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msn.com/ko-kr/news/techandscience/%EC%A7%80%EA%B5%AC%EA%B0%80-%ED%83%84%EC%86%8C%EB%A1%9C-%EB%92%A4%EB%8D%AE%EC%98%80%EB%8B%A4-nasa-%ED%83%84%EC%86%8C-%EB%B0%B0%EC%B6%9C-%EC%9C%84%ED%97%98%EC%84%B1-%EC%95%8C%EB%A6%AC%EB%8A%94-%EC%98%81%EC%83%81-%EA%B3%B5%EA%B0%9C/ar-AA1dhBxh?ocid=msedgdhp&pc=U531&cvid=cdaf325fd27f4634b3290eed313eaeed&ei=8&fullscreen=true#image=1
샘 50호 (특집 회고와 전망) 원고
"행성의 깊은 밤"과 "한생명" 신학운동
김준우(한국기독교연구소)

1. <다음 소희>와 <아바타2>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춤을 추며 행복해하는 소녀의 꿈을 으깨버리는 구조뿐 아니라 이 구조를 합리화하는 사회를 고발한다. 비정규직,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등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존엄성과 행복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천민자본주의적 기업국가는 수령 하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지금은 “지구의 꿈”도 으깨어지는 시대다. 1:99의 세계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지구 적자(Earth deficit) 역시 계속 악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폭염, 가뭄, 홍수, 산불로 인해 전 세계 식량 생산이 줄어들고 있으며, 굶주리는 인구는 현재 8억 명이지만 더욱 증가할 것이다. “2050년까지 증가할 인구는 오늘날보다 50% 더 많은 식량을 필요로 하지만, 식량 생산은 거의 1/3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 기후 위기 평가기관인 채텀하우스가 최근 발표한 예측이다(Bill McGuire 2022:132).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수억 명이 극심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에너지와 식료품 생산 재벌들의 초과 수익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은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이다(The Guardian, 2023/7/6). 또한 캐나다에서는 몇 달 전에 시작된 최악의 산불이 현재 500여 군데에서 동시에 타오르고 있지만, 절반은 통제 불능 상태다. 그러나 “기후 방화범들”(climate arsonists)로 지탄받는 에너지 재벌들에게 캐나다 정부는 최근까지 매년 평균 140억 달러의 보조비를 지급해왔다. 엄청난 세금으로 방화범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새로운 석유 채굴과 송유관 건설을 승인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50년 동안 바다는 히로시마 원폭 250억 개 이상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평균 수온보다 섭씨 5도 이상 높아진 해역도 생겨났다. 2023년 6월 말, 남극 주변의 해빙(sea ice)은 평균 넓이(1981-2010년)에 비해 250만 제곱킬로미터(한반도 전체 면적의 11배 크기)나 줄었다. 남반구의 여름철인 11월 이후, 심각한 엘니뇨 현상까지 영향을 끼치면 얼마나 더 줄어들지 예상하기조차 두렵다. 남반구에서는 해류 순환이 30% 느려졌지만, “각국의 탄소감축계획(NDC)은 상당부분 믿을 수 없으며, 매우 불충분하다”(The Guardian, 2023/6/15). <아바타2>는 생명이 시작된 바다가 생존의 마지막 전쟁터임을 보여준다. 1970년 이후 세계 야생동물은 이미 68% 감소했으며, 곤충은 75% 감소했다. 평균 멸종률의 100배에 달하는 대멸종이 진행되는 중이다. “10년마다 0.2도씩 상승”하는 지금의 온난화 속도는 과거 5,600만 년 전에 만 년에 걸쳐 6도 상승했던 대멸종(PETM) 당시보다 수십 배 빠르며, 현재 추세로는 앞으로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인류의 교만, 중독, 환상, 광기는 창조주의 꿈마저 파괴하는 중이다.

