 진행되던 것에 관해 계속 침묵을 지킨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평생의 주장과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헌신에 비추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베유의 침묵에 관해 조지 스타이너는 통렬하게 묻는다. “흔히 압도적이며 독창적 깊이를 가진, 사랑에 관한 철학자 가운데, (베유보다) 더 사랑이 없었던 사람이 과연 있었는가?” (5장에서)
슈타인은 자기가 십자가를 짊어지는 고통을 민족을 위한 자기희생적 행위로 인식했다. 카르멜 수녀회에 입회함으로써, 그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동일시할 가능성을 보았다. 이러한 희망은 그녀를 유대인의 고통과 더 깊이 동일시하게 했다. (6장에서)
베유가 유대교 신비주의와 유사하다는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마르틴 부버는 베유의 탈창조/해체 관념과 카발라의 ‘침춤’ 관념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유대교 신비주의에서는 하느님의 수축을 통해 하느님의 계속적 창조 행위 안에서 인간을 하느님의 파트너로 위치시킨다. “나”의 파괴에 대한 베유의 생각은 유대교에서 낯선 것이다. 부버에 따르면, 유대교는 개인적 자아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개인은 “인간의 ‘나’와 그분의 영원한 파트너인 ‘나’라는 두 개의 튼튼한 기둥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6장에서)
그들은 유대인의 전면적 멸절이라는 내러티브가 펼쳐지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집단학살이라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상황이라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는” 중에 그들은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했는가? 자신들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자각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견뎠는가? (7장에서)
그러나 점차 다른 하느님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것은 보호가 필요한 신적인 보호자(the divine protector who needs protection), 속량받을 필요가 있는 신적인 속량자(the divine redeemer who needs to be redeemed)의 이미지였다. 이런 역할 전환은 희생자를 하느님의 보호자로 만든다. 이제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해주어야만 하는 존재는 고난받는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하느님이 무능력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존재는 그가 구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믿음에 달려 있다. 힐레숨은 가장 감동적인 일기 중 하나에서 자신이 하느님을 돕고 보호하겠다고 서약한다. 하느님은 자신을 도울 수도 없고 보호할 수도 없지만, 철저하게 사라져버린 세상 질서에 대한 흔적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하느님을 돕고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7장에서)
프랑크나 힐레숨은 그런 희망을 품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자기의 일기 내용을 예술가로서의 자기 성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난공불락의 침묵의 장벽을 뚫기로 선택했다. 묵시 종말적 현재에서 과거의 이야기는 더 이상 효과가 없기 때문에, 프랑크와 힐레숨은 젊은 예술가의 자화상을 통해 테러에 맞서는 매일의 투쟁을 구축했다. 내면의 힘을 진정으로 탁월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예술을 통해 자신의 육체적 및 정신적 곤경을 하나의 유산(a legacy)으로 바꾸려고 애썼는데, 그 유산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세상을 위한 유산으로서 그들이 닿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8장에서)
끝으로 베유는 자신이 교회를 “집합적 단체”이며 “도그마의 수호자”로 비판하는 이유는 교회의 도그마적 입장이 반대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으며, 또한 교회가 사랑, 믿음, 지성의 개인적 목소리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베유는 세례에 대한 거부를 철회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9장에서)
우리는 안네 프랑크와 에티 힐레숨의 일기에서, 죽음의 공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이런 재연결에 대한 희망이 사실상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공포에 맞서 구원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일기를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조용히 성장하는 예술가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세계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그들은, 상상력과 창조력의 역량을 피해자의 무력감과 절망에 맞서게 하는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9장에서)
다락방의 덫에 갇힌 상태에서의 “정지된 시간”과 베스터보르크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떠나는 열차의 규칙적 출발이라는 절망 속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가능성”을 기록하는 행위는 예술적 창조성을 생명 유지 체계로 정의한다. 예술 행위가 회복의 수단인 이유는 필연적인 죽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숨막힘”을 반전시키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생명줄(lifeline)이 되는 이유는 그것은 생각과 감정을 정당화하고, 유대인 희생자의 개별성이 말살된 현실에서 개인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기 때문이다. (10장에서)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힐레숨의 윤리를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식의 감상적인 버전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힐레숨은 “막사들의 생각하는 심장, … 전체 강제수용소의 생각하는 심장이 되고자” 했다. 이 “생각하는 심장”이라는 자기 이미지는 고난당하는 사람들과의 감정적 동일시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이성의 범위를 넘어선 상황에서도 “생각하는”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강조한다. (10장에서)
