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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연 2018.08.21 10:58 글쓴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대문 위에 휘황찬란하게 걸려 있는 것은 악마의 방패이다.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 가인(Cain)의 표지가 하느님의 형상을 뒤덮은 형국이 되었다. 죄와 비통함, 고뇌와 공포가 이처럼 많았던 적은 없었다. 대지가 이처럼 피로 물들었던 적은 없었다. 동료 인간이 괴물과 같은 악령으로 둔갑했다.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에 휩싸여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그 책임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

    역사는 노력들과 잘못들의 피라미드이다. 그러나 때로는 역사가 그 위에서 하느님이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거룩한 산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분별할 특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바알 셈(하시디즘의 창시자로서 헤셸의 정신적 스승 - 옮긴이)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안내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만일 사람이 악을 목격하면, 그것은 자신의 죄를 배우고 회개하도록 자신에게 보여진 것임을 깨달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목격한 것은 자신 속에도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을 갖고 실없는 말을 지껄여왔다. 우리는 이상적인 것들을 허망한 것으로 간주해왔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불러왔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셨지만 우리에게 무시당하셨다. 우리는 그분에 대해 설교를 했지만 그분을 피했다. 우리는 그분을 찬양했지만 그분을 깔보았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실패한 것의 열매를 거두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분의 목소리는 광야에서 울부짖으셨다. 얼마나 능숙하게 그분의 목소리는 성전들 속에 갇혀졌으며 유폐되었던가! 얼마나 자주 그분의 목소리는 다른 시끄러운 소리에 가려졌으며 왜곡되었던가! 이제 우리는 민족들을 차례로 포기하면서, 그 사람들의 영혼을 떠나면서, 그 사람들의 지혜를 멸시하면서, 그분의 목소리가 어떻게 점차적으로 물러나게 되었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선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은 이제 땅 위에서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잔인함 위에 앙심을, 잔학함 위에 살의(殺意)를 쌓아올리고 있다.

    우리 시대의 공포는 질책과 영원한 수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채운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더럽혔으며, 이제 우리는 우리의 땅의 풍요함, 우리 마음의 재능과 우리 젊은이들의 귀한 목숨을 비극과 파멸에 넘겨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사람이 오늘날처럼 수치스러워 해야 할 이유들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수많은 무서운 땅들 위에 침묵이 무자비하게 떠돌고 있다. 주님의 날은 주님이 없는 날이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유대인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차들을 주님께서는 왜 정지시키지 않으셨는가? 아이를 키우고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일은 너무 어렵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왜 주님은 그처럼 쉽게 만드셨는가? 모세처럼, 우리도 우리의 얼굴을 숨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 두렵고, 그분의 심판의 권능을 바라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굶어죽는 마당에서 증오하는 것을 배울 때, 실제로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미쳐서 날뛰는 사람들이 실업자들의 가슴에 분노의 씨앗을 뿌릴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파시즘이 우리의 양심을 위한 알리바이가 되지 않도록 하자. 우리는 옳은 것과 정의와 선한 것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것과 불의와 악에 맞서서 싸워야만 한다. 우리가 평화의 제단에 제물을 드리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전쟁의 제단에 제물을 바쳐야만 한다. 경험이 없는 등산가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안내자도 없이 그들은 무모하게 야생의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암벽 끝에서 그들이 발을 잘못 디뎌서 불길한 구덩이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구덩이 속의 어둠 가운데서 그들은 가까스로 그 충격에서 벗어났지만, 자신들이 성난 뱀들이 우글거리는 뱀 무더기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 갈라진 틈마다 독 이빨을 드러낸 뱀들이 꿈틀거렸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뱀들을 죽였지만, 한 마리를 죽이면 또 다시 열 마리가 공격해왔다. 이상한 것은 그 중 한 사람이 싸우지 않고 한 켠에 물러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죽기 살기로 몸부림치던 친구가 그에게 왜 싸우지 않느냐고 성을 내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만일 우리가 여기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 모두 뱀에 물려 죽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 구덩이에서 도망칠 길을 찾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의 세계는 뱀들의 구덩이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1939년이나 심지어 1933년에 이 구덩이에 빠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몇 세대 전에 이 구덩이 속으로 내려왔으며, 뱀들의 독은 이미 우리 인류의 혈관 속에 퍼져서 점차 우리를 마비시켰으며, 신경을 차례로 무감각하게 만들고, 우리의 정신을 무디게 만들고, 우리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었다. 선과 악이 한때는 낮과 밤처럼 분명했지만 이제는 흐릿한 안개가 되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힘을 예배했으며, 자비를 경멸했으며, 우리의 채울 수 없는 입맛에만 복종했지 그밖에 다른 법에는 복종하지 않았다. 신성한 것에 대한 전망은 인간의 영혼 속에서 죽고 말았다. 탐욕, 시기, 무모한 권력의지와 같이 우리 문명의 가슴속에 간직해왔던 뱀이 성숙하게 되자, 그 뱀들이 구덩이에서 기어 나와 속수무책인 민족들을 덮쳤다.