2. <돈 룩 업>과 <아주 평범한 사람들>
지구 역사상 지난 6,500만 년 동안 생명체들이 가장 찬란하게 꽃피웠던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는 현재 이처럼 세계 굴지의 에너지 재벌들을 비롯한 초국적 자본가들 중심의 지배체제가 자행하는 대규모 종족학살(genocide), 종자학살(biocide), 지구학살(geocide, matricide)이 벌어지는 시대다. 시장자본주의가 생산성 향상에 매진한 결과는 자연 파괴의 극대화였고, 그 결과는 인류의 멸종 위기다. 허만 멜빌의 <모비 딕>(1851)은 자연의 힘과 대적하는 국가와 문명은 파멸될 수밖에 없음을 증언한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물질적 풍요와 권력에 대한 환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지구의 화학물리 법칙은 결코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 룩 업>(Don’t Look Up)은 인류의 자멸이 자업자득임을 경고한다. 자멸의 원인은 1%의 초국적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체제의 사치, 특권, 광기를 99%의 집단지성이 뒤엎지 못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공중보건-생태-경제-정치-전쟁 위기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자본주의 문명의 지속불가능성을 깨닫게 했다. 더군다나 “여섯 번째 대멸종 사태”는 단지 “영혼의 깊은 밤”이 아니라 “지구 행성의 깊은 밤”이 오랫동안 계속될 전망임을 깨닫게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비극적으로 계속될 것인지는 99%의 정치적 저항에 달려 있다. 그러나 “한생명”의 찬란한 꿈과 환희는커녕 다음 세대들이 겪게 될 묵시적 비극의 깊이를 직시할 용기조차 쉽지 않다. 100년 내에 섭씨 4도 이상 상승해서 5억 명만 살아남을지, 아니면 6도 이상 상승해서 5만 명 정도만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기후 붕괴”의 원인인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고, 자본주의 문명의 지속불가능성을 극복하려는 우리의 정치적 의지와 혁명적 행동에 달려 있다.
두려운 것은 이처럼 “한생명”의 꿈을 여지없이 으깨어버리는 자본주의라는 “맷돌 체제”는 “영혼 없는 좀비들”을 양산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장애인 20만 명을 살해한 나치 독일의 의사들과 간호사들,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하는 데 가담한 경찰과 군인들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비무장 노인들과 여인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참극에 관여한 사람들 가운데 최소 4만 명은 여성이었다. 나치당에 가입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믿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여성들은 1,500만 명이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폭력과 죽음에 대한 익숙함과 무감각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을 쉽게 잔혹하게 만든다. 제주 4.3 항쟁, 여순 항쟁, 보도연맹원 학살, 광주 항쟁에 투입된 군인들과 경찰들처럼, 어떤 환경, 세뇌, 명령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생명과 정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각오해야만 한다. 불안과 무기력, 혐오와 폭력이 확산될수록, 우주적 “한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 새로운 창조에 헌신하는 믿음과 용기와 자비심만이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될 “행성의 깊은 밤”을 견뎌낼 “급진적 희망”(radical hope)을 안겨 준다고 믿는다.
3. “한생명” 신학운동의 꿈
<샘>은 1999년 창간호부터 “하느님 사람 자연은 하나의 생명”이라는 “한생명”의 진리를 분명하게 천명했다. 우주적 “한생명”의 새로운 창조에 헌신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우주 진화의 가장 아름다운 신비이며, 생명 창발 현상의 가장 중요한 진실이며, 또한 창조적 종교와 영성의 가장 주체적인 원리가 바로 “하느님 사람 자연이 하나의 생명”임을 30대 후반에 간파했을 정도로 봄길 채희동 목사의 타고난 혼이 웅장하고 신학적 통찰력이 예리했다. 천민자본주의와 세속주의에 포섭된 한국 사회와 교회의 모순 때문에 많은 영혼이 시들어가는 현실에 대한 슬픔이 절절했던 만큼, 우주적 신비인 “한생명”이 찬란하게 꽃피우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종교적 죽임의 구조와 모순을 돌파할 예수의 길을 새롭고 간명하게 민중의 언어로 천명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1992년 감리교 종교재판을 통해 교회 지도자들이 새로운 신학의 숨통을 끊어놓는 폭력에 몸서리친 만큼 더욱 주체적이며 창조적인 신학운동을 벌일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문자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교회를 향해 그는 “이 천지 안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가득하다”고 외쳤다. 또한 민중신학, 생태학적 신학, 토착화신학을 바탕으로 “농부 하느님”과 “걸레질하시는 예수”와 “예술 목회”를 적극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렇게 깃발을 높이 들고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밝혀야만 선한 싸움을 위한 전우들이 함께 모일 수 있고, 서로 신바람과 흥을 돋울 수 있었다. 박제된 교리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자신과 동지들의 삶의 경험을 통해 고백하는 생동력 넘치는 예수운동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에 매달려 “성공과 번영의 복음”을 전하는 자본주의의 사제가 되는 현실에서 채희동 목사는 이처럼 동지들의 타는 목마름을 채워줄 시원한 “샘”의 물줄기를 열심히 파들어가고 함께 나누느라 열정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11월, 마흔 살의 그가 뜻밖의 사고로 하느님 품에 안김으로써 “한생명 신학운동”의 유산을 이어가는 과제는 남은 이들에게 맡겨졌다.
