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초까지 45만 명 사망 예측 나왔다…‘최악’의 엘니뇨 경고 | 문화일보 (2026/9/25)
2026년도 엘리뇨가 매우 강력해서 2027년도 봄에 산업화 이전 대비 1.9도 내지 2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1.9도 상승할 수 있다.
WMO 사무총장 Celeste Saulo는 9월 3일 발표에서 엘니뇨가 **2027년 2월까지 지속될 확률이 거의 100%**이며, 해수면 아래 일부 지역의 수온 이상이 정상보다 8°C 이상 높다고 밝혔습니다. WMO는 이번 엘니뇨가 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수준이 될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이어 NOAA의 9월 10일 분석에서는 Niño-3.4가 +1.8°C, Niño-3가 +2.5°C, Niño-1+2가 +3.4°C에 도달했으며, 2026~27 북반구 가을·겨울에 “very strong El Niño”가 될 확률을 90% 이상으로 평가했습니다. 기후 예측 센터
그리고 9월 하순 레딩대 기후학자들은 이 엘니뇨가 예상 최고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기록상 가장 강력한 수준에 이미 진입했다고 평가했습니다. Richard Allan 교수는 인간이 초래한 온난화 위에서 엘니뇨가 겹치면서 홍수·가뭄·폭염의 강도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매일 100만 개 원자폭탄 에너지 투하‥행성을 뒤흔드는 인류의 힘 [기후인사이트 46 | 인싸M] 2026/9/19
2025년 바다에 흡수된 열량은 전 세계 에너지 사용량의 40배
"안전한 길로 가는 다리는 끊겼다" 마침내 출현한 '오버슈트' 세상 [기후인사이트 45 | 인싸M] 2026/9/12
AMOC Collapse: A National Security Threat?
2026/10/13
‘Explosion of melt rates’: 20% of Swiss glaciers lost in five years | Glaciers | The Guardian
The Brutal Truth About Climate Change ft David Suzuki
트럼프는 석탄과 가스 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 제한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US ends limits on coal and gas plant emissions, removing key tool to battle climate crisis | US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 The Guardian 2026/9/14
2026년 현재 기후과학자들이 예상하는 기후 붕괴 21개 시나리오는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최소 섭씨 2.6도(최대 3.5도) 상승하는 것이다. IPCC 6차 보고서(2023)는 중간배출 시나리오로 2100년까지 2.8도 내지 3.2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지금과 같은 고배출 시나리오로는 2100년까지 최고 4.4도 내지 5.7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2.6도 상승 예측에는 온난화로 인한 메탄 방출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메탄 방출로 인해 2100년까지 추가로 0.2도 내지 0.4도 상승할 것이다. Climate ‘feedback loops’ could worsen global warming by 30%, study finds | Climate crisis | The Guardian 미국 루이지아나 주의 한 가스 생산 공장에서만 한 시간에 평균 1.56톤의 메탄을 방출했다.US ‘super-emitters’ of planet heating methane identified by satellite analysis | Gas | The Guardian
세계적인 기후학자 마이클 만(2023)의 분석을 보면, "매년 대기오염과 폭염의 희생자 9백만 명은 코로나19 팬데믹 희생자(2021년 9월까지)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226, 285 n.8).
그러나 2050년까지 섭씨 2도 상승하면, "매년 1억 5천만 명이 더 대기오염만으로 죽게 될 것"인데, 1억 5천만 명은 "홀로코스트의 25배에 해당한다"(David Wallace-Wells 2019:28).
그리고 마이클 만의 결론 가운데 하나는 "3도 가까이 상승하면, 수많은 고통, 멸종, 생명의 손실, 사회적 인프라의 불안정, 혼란, 충돌을 예상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의 깨어지기 쉬운 순간은 마침내 깨어질 것이다"(2023: 240)라고 예상한다. 과거의 문명 붕괴처럼, 주된 원인은 식량난과 전쟁 때문이다.
이처럼 기후 파괴와 생태계 파괴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을 정면에서 방해하며 파괴하는 것이다. 기후붕괴를 촉진시킴으로써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데 앞장서고 있는 자는 전 세계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석유재벌과 결탁해서 모든 재생에너지 정책을 중단시켰다. 최근 미국의 정신과 의사 50명이 트럼프의 정신질환을 경고했을 정도로 중범죄자이며, 전쟁범죄자이며, 정신병자인 트럼프는 감옥에 갈 것이 두려워 민주적 선거를 파괴할 방법까지 찾고 있다. 그의 손에는 핵전쟁의 권한이 주어져 있다. LIVE: 50 Top Psychiatrist Issues NUCLEAR WARNING About Trump... | The Weekend Show 2026/9/7
"멸종반란" 공동창립자 로저 할럼의 <21세기를 위한 상식: 기후 파국
과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한 비폭력 반란 전술>(2019).
