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Merton
when the trees say nothing
edited by Kathleen Deignan (2003)
목차
감사의 말씀 __ 7
서문 (토마스 베리) __ 9
들어가는 말: “숲은 나의 신부” __ 15
1장. “살아있는 것들을 아는 일”
2장. 계절
가을
겨울
봄
여름
3장. 요소들
땅
공기
불
물
4장. 창공
하늘과 구름
해와 달
행성들과 별들
5장. 피조물들
나비와 새들
숫양과 어린양
쥐와 토끼
말과 소
뱀과 개구리
사슴과 개
벌과 벌레들
6장. 축제들
비
꽃들
나무들
7장. 임재
산
8장. 성소
숲
나가는 말: 소피아
미주
약어
참고문헌
감사의 말씀
이 책은 노트르담 회중의 여성들이 십 년 넘게 뿌렸던 많은 씨앗들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 여성들은 나에게 토머스 머튼의 지혜를 소개해준 사람들로서 엘렌 맥나마라, 에일린 핏제랄드, 그리고 특히 메리 슈미트인데, 메리와 나는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머튼의 현존을 경험하는 기쁨을 나누었다. 1968년에 은총 가운데 맺어진 우리의 우정이 성숙하도록 물을 주신 분은 존 기울리아니 신부님이다. 당시 우리는 머튼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코네티컷 주 브리지포트에 “토머스 머튼 환대의 집”을 설립하기 위해 수고하며, 또한 존 신부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코네티컷 주 웨스트레딩에 “베네딕트 농장”을 설립하던 중이었다. 이 책은 20년 전에 존 신부님이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으며, 나에게 그 씨앗을 이렇게 완성시키도록 격려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더군다나 신부님이 스케치한 그림을 통해서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
내가 존경하는 토마스 베리 신부님이 이 책 서문에서 자연에 대한 머튼의 글들에 대한 소개를 해주신 것은 나에게 영광스러운 일이다. 베리 신부님은 새로운 우주론의 예언자이며 시인인데, 머튼은 이 책의 성찰에서 그런 새로운 우주론을 찬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포담대학교에서 베리 신부님과 공부하는 특전을 누렸는데, 당시에 나는 이 우주의 영광에 넘치는 성스러움을 배울 수 있었다.
나와 함께 연구한 동료 앤 데이그난에게 특히 감사한다. 머튼에 대한 그녀의 지식은 풍부하고 깊다. 그녀의 고양이 갈리나는 내가 이 책을 쓰는 동안의 긴 밤낮에 함께 했다. 또한 나의 글을 비판적으로 읽어준 메리 앤 폴리 수녀와 이오나 대학 교수 자료센터의 다이애나 브린과 직원이 도와준 것에 감사하며, 마이클 바드 박사와 릭 팔리디노에게 감사한다. 특히 머튼 유산 트러스트의 앤 매코믹의 안내에 감사하며, 패트릭 하트 수사의 지원에 감사한다. 그리고 조나선 몬탈도, 폴 피어슨, 국제 토머스 머튼 소사이어티의 동료들과 학자들에게 감사한다. 물론 소린 출판사의 편집자 댄 드리스콜과 여러 사람들은 이 책이 출판되도록 수고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끝으로 삼라만상의 신비를 함께 경축했던 나의 친구들, 스켈링 마이클과 글렌달로에게 감사한다. 나를 아일랜드 고향에 데려다준 돈 보스코 물란과 토머스 오 설리반에게 감사하며, 나와 함께 아일랜드의 거친 바다를 건너고, 또한 지구 정원의 수많은 나무들의 이름을 가르쳐준 나의 아남 카라(영혼의 동반자)에게 감사한다.