4. “한생명” 신학운동의 유산
“한생명” 신학운동의 꿈은 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서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지구의 꿈”이다. 현실의 슬픔과 기쁨을 영원한 생명의 실상과 잇대는 민중의 주체적인 꿈이다. 끝없는 전쟁, 반란, 폭동, 학살로 인해 피에 물든 한반도, 여전히 제국주의와 산업문명에 유린당하는 한반도의 생명을 찬란하게 꽃피우려는 간절한 공동체적 꿈이다. “예수의 영향보다 플라톤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아서 육신, 물질, 여성, 자연을 멸시하는 탈육신의 이분법”(리처드 로어)에 사로잡혀 있는 전통 신학을 기독교 본래의 성육신 신비와 비이분법적(non-dual) 사랑의 종교로 되돌려놓는 순전한 꿈이다. 심지어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조차 빈민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쳤으면서도, “50년 간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해 내적 갈등을 겪었다”고 고백한 것은 가톨릭의 전통 교리에 사로잡혀 창조적인 신학적 성찰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즉 하느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나 승천, 또는 파티마 루르드의 기적처럼 초자연주의적인 하느님의 기적을 통해서만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는 박제된 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일지 모른다. “한생명” 신학의 비이분법적 성육신 신비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면 그런 내적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모든 생명체는 35억 년 동안 “하나의 조상 세포에서 비롯되었다”(프랭클린 해롤드)는 점에서 “한생명”이다. 또한 모든 생명체는 서로 다양하게 발전하며, 서로 주체적으로 성장하며, 또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토마스 베리) “한생명”이다. 지구의 70%는 바다이기 때문에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가 정확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생구(生球)가 정확하다고 본다. 한 줌의 흙, 한 수저의 물에도 생명체(미생물)들이 수천만 개씩 살아 숨 쉬는 기적 같은 곳이 지구 행성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치열하고 끈질긴 창조/진화의 산물로서 거룩하다. “한생명”이 지극한 신비이며 최고의 아름다움 자체인 이유는 “폭력과 고난은 모든 생명체들의 삶에 불가결한 것이며 또한 역설적으로 그들의 영광에도 불가결한 이유는 그 곤경에 대해 (욥처럼) 불평하고 탄식하는 대신에 견디어냄으로써 더욱 용기를 발휘하며 더욱 찬란하게 되기 때문이다”(Karen Armstrong, 2022: 60-61).