    이 전쟁이 발발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 전쟁은 영적인 재난으로 인해 오랫동안 예상되었던 결과로서 발발했다. 진리는 단지 이로운 것과 같은 말이며 숭상하는 것은 단지 연약함과 같은 말이라는 복음에 젖어버려서, 사람들은 “유대인은 우리의 불행”이라는 거짓말이 가져다주는 더욱 커다란 이로움에 굴복했으며, “내일이면 온 세상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라는 오만함이 가져다주는 힘에 굴복했다. 폭격기들이 로테르담, 바르샤바 상공에서 으르렁거린 것은 몇 년 동안 개인적인 두뇌들이 키워왔던 사상들, 나중에는 전체 민족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던 사상들의 메아리에 다름 아니다. 과학이 착취를 위한 도구이며, 의회의 강대상이 위선의 장치이며, 종교는 나쁜 양심의 핑계일 거라고 사람들이 의심하게 된 것은 모두 우리의 실패를 통해서였다. 이상적인 것들에 대해 신앙을 갖고 있었던 애타는 영혼들 안에서, 의심은 도그마가 되었으며 경멸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자신들의 양심을 내팽개치는 것이 지적인 영웅주의라고 잘못 생각한 많은 사상가들은 교활한 펜을 휘둘러 생명에 대한 외경, 진리에 대한 두려움, 정의에 대한 충성을 꾸짖고 경멸했다. 스스로 목을 매달려고 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목을 매다는 것이 보다 쉽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스로를 비난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로 인해서 세계의 양심은 파괴되었다. 우리는 본능을 숭배했으며, 이상적인 것들을 불신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엔진을 완전하게 만들려고 수고했으나, 우리의 내면적인 삶이 파멸되도록 내버려두었다. 우리는 미신을 조롱하다가 끝내는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밝혔던 불빛을 꺼버리는 일을 도왔다. 우리는 거룩함을 팔아 편리함을 샀으며, 충성 대신에 성공을, 사랑 대신에 권력을, 지혜 대신에 졸업장을, 기도 대신에 설교를, 지혜 대신에 정보를, 전통 대신에 유행을 샀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가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 문명의 태양 아래서 편안하게 살 수 없다. 폴란드에서(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에서 - 옮긴이) 죽어간 우리의 형제들은 그들의 마지막 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시민을 학살하는 것이 흥겨운 사육제가 될 수 있는 문명, 자연의 힘을 정복했지만 우리 자신의 힘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문명을 경멸하고 냉소하면서 죽었다. 최근에 한 메신저가 와서, 폴란드의 지옥에서 학살당한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이 전하는 다음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우리 유대인들은, 안전하게 살고 있으면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경멸한다.”

    탱크와 전투기들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총을 든 사람은 총이 없는 짐승과 같다. 뱀들을 죽이는 것은 잠시 동안 우리를 구원할 것이지만 영원히 구원하지는 못한다. 만일 우리가 영혼의 파렴치한 행동, 즉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그 범죄에 대해 무관심한 파렴치함을 정복하지 못한다면 전쟁은 무기의 승리보다 오래 갈 것이다. 왜냐하면 악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각에서나 말에서나, 사적으로나 사회생활에서나 똑같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간의 영혼을 그 구덩이에서 꺼내는 일이다. 세계는 하느님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은 태양 빛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사활이 걸린 것임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자. 영혼이 없으면 자연도 없으며, 토라가 없으면 세계도 없으며, 어버이가 없으면 형제자매도 없으며, 하느님이 없으면 인류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기꺼이 들어오시도록 할 때, 우리의 은행들과 공장들 속으로, 우리의 의회와 모임들 속으로, 우리의 집들과 극장들 속으로 들어오시도록 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이다. 오직 그분의 현존 안에서만 우리는 인간의 영광이 인간의 권력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함께 아파하는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인간은 그분의 현존의 이미지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짐승의 이미지를 거부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거부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앙상하게 뼈만 남은 유대인들의 시체들을 리어카에 실어서 게토 담 밖의 거대한 묘지로 밀고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정치가들의 귀에 닿을 것인가?

    전쟁터의 공포 속에서 군인들은 인생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며, 목숨보다 더욱 귀한 것이 있으며, 세계는 공허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엄숙한 증언을 한다. 우리는 이 세계를 하느님을 위한 제단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악마들이 침입한 놀이터로 만들거나 둘 중의 하나를 만든다. 중립성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신성한 것을 돌보는 장관이거나 아니면 악의 노예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우리 시대의 신성모독이 영원한 스캔들이 되지 않도록 하자. 예언자들과 성인들, 순교자들과 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 창조해왔던 것을 우리 세대가 제대로 간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래의 세대가 우리 세대를 혐오하지 않도록 하자. 파시스트들은 자신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데에서 위대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선행에서 똑같이 위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도록 하자. 우리가 집과 사무실에서, 우리의 의회와 모임들에서, 전쟁터의 군인들처럼 희생적이며 착하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예언자들과 랍비들이 귀하게 간직해왔으며 우리의 기도와 유대인의 신앙 행위들 속에 스며 있는 하느님의 꿈이 있다. 그 꿈은 인간의 수고를 통해 악이 제거된 세계에 대한 꿈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섬기려는 의지를 통해 악이 제거된 세계에 대한 꿈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계를 구원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한결같이 열심히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가 사소한 만족을 채우기 위해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주를 지으신 것은 우리의 탐욕, 시기심과 야심을 충족시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살아남은 것은 우리가 저속한 허영심으로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이 순교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구원의 꿈을 우리가 성취하도록 우리 자신을 성별(聖別)할 것을 요구한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토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 산에 다가갔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산을 들어 올려 그 백성들의 머리 위에 들고 계시면서, “너희가 토라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산 밑에 깔려 죽든가 둘 중의 하나다”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의 산은 또 다시 우리의 머리 위에 들려 있다. 우리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갱신할 것인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제2차 세계대전의 의미," <도덕적인 숭고함과 영적인 담대함>(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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