캐틀린 데이그난 수녀
이오나 대학, 뉴로셀, 뉴욕
루서너(8월 1일), 2002
서문
토마스 베리
토머스 머튼은 1941년, 스물여섯 살 때, 미국에 최초로 세워진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켄터키 주의 그 수도원에서 저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여 19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당시는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사상적으로 실존주의의 불안이 넘치던 시대로서,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까뮈, 사무엘 베케트, 아써 밀러, 테네시 윌리엄스와 같은 사상가들과 작가들이 모든 환상들이 제거된 채 인간의 삶의 가장 어두운 측면을 다루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그리고 소련과의 냉전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큰 맥락에서 우리는 머튼의 생애와 그의 저술들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머튼은 당시의 여러 사회운동들과 문화운동들에 대해 역사적 동질감을 느꼈지만, 자신의 독특한 소명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기존의 문학적 장르나 특정한 사회적 논쟁에 매몰되지 않았다. 또한 그 소명 때문에 그는 당시에 소용돌이치던 보다 대중적 종교운동이나 영적운동들 가운데 어느 것에도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없었다.
머튼의 시대적 응답은 학문적이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절절한 의미에서 영적이었다. 비록 그는 서양과 동양 모두의 문화와 영적인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는 전적으로 그 자신으로 남아서 대부분 자신의 직접 경험으로부터 글을 썼다. 그는 당시에 필요한 것이 그런 어려움들로부터 벗어날 적극적 방법을 찾는 것임을 알고 있었고, 간디처럼 당시의 인종적 적대감과 사회적 적대감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보다 영적인 길임을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의 통찰력, 사상, 감정의 내적인 밝음이 그가 작가로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비결이었다. 이처럼 직접적인 그의 문체는 인류공동체를 휩쓸고 있는 다양한 관심사들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항상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면서 당시와 미래의 다양한 관심사들에 대해 치유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20년 동안 머튼이 쓴 많은 저술들은 그가 시간이 날 때마다 즉각적으로 또한 일관되게 글을 썼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의 저술의 다양성은 그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가장 의미 있는 맥락에서 사고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머튼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비판 이후의 천진난만함”(post-critical naivete)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방법일 것인데, 이 말은 프랑스 철학자 폴 리꾀르가 한 말로서, 그는 우리가 시대의 사건들을 지나면서 순진함과 경험 모두의 반응을 통합시키는 용어로 이 말을 사용했다.
머튼은 자신이 일찍 죽게 될 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 증거는 그가 글을 쓰면서 지녔던 긴박감 같은 것이었다. 그의 문체는 고요하며 관상적이지만, 자신의 성찰에서 아무런 주저함 없이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문체이다. 몇 년 전에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머튼의 저술에 대한 개관을 설명하면서, 나는 그의 저술들을 다섯 개의 범주로 구분할 수 있겠다고 했다.
첫째로, <칠층산, The Seven Storey Mountain, 1948, 정진석 옮김>에서 머튼은 자신의 삶을 회심이라는 원형적 패턴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실로의 물, The Waters of Siloe, 1949>에서는 그가 수도원 영성의 신비적 차원을 회복시켰다. 수도원 영성은 그 엄격한 참회 훈련 탓에 지나치게 금욕주의로 기우는 경향이 있어서 참된 신비 전통에 대해서는 거의 의심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토머스 머튼의 단상: 통회하는 한 방관자의 생각, Conjectures of a Guilty Bystander, 1966, 김해경 옮김>에서는 그가 당시의 사회운동들에 깊이 천착했음을 보여준다. 넷째로, 그는 시뿐 아니라 그림과 사진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교적인 미학을 발전시켰는데 당시에는 그릿도교적인 미학이 경건주의적 형태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다섯 번째로 성취한 것은 그리스도교 영성과 아시아 영성이 서로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는 이것을 <신비주의와 선의 대가들, Mystics and Zen Masters, 1967, 이영주 옮김>, <토머스 머튼의 장자의 도, The Way of Chuang Tzu, 1965, 권택영 옮김>에서 성취했다.