21세기를 위한 상식 pdf.pdf (B5용지 136페이지)
나는 지난 20년 동안 기후 행동의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수억 명이 함께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과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수십억의 자금을 모았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온라인 청원에 서명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위기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유엔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진보적 정치인들과 그들의 개혁을 믿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앨 고어는 대규모 콘서트를 열고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수많은 비정부기구NGO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나는 환경 NGO들의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샴페인을 즐기는 환경운동가들과 거짓말하는 정치인들을 상대했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이미 2007년에 개량주의적 접근법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문제는 코크Koch 형제 같은 산업계 억만장자들과 다른 화석연료 거물들이 정치에 행사하는 영향력이었다.
그날은 로스앤젤레스의 또 다른 따뜻한 밤이었다. 나는 비공개 행사에 초대받았다. 테슬라 로드스터 시제품을 언론과 초대 손님들에게 공개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번갈아 차를 타고 건물 주변을 달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테슬라는 길 끝에 가 있었다.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처음 본 원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놀라웠다.
2007년 한 캠페인을 진행하던 중, 나는 대규모 음악 행사와 엄청난 모금 운동을 통해 세상을 구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유명인사들이 앞장서서 기금을 모으고, 그 돈으로 환경을 구하기 위한 사상 최대 규모의 홍보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었다.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같은 거대한 세계적 행사가 될 터였다. 테슬라 행사장에서 나는 저명한 언론인 한 사람을 찾아가 내 구상을 설명하고 그의 찬사를 한껏 받을 생각이었다. 그 언론인은 당시 《이코노미스트》 기자였으며 현재 미국외교협회의 종신회원인 비제이 바이테스와란Vijay Vaitheeswaran이었다. 그는 내 구상을 주의 깊게 듣더니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웃는다고? 내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틀릴 수 있단 말인가?
비제이는 잔인하거나 불친절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화석연료 산업에는 당신이 어떤 홍보 캠페인을 벌이더라도 그보다 100배나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금이 있습니다.” 그는 계속 이야기했지만, 나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이미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옳았다. 낙담한 나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 12년 동안 나는 화석연료 기업들이 막대한 금융자본을 이용해 정당들을 매수하고, 미국의 탄소배출권 총량규제 및 거래제 같은 실효성 없는 방안에 NGO들이 매달리도록 유도하며, 공론장에서 기후과학에 대한 의심을 퍼뜨리고, 정책 개혁의 속도를 달팽이걸음처럼 늦추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전략은 성공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론이 계속 확산되면서 기후변화 완화는 유권자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푸틴과 트럼프가 권력을 잡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후운동을 그만두었다.
그러던 중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이 런던의 다섯 개 다리를 봉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2019년 4월, 그들은 런던 중심부를 마비시켰다. 이것은 뭔가 달랐다. 나는 로저 할럼을 만났고, 그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급진적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첫째 — 진실을 말하라. 주류 언론은 기후과학에 대한 의심을 전염병처럼 퍼뜨리며 기후변화 회의론을 부추겼고, 그 결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무기력 상태가 이어졌다. 위기의 심각성은 축소되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
둘째 — 비폭력 시민불복종. 우리는 체포되어야 한다. 수만 명이 체포되어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체포되어야 한다. 이제 시위나 청원만으로는 안 된다. 그 대신 비폭력 시민불복종에 나서야 한다. 대규모로, 아주 많이 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행동에 나설 때까지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켜야 한다. 아니면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설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
셋째 — 보편주의. 다시 말해 생태 위기와 기후 위기는 어떤 특정한 정치 이념이나 문화, 연령 또는 성별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로저 할럼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미래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나 행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 자신과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인 반란에 불을 붙여야 한다.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
— 익명의 기후 운동가
멸종반란 공동창립자가 제시하는 긴급하고 필수적이며 실천적인 행동의 촉구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1972)를 발표한 지 50년이 훨씬 더 지났지만, 인류와 지구의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되었다. 인류의 생태적 토대가 무너져내리고 있다고 호소했지만, 세계는 산업화와 시장전체주의의 논리에 따라 "자연의 무한파괴와 환경의 무한오염이 불가피하다"는 신념으로 계속 질주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초래된 것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상승이라는 "기후지옥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50년이 넘도록 우리의 생활방식이 지구를 파괴할 것이라고 계속해서 경고했지만,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은 구체적인 대안을 실행하지 않았다.