5. 대멸종 시대의 “한생명” 신학운동의 과제
기후 붕괴와 대멸종 사태로 인해 전대미문의 지질학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생명” 신학운동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치열한 공부와 토론, 행동이 요청된다.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는 흔히 극단주의가 승리하며, 근본주의와 같은 단순논리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1) “한생명” 신학운동의 목표가 “풍성한 생명”(요 10:10)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생존자를 최대한 늘리는 과업이라는 점이다. 35억 년 동안 치열하게 전개된 생명의 역사에서 다섯 번의 대멸종을 거치면서도 “한생명”이 아름답게 꽃피운 것은 생존자들이 양생(養生)의 과업을 줄기차게 이어갔기 때문이다. (2) “한생명” 신학운동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한생명”의 우주적 신비와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삶 속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과제다. 생태-정치-경제적 혼란이 초래하는 불안과 우울증, 무력감과 패배주의, 혐오와 폭력이 확산될수록, 정신적 건강을 지킬 내적인 힘을 찾아야 한다. 우주의 신비를 품어 안는 신화와 신학은 예배를 통해 실제적으로 경험되어야만 그 의미와 생명력을 살려낼 수 있다. (3) 전통 신학의 초자연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완전히 극복하는 과제다. 인간은 본래 “우주의 뇌”에 해당하지만, 이제는 지구 행성의 파괴자(terminators)가 되었고, 멸종 위기종이 되었다. 초자연주의적 기적의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 예수는 “폭력이 구원한다”는 메시아주의를 거부한 “안티-메시아”(로즈마리 류터)였다. 혼돈과 파멸에 대한 체념이나 운명론, 개인적 영성이 아니라 시민 불복종과 저항, 연대만이 자멸을 향해 치닫는 지배체제를 타파할 수 있다. (4) “한생명”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압살하는 사회종교적 죽임의 계급구조에 대한 분석이다. 대멸종 시대에는, 수백 수천 권에 기록된 제국의 연대기들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모든 제국들의 도시들조차 몇백 년 후에는 야만인들의 도시와 역사의 폐허로 변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죽임의 세력들에 맞서는 투쟁의 결과와 승산이 아니라, 투쟁과 저항 자체가 가치 있는 과업이며 피할 수 없는 소명이다. (5) 적극적인 신학적 대안 찾기(positive campaign) 과제다. 차축시대의 세계종교들, 나사렛 예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토머스 머튼 등 모든 위대한 종교와 영성가들은 죽임의 체제가 전쟁과 학살, 수탈과 독점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을 유린하던 시대에, 그 죽임의 체제에 빌붙어 사는 기성 종교 귀족들과 부질없는 논쟁을 벌이는 일보다 창조적이며 적극적인 대안을 찾아 제시하는 과제에 몰두했다. 종교 귀족들은 항상 “은총의 도구들”(경전, 성전, 사제, 성일, 율법, 교리 등)을 절대화함으로써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한다. 예수는 그에 맞서서 모든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무차별적 사랑과 용서와 은총을 실천했기 때문에 종교 귀족들이 앞장서서 예수를 정치범으로 처형했다.
6. “기후 지옥”을 피할 기회는 5년
팬데믹 사태로 인해 거의 700만 명이 죽었지만, 경제성장주의에 사로잡힌 인류세는 “자멸을 향해” 더욱 속도를 높여 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인류의 멸망”을 믿을 정도로 심각한 기후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한생명”의 터전인 지구 행성의 생태계는 현재 너무 많은 중병을 앓고 있어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남은 탄소예산은 2023년 현재 250기가톤이다. 매년 54기가톤씩 사용하기 때문에, 앞으로 5년 내에 모두 소진되어, “기후 지옥”의 문턱(1.5도 상승)을 넘게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2022년 현재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523ppm CO2e인데, 매년 3〜4ppm CO2e씩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https://gml.noaa.gov/aggi/aggi.html), 현재 추세로는 2030년에 550ppm CO2e에 도달할 것이다. 그 수준에서는 점차 “3도 이상 4도 미만 상승할 확률은 66%가 넘는다”는 것이 보수적인 IPCC(2014)의 예측이다(김준우 2023:19).