그렇다면 이 네 여성의 최종 해결책에 대한 대응에서 젠더 의식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들은 자신을 유대인 여성으로 인식했는가, 유대인 여성 젠더로 인식했는가, 아니면 단순히 유대인으로 태어난 여성으로 보았는가? 그들 각자의 세계에서 품게 된 소명감, 즉 교육자(슈타인), 종교 개혁가이자 사회적 반역자(베유), 미래의 유명 작가(프랑크), 베스터보르크의 기록자(힐레숨)라는 각각의 소명감은 그들이 세상에 대한 여성의 책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유대인으로서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배제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 세상에 대한 의무감을 느꼈는가? (11장에서)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근본적인 권리로 보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의 슈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베유가 사회주의자로서 여성 노동자가 남성 동료들에 비해 불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 것은 상당히 당혹스럽다. 유대인들과 여성들 모두를 위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 슈타인과 달리, 베유는 두 집단 모두에 대해서 완전한 침묵을 지켰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베유는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운명에 대해 침묵했으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그녀의 신념에 비추어, 여성들을 향해 베유가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12장에서)
슈타인의 여성관은 여성의 “내재적 여성적 가치”(intrinsic feminine value)에 초점을 맞추며, 그녀는 이를 여성의 속량/구원하는 잠재력(redemptive potential)의 원천으로 보고, 남성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여긴다. 여성의 성장과 발전 능력은 남성의 타고난 역량을 능가한다. “남성은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고 말하지만, 슈타인은 그 객관성이 남성을 규율 속에 예속시킨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태도는 개인적이다.” 따라서 여성은 “완전한 인간”의 자유를 얻을 가능성이 더 많다. 여성이 개인적인 성향을 타고났다는 사실이 윤리적으로 훨씬 가치가 있는 이유는 “인간의 인격은 모든 객관적 가치보다 훨씬 귀하기” 때문이다. (12장에서)
슈타인에게 마음이란 자기중심성과 쾌락과 공격 본능을 억누르는 프로이트식 억압 기제(repressive mechanism)가 아니다. 또한 슈타인에게 마음이란 파괴 기제(destructive mechanism)도 아니다. 베유에 따르면, 마음은 “미래와 환상의 세계에 속하는 모든 향유의 욕망”을 제거해야 한다. 슈타인이 보기에, 마음은 여성이 독특하게 “세계를 향해 지니는 삼중적 태도, 즉 세계를 알기, 즐기기, 창조적으로 형성하기”를 회복할 수 있다. 슈타인에 따르면, “마음의 훈련” 또는 자기 교육은 인류 안에서 선한 것을 꺼낼 수 있는 해방적 체제인데, 특히 악이 다스리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13장에서)
프로이트와 베유와는 대조적으로 슈타인은, 개인의 정신적 구성 속에서 공감이라는 내재적 가치를 보고, 이것이 적절한 교육 체계를 통해 계발될 때 윤리적 사회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프로이트가 예언한 문명의 붕괴가 비극적으로 실현되었음은 사실이다. 프로이트와 슈타인 모두 나치 정권의 끔찍한 폭력과 공격성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홀로코스트 이후의 세계에서, 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반드시 함양해야 할 근본적 윤리와 공감의 가치가 있다는 전제에 달려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억압적인 교육 제도를 시행하는 대신, 계몽된 세계에서의 교육은 인간의 내재적 공감 능력과 지적인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13장에서)
안네 프랑크와 에티 힐레숨의 페미니즘적 지향성에도 나타났듯이, 슈타인이 여성에게서 본 돌봄의 특별한 능력은 현대 페미니스트 사상가들―낸시 초더로(Nancy Chodorow), 사라 러딕(Sara Ruddick),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 넬 나딩스(Nel Noddings)―에 의해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결론에서)
폴 반 뷰렌 역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홀로코스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에 대해 씨름한다. 몰트만과 달리, 반 뷰렌은 하느님이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자행하고 있었던 범법 행위들로 고난당하고 계셨다고 본다. (결론에서)
매우 끔찍한 상황에서도 세상과 자기 자신, 그리고 하느님과 연대할 인간의 의무는 힐레숨의 꾸짖음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책임지지 않는다. … 우리가 그분께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천 개의 강제수용소에서 천 번의 죽음을 겪었다.” (결론에서)


Historians estimate that there were about 1.5 million Jewish children (under age 15) living in Europe when World War II began in 1939.