이처럼 머튼의 저술들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내가 빼놓은 범주는 그가 자연에 관해 쓴 글들이다. 이런 측면을 놓치면 그의 저술의 전반적인 측면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캐틀린 데이그난 수녀는 머튼의 이런 글들을 잘 발췌하여 머튼을 새롭게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어, 단순히 그의 구체적인 글들뿐 아니라 그의 저술의 전반적인 관심을 이해하도록 해주었다. 머튼의 이런 측면이 새롭게 중요한 이유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자연의 무한한 표현방식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방식을 새롭게 고양시킬 필요성이야말로 미래에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핵심적인 관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캐틀린 데이그난 수녀는 머튼이 자연에 관해 쓴 다양한 글들을 여러 주제별로 정리함으로써 포괄적으로 이해하도록 해준다. 머튼의 다양한 경험들은 북부 켄터키 자연 세계의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 그 지역은 오하이오 강 부분의 삼림지대다. 애팔래치아 산맥 너머의 켄터키 주 동부 삼림지대의 서쪽 끝에서 머튼이 새벽과 석양을 경험했으며, 또한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폭염, 들판과 숲, 야생의 동식물을 경험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좀 더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북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크고 독특한 대평원지역이 시작되는데, 이 지역은 서쪽으로 로키 산맥까지 이어져 있다.
1848년 켄터키에 온 수도승들은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후 미시시피 강을 따라 루이빌까지 올라왔다. 그들은 프랑스 멜르헤 수도원 출신들로서, 그 수도원은 성인 베르나르도(St. Bernard of Clairvaux)의 전통 위에 세워진 것인데, 그분은 당시 가장 탁월한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한 분이었을 뿐 아니라 가장 폭넓게 읽히던 저술가 가운데 한 분이었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와 1179년에 선종한 빙엔의 힐데가르트는 12세기의 지도적인 종교적 인물들로 간주될 수 있다. 베르나르도는 머튼의 글의 성격과 스타일에서 가장 큰 영감을 불어넣어준 인물이었다. 힐데가르트와 함께 베르나르도는 머튼의 영적인 저술에서 자연 세계가 중심이었던 중세 저술가들에 속한다. 그 수도원 이름이 끌레르보(Clairvaux), 번역하면 “청명한 경치”(Clearview)라는 것이 이런 점에서 그의 민감성을 보여준다.
21세기가 시작된 오늘날 우리는 결정적 순간에 서 있으며, 자연 세계를 인간의 지성에 대한 하느님의 일차적 계시로 보는 종교 전통을 다시 일깨울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본성과 목적 자체는 자연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런 친밀한 현존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눈과 귀를 갖고 있는 목적이며, 여타 감각기관을 통해 민감하게 느끼는 목적이다. 우리는 외적인 경험 없이 내적인 영적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자연 현상을 보거나 경험할 때, 꽃이나 나비, 나무를 볼 때, 저녁의 산들바람이 우리를 감싸거나 맑은 개울을 건널 때, 우리의 반응은 즉각적이며, 직관적이며, 황홀함을 느낀다. 어디에서나 우리는 신성한 세계가 우리를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한다. 이런 것이 토머스 머튼의 경험이었다. 그런 경이감을 그는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런 신성한 느낌이 결여된 것이 바로 생태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인간이 자연 세계에 순응하려는 많은 노력에서 나타나는 기본적 결점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지키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신성한 것으로 경험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며 지키지도 못한다는 것 역시 진실이다.
환경파괴를 수습하기 위해 단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거나 산업세계의 해로운 영향을 줄이려는 진지하며 헌신적인 노력들마저 수포로 돌아가기 쉬운 이유가 있다. 자연 세계를 일차적으로 인간의 이용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할 따름이지, 신성한 현존 방식으로서 일차적으로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친밀감 속에서 인간이 교감을 나누어야만 하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자연 세계를 사고팔 상품으로만 간주할 따름이지, 우리가 공경할 신성한 실재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산업세계의 매혹과 그 세계가 우리를 현혹시키는 선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깊은 정신적 변화가 필요한데, 그런 정신적 변화가 너무 어려운 이유는 그 어려움을 단순히 회피하거나 그 혜택이 주는 매력 때문이다. 결국에는 성스러움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캐틀린 데이그난 수녀가 감동적으로 포착한 머튼의 선물은 자연 세계 전반에 걸친 이런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이다.