“기후 지옥”은 자업자득이며 사필귀정이다. 세계는 2022년에 석탄만 80억 톤 사용했다. 한국은 2018년에 8,820만 톤 소비했다. 1인당 석탄 소비량은 1.73톤으로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한 해 석탄 소비량인 8,820만 톤은 서울의 사대문 안에 온통 석탄만으로 25미터 높이(아파트 10층 높이)를 가득 채워놓고 모두 태우는 양 정도다. 한편 석유는 2018년 현재 세계에서 매일 1배럴 드럼통으로 거의 2억 개씩 태우고 있다. 한국의 석유 소비는 2021년 세계 8위로서, 하루 평균 280만 배럴이다. 여의도의 윤중로 제방 안쪽(2.9km2)에 석유 배럴을 150미터 높이로 쌓은 양을 매일 불태우는 현실이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태움으로써 초래되는 대기오염, 바다의 산성화, 기후 붕괴 때문에 우리는 지금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질주하고 있다.” 기후 재난이 악화될수록,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더욱 확대되고 난민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식량 폭동과 기후 전쟁 등 국제적 분쟁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7. “불가항력적인 악”에 직면한 “한생명”
우리는 지금 “한생명”을 압살하는 전대미문의 “불가항력적인 악”의 세력 앞에 서 있다. 흙 속의 미생물을 멸절시키는 유독성 제초제, 전투원뿐 아니라 민간인들까지 무차별 학살하는 전쟁 무기,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태워 초래하는 대기오염만으로 해마다 900만 명씩 죽이는 화석연료를 계속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죽임의 상인들”(merchants of deaths)은 초국적 대형 은행들과 기업국가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 세계 굴지의 석유재벌들은 “지난 50년 동안 매일 30억 달러의 이윤”을 얻었지만,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기업들은 “매년 5조 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이처럼 역사상 가장 막강한 자금을 갖고 있으며 가장 잘 조직된 카르텔(산유국들 + 에너지 재벌들 + 우파 정치인들과 관료들 + 사이비 과학자들 + 보수적 매스컴들 +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전 세계에서 약한 생명체들과 가난한 사람들부터 대량학살하는 “불가항력적인 악”의 구조이다. 기후 붕괴는 전 세계의 소득구조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선진국에 사는 우리들도 “불가항력적인 악”의 구조에 참여하고 있다. 전 세계 소득 상위 10%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전체의 49%, 상위 20%는 19.5%, 30%는 12.5%, 40%는 7.5%, 50%는 4.5%, 하위 50%는 전체의 7%를 배출한다(Greta Thunberg, 2023: 4). 영구동토층이 녹아 메탄(시한폭탄)이 배출되는 굴뚝이 현재까지 알래스카에서만 70개 발견되었다. 그리고 세계 1%의 초국적 자본가들과 99% 인류 사이의 빈부격차가 악화될수록, 중산층과 노동자 계급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그럴수록 세계 곳곳에서 우파 권위주의 정권들이 장악하고 있다.
나오미 오레스케스 교수의 예측처럼, 2040년대부터 “북반구에서 동시다발적인 식량 폭동”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약탈과 혼란, 살인을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공권력을 요구하여 파시즘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역사상 직면한 최대의 “불가항력적인 악”은 체념과 절망, 패배주의와 운명론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 IPCC 6차 보고서는 2100년까지 2.8〜3.2도(최고 4.4〜5.2도) 상승을 예상한다. 그러나 인류가 탄소중립을 얼마나 신속하게 달성하는가에 따라서 0.1도라도 낮출 수 있다. 특히 앞으로 5년 동안의 노력에 따라서 “행성의 깊은 밤”이 수십 년이 될 수도 있고, 수백 년이 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수천 년이 될 수도 있다. 역사에는 절호의 마지막 기회들이 있으며, 그 기회를 놓치면, 불가항력적인 악의 세력에 압도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히틀러는 1920년에 유대인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할 것을 나치당 강령으로 제시했다.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은 학살을 겪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1938년 11월, 7000개 이상의 유대인 상점들과 267개 회당이 파괴되기까지 거의 20년 동안 “설마, 설마” 했다. 불가항력적인 악의 세력이 얼마나 극악무도해질 수 있는지 짐작하지 못했던 때문이다.