한국도 마찬가지 현실이다. "정부는 반도체 생산과 데이터센터 건립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4월의 초안과 8월의 수정안 사이에 2040년 최대 전력 목표수요가 26.6GW 증가했다. 핵발전소 19기를 더 짓는 용량이다.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는 핵발전과 가스발전을 늘릴 태세다. 농지를 태양광 단지로 바꾸는 일에도 진심이다. 네팔의 수력발전소를 떠올리면 에너지원이 ‘친환경’이냐 묻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대미투자사업 1호는 텍사스주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 사업일 것이라 한다. 기후재난 키우는 일이 ‘국익’이 되고 있다."
- 미류, "재난 앞에서 물어야 것"(경향신문 2026/9/10)
온실가스 배출 줄이랬더니 배출권만 사들였네. 한겨레21
"국방부의 연구용역 결과 2020년 기준 한국군은 약 388만tCO₂-eq(이산화탄소 환산 톤)를 배출한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이 수치가 얼마나 정확한지 2026년 현재 얼마나 배출량이 늘었는지 알 길은 없다. 국방 분야 인공지능 도입이 가속화될수록 한국군의 탄소 배출은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장의 인공지능 무기들을 네트워크로 통합하고, 방대한 감시·정찰 정보를 실시간으로 융합하는 그 모든 과정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데이터 처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일반적으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는 전력 소모가 커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겠다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발표했는데 군사용을 포함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으로 인해 해당 목표에 현저히 미달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 이미현,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서 군대도 예외일 수는 없다 [왜냐면] 한겨레 2026/9/14
비폭력 반란이나 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개혁에 대해서조차 기득권 세력은 조직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해 기득권 세력이 반발하는 것은 현상유지와 기득권 확장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산유국 과학자들까지 합의해야만 하는 IPCC의 보고서들과 달리 기후 위기는 가속화하고 있다. 6천 5백만 년 이래 가장 빠른 전 지구적 기온 상승, 빙하 해빙, 해수면 상승, 가뭄과 산불, 폭풍과 홍수, 삼림 파괴, 해류 순환 속도 감소, 사막화, 식량 생산 감소, 난민의 증가, 전쟁, 민주주의의 후퇴, 종 다양성 상실 등 현실을 볼 때, 파국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다수 기후과학자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미 진행되는 기후 붕괴와 조만간 다가올 파국을 막고 멸종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치계급은 결코 우리를 구해주지 않을 것이다. 로저 할럼에 따르면, 진정한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복합적인 위기를 정확히 인식하고 법을 어기는 데서 시작된다.
이 책에서 할럼은 왜 대규모 사회적 교란, 대규모 체포, 대규모 희생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시민불복종 행동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비폭력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제시한다. 그는 현대 정치이론을 우회하여, 18세기의 실용적인 혁명가 토머스 페인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페인의 『상식』은 미국혁명의 불길을 지폈다. 할럼은 우리에게 기후변화에 관한 진실을 직시하라고 촉구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봉기만이 지금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것은 페인이 미국인들에게 정치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했던 전환과 유사하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조지 몬비오의 표현대로, 이 책은 “대멸종을 막을 수 있는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이자 최선의 기회”일 것이다.
로저 할럼(1966- )은 급진적인 기후 운동 단체인 “멸종반란”과 “저스트 스톱 오일”의 공동창립자이다. 맨체스터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여 대규모 유기농 채소 농장을 운영했으나 극단적 기상 이변을 겪어 농장이 파산한 후 전면적인 기후 운동가로 나섰다. 킹스 칼리지에서 시민불복종 운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 과정을 밟았다. 2017년 대학의 화석연료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통해 단 3주 만에 대학 측의 투자 철회 약속을 받아냈다. 2018년에 “멸종반란”을 공동창립한 그는 2019년, 런던 중심부를 장악하여, 세계 최초로 의회가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하도록 이끌었다. 2022년, 영국이 섭씨 40도의 극한 폭염을 겪은 후에도, 보수당 정부는 북해에서 새로운 원유 추출사업을 추진했다. 이것을 막기 위해, 멸종반란 활동가들은 런던을 둘러싸고 있는 M25 고속도로 위 표지판 등이 설치된 구조물 위로 올라가 농성함으로써 경찰은 안전 확보를 위해 해당 구간의 양방향 통행을 전면통제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4일 연속 고속도로를 차단함으로써 모두 54명이 체포되었다. 이 비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할럼은 도로교통법 위반이 아니라 법정 소란죄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그다음 해 노동당은 새로 석유와 가스 개발을 하지 않는 정책을 발표했고 2024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대다수 기후학자들은 205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2도 상승하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고통 사태인 10억 명의 난민이 발생하며, 그다음에는 인류의 멸종이 뒤따른다”고 강조하는 할럼은 감옥에 있는 동안 Robin Boardman과 함께 Suicide: The Political and Legal Implications of Creating Endless Mass Death (2025)를 집필했다.