토마스 베리
2002년 6월
들어가는 말
“숲은 나의 신부”
토머스 머튼이 숲과 결혼한 신비는 풍요한 것이지만, 우리 시대의 가장 칭송받는 영적 이야기들 가운데서 간과되고 있다. 기념비적인 명성과 중요성을 지닌 관상의 대가인 토머스 머튼의 생애는 마치 위대한 드라마처럼, 그 안에서 근대의 모든 위기들과 도전들이 해방과 지혜를 찾고 있는 한 영혼으로 묘사되고 있다. 1948년에 발표된 그의 자서전 <칠층산, The Seven Storey Mountain>은 현대 미국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머튼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하느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원형적인 영혼으로 소개했다. 1968년까지 쓴 그의 수많은 일기들과 편지들은 포스트모던 세계의 혼란 속에서 삶의 변화와 충만함을 위해 수고하는 한 인간의 탁월한 자기계시를 완성하고 있다.
머튼이 “낙원을 회복하기 위해” 탐색했던 길은 수백 만 구도자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길이 되었으며, 또한 폭력, 인종차별주의, 상품 문화, 무지, 정신적 혼란과 같은 영구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의 예언자적 목소리는 근대 영성 담론을 바꾼 구원하는 지혜를 선언했다. 오늘날 종교생활이 신비 경험을 향해 방향을 전환한 것, 세상의 상처와 경이감을 대면하는 것, 그리고 세계의 관상 전통들 사이에 서로 지혜를 나누는 것은 모두 토머스 머튼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가 남겨준 유산으로서 개인적 세계, 사회적 세계, 그리고 신적인 세계의 더욱 깊은 곳을 감히 탐색하는 것은 영감을 불어넣으며 도전적인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신성한 문제들에 관한 그의 공적 담론에서 감춰져 있고 애매한 것은, 자연 세계가 그 자신의 하느님 경험의 근거로서 역할을 수행했다는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의 많은 저술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삼라만상을 신의 몸으로서 친밀하게 교감하며 점차 더욱 지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라만상은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보기를 갈망했던 하느님, 또 자신이 안기기를 바랐던 그 하느님을 베일로 싸는 동시에 그 베일을 벗기는 하느님의 몸이다.
… 내가 숲에 사는 것은 필요해서다. 내가 한밤중에 침대에서 나오는 것은 내가 밤의 침묵을 혼자서 듣는 것, 내 얼굴을 바닥에 대고, 밤의 침묵 속에서 혼자 시편을 읊는 것이 명령이기 때문이다.
… 숲의 침묵은 나의 신부이며, 온 세상의 달콤하며 어두운 따스함은 나의 사랑이며, 그 어둡고 따스한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비밀은 오직 침묵 속에서만 들리지만, 온 세상 모든 연인들이 침대에서 속삭이는 비밀들의 뿌리이다. (DWL, p. 240).
토머스 머튼은 그의 수도생활 전체를 이처럼 삼라만상의 심장박동 속에서 고동치는 비밀에 귀를 기울이는 데 사용했으며, 숲과 결혼함으로써 배우자에게 고백하듯이, “좋을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죽기까지 …”라는 절대적 헌신과 환희 속에서 그 비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가 황야의 낮은 웅얼거림 속에서 들은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감미로운 노래들”로서 그는 고독한 수도자로서 그 합창대에 참여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영광과 감사의 시편을 봉헌했다. 시간이 흘러 그 자신의 중심이 “자연 가족들의 충만한 심장”이 된 것은 그의 독특한 주체성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우주에 대해 열려, 삼라만상의 황홀한 찬가들 안에서 침묵의 간격을 두고 찬미를 바쳤기 때문이다.
토머스 머튼은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하느님을 찾아, 수도원과 은수자의 전통을 따랐고, 인간 세상의 피 터지는 싸움에 강하게 개입했으며 또한 영적이며 문화적인 지혜의 풍부한 도서관들을 뒤졌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별견한 “그 넓고 열려진 비밀”은 그가 자연 세계의 “현재적 축제” 안에서 알기를 갈망했던 것, 그에게 피조물들과의 친밀한 “원초적 친숙함”을 일깨워준 지혜 안에서 알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는 삼라만상을 통해 신과의 친교로 인도한 길을 분명하게 추적한 책을 쓰지는 않았다. 그의 여정에 관한 책도 출판된 것이 없다. 그러나 머튼으로 하여금 인간의 소명은 궁극적으로 “낙원의 정원사”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게 만든 어떤 영향들을 밝힐 수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