지금은 기술 발달로 인해서 훨씬 더 철저한 감시와 대량학살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퍼펙트 스톰”은 곳곳에서 네오파시즘과 경찰국가를 초래하고 있다.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스트들이 온건파를 이기고 성공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모두는 소수의 훈련받은 광신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역사가 크레인 브린튼의 말은 총체적인 위기 시대에 명심해야 할 사실이다. 전대미문의 기후 붕괴와 대멸종 시대에는 신앙교육과 더불어 정치교육이 중요하다. 장기비상사태에서는 극단주의자들이 흔히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사람들의 극심한 불만과 공포를 더욱 증폭시키고, 곤경의 책임을 희생양들에게 돌리며, 거짓 약속과 가짜 뉴스를 통해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확보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8. “한생명” 신학운동의 전략
“한생명”의 미래는 화석연료 산업의 지배력을 최대한 빠르게 종식시키는 탄소중립에 달려 있다. 0.1도라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생명체들을 더 많이 살리는 길이다(John Cobb, Jr., 2020). 그러나 리우 회의 이후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국제회의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기후 대책을 촉구했지만, 기후 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관건은 화석연료 재벌들은 마지막까지 최대한 이윤을 획책하며, 초국적 자본과 기업국가들은 그 재벌들을 계속 비호하는 구조 속에서, 신속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녹색당과 시민 기후 행동이 정부의 정책을 바꿀 만큼 충분한 위협이 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은 기후 행동 전략을 재검토할 때다. “비폭력 평화주의”는 절대적 교리가 아니다. 넬슨 만델라의 지적처럼, “효과가 있을 때까지만 사용하는 전략”이다. 노예제 철폐, 여성 참정권 운동, 흑인 민권운동,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 등 모든 변혁운동은 비폭력 저항뿐 아니라 태업, 방화 등 여러 극단적 방법을 병행하여 충분한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지배체제의 정책 변화를 끌어냈다(Andreas Malm 2021:25-53). 2100년까지 최소 3도 상승한 후에 전략을 재검토한다면 너무 늦는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서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계속될 수 있는 “행성의 깊은 밤”을 최대한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올빼미의 밝은 눈과 귀, 지혜를 배워야 한다. 대멸종 시대의 불가항력적인 악의 세력 앞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아편과 같다. 집이 불타고 있는 현실에도 “아무 염려하지 말고 잘 자라!”고 아이들을 다독이는 부모와 같다. 본회퍼가 요청했던 “종교 없는 기독교”는 그런 “무대 위의 기계 장치”(deus ex machina)와 같은 신 개념의 심리적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신은 불안한 신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우주적 보호막이며 심리적 안전장치임에 틀림없다(Peter Rollins 2011:50). 그러나 그런 도깨비방망이 같은 신은 대멸종 시대에는 폐기되어야 할 넌센스다. “한생명” 신학운동은 그런 초자연주의적 집단최면의 넌센스부터 털어내기 위해 신학적 재구성이 시급하다.
지금은 인류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정신적 건강과 영적인 힘이 요청된다. 지금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또한 수운 선생과 소태산 선생이 개벽을 외쳤던 시대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지구 역사 46억 년 동안의 진화/창조 과정을 통해 돌보신 “한생명”의 우주적 창조에 참여하기 위해서 절실히 요청되는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와 찬미, 파괴되고 상실되는 “한생명”의 터전에 대한 슬픔과 애도, “치열한 자비심”(ruthless compassion)과 공동체적 돌봄이 “행성의 깊은 밤”을 견디어낼 회복력(resilience)과 철저한 희망(hope against hope)의 원천이다. 우리의 기도가 “사랑과 정의의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국가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효과적 전략”을 찾아내고 연대하고 저항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남도록 정치적 행동이 요구된다. 우선적으로 교회들의 연금(은급비)을 비롯한 재정을 투자하고 있는 금융기관들과 화석연료 산업의 관계부터 조사하여 투자 철회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한생명”의 거룩하고 창조적인 영은 연약한 생명체들을 더욱 많이 살리기 위한 공동체적 행동들 속에 가장 치열하게 임재하신다. “신생대 마지막 단계”를 최대한 단축시키고 “생태대”를 열어가는 이 “위대한 과업”에 앞장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서, 예수의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단식투쟁과 체포, 심지어 징역형까지 감수하는 수많은 행동가들, 학자들, 그리고 백만 개 이상의 단체들이 “한생명”을 위한 선한 싸움에서 “구름처럼 허다하게”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바다는 1971년 이후 히로시마 원폭 250억 개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흡수했다.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3/jun/15/from-the-oceans-to-net-zero-targets-were-in-denial-about-the-climate-cri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