Of these, over 1 million were murdered in the Holocaust. This means that only around 400,000 children survived the war, or roughly 25–27%.
To put it another way:
Killed: ~1.1 million Jewish children (about 73–75%)
Survived: ~400,000 Jewish children (about 25–27%)
These numbers are approximate, since Nazi records were incomplete and many children were hidden, adopted, or displaced during the war.
Jewish Children in Europe during the
Holocaust: Survival by Country
Poland
Pre-war Jewish population: ~3.3 million (largest in Europe)
Jewish children: ~1 million
Survived: only 5–10% (tens of thousands)
Reason: Poland was under direct Nazi occupation, with ghettos and extermination camps (Auschwitz, Treblinka, Sobibor, Belzec, etc.) on Polish soil.
Germany & Austria
Jewish children: ~70,000
Survived: ~6,000–10,000 (~10–15%)
Many were deported to camps, but some survived through the Kindertransport (to Britain), or by hiding.
Netherlands
Jewish children: ~25,000
Survived: ~2,000–3,000 (~10%)
Example: Anne Frank was one of ~107,000 Dutch Jews deported, only ~5,000 returned.
France
Jewish children: ~75,000–80,000
Survived: about 70% (~55,000–60,000)
Reason: French resistance, help from Catholic and Protestant networks (notably Le Chambon-sur-Lignon), and the unoccupied zone (before 1942) provided hiding places.
Belgium
Jewish children: ~8,000–9,000
Survived: ~5,000–6,000 (~60–70%)
Many hidden by Catholic families or in convents.
Hungary
Jewish children: ~300,000
Survived: ~120,000 (~40%)
Hungary was not occupied until 1944, so many survived until the German invasion; afterward, deportations to Auschwitz were rapid. Some survived through Raoul Wallenberg, Carl Lutz, and other rescuers.
Czechoslovakia
Jewish children: ~40,000–45,000
Survived: ~10,000 (~20–25%)
Theresienstadt ghetto (Terezín) was a transit camp where some children survived, though most deported east were murdered.
Greece
Jewish children: ~12,000
Survived: ~1,000–1,500 (~10%)
Especially low in Salonika (Thessaloniki), where almost all Jews, including children, were deported to Auschwitz.
Italy
Jewish children: ~12,000
Survived: ~10,000 (~80–85%)
Italian authorities generally resisted deportations until the German occupation in 1943. Many children were hidden by Catholics.
Soviet Union (occupied areas: Ukraine, Belarus, Baltic States)
Jewish children: ~500,000+
Survived: ~10% or fewer
Einsatzgruppen (mobile killing squads) massacred entire families. Some children survived by fleeing east into the Soviet interior before occupation.
Summary
Poland & Eastern Europe → lowest survival (under 10%).
Western Europe (France, Belgium, Italy) → higher survival (40–80%), due to hiding networks and slower German control.
Overall: Out of ~1.5 million Jewish children in Europe, only ~400,000 survived → about 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