이 책에 대한 추천사
“『21세기를 위한 상식』은 정치이론의 고전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 George Monbiot, 《가디언》 칼럼니스트
“할럼은 … [멸종반란]의 전술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널리 평가받고 있으며, 활동가들에게 미국의 민권운동이나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Yellow Vests)과 같은 과거의 운동들을 본받으라고 권고한다.”
— The New York Times
“『21세기를 위한 상식』이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 우리가 가진 최선의 희망인가? 그렇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Dr. Alexandra Jellicoe, 환경공학자·과학자,
“이것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우리 행성을 파괴할 부패와 안일함을 뚫고 나가기 위한 행동 지침서다.” — Paul Mason, Clear, Bright Future: A Radical Defence of the Human Being 저자
“[로저는] 대단히 강직하며 카리스마가 있다.” — 《뉴요커》
멸종반란에 대한 찬사
“멸종반란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희망적인 운동이다.”
— Greta Thunberg
“멸종반란 활동가들은 결코 지나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옳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 Michael Stipe, R.E.M.
“완전히 새로운 운동을 일으킨 이 젊은이들을 위해 기꺼이 나의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
— Emma Thompson
“여러분은 [정부가] 이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직면했던 가장 심각한 위기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회를 교란하는 행위는 세상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형태의 교란도 있다. 그것은 세상이 잘못된 길로 추락해 가는 것을 멈추게 하는 교란이다. 바로 그것이 멸종반란이 하는 일이다.” — Stephen Fry
“이것은 세계를 향한 경종이다. 이것은 예언자적이다. 그러므로 나는 멸종반란을 주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를 위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지기를 기도한다.”
— The Bishop of Colchester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지구상의 생명은 거의 상상할 수도 없는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Chris Packham
“우리는 의사결정 과정에 우리를 참여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Ellie Goulding











『GUAPA』 2025년 영국판 서문
2011년, 나는 모로코 지중해 연안의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친구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전의 나라면 이런 여행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한 해 전, 나는 직장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이 끝났고, 근무지를 옮기라는 고용주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런던에 온 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 도시에 남고 싶었다. 하나는 현실적인 이유였고, 다른 하나는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였다. 첫 번째는 런던을 떠나면 비자를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통적인 경력의 길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서구 국가의 여권을 얻는 편이 내게 더 유리하리라고 계산했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었다. 런던이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졌고, 런던에 사는 한 남자와도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이 두 관계가 지금까지 닫혀 있던 내 안의 문들을 열어줄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 평생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어느 곳에서도 완전히 내 자리를 찾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던 나는, 한곳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배워야 할 무언가가 내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정은 나를 두려운 공백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실업자였고, 눈앞에 마땅한 일자리도 보이지 않았으며, 이제는 비자마저 잃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공백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내게 가져다준 수많은 축복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나를 위해 미리 설계되어 있던 삶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정해진 선 밖으로 색칠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나자, 나는 이전에는 내게 닫혀 있다고 여겼던 가능성들을 탐색할 수 있는, 달콤하리만큼 짜릿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비록 조심스러웠고 이민 신분이라는 제약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 공백은 나를 소설로 이끌었다.
나는 언제나 이야기를 사랑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제자리를 찾아 들어맞자, 마치 그 부름이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퀴어 작가 조너선 켐프(Jonathan Kemp)가 가르치는 6주짜리 글쓰기 강좌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배운 가장 값진 것 가운데 하나는 작가처럼 읽는 법이었다. 구직 신청서를 내고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는 틈틈이 나는 탐욕스럽게 책을 읽었다.
모로코에서 친구와 나는 일주일 내내 소설을 읽고, 햇볕을 쬐고, 허름한 술집에서 구한 해시시를 피우며 지냈다. 때는 9월이었고, 뉴스는 9·11 테러 10주년과 계속되고 있던 리비아 전쟁 이야기로 가득했다.
나는 그 일주일의 많은 시간을 지난 10년이 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되돌아보며 보냈다. 9·11 이후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아랍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씨름하던 북미의 폐쇄적인 외국인 유학생이었던 내가, 어느새 이 지역 전체를 휩쓸고 있던 변화의 일부가 되어 있었고, 그 변화는 우리 세대에게 목소리를 주고 있었다.
나는 그 봉기들에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은 내 글쓰기에도, 나 자신에 대한 감각에도 힘을 불어넣었다. 나는 혁명들이 단지 내 개인적인 이야기의 새 장을 펼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의 이야기와 이 지역의 역사에도 새로운 페이지를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빈 페이지를 채울 힘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이야기가 과연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어느 오후, 나는 대마초 한 대를 피우고 혼자 바다를 향해 걸었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내려앉아 있었고, 바다는 거칠고 냉랭했다. 바람이 모래와 바닷물을 세차게 휘몰아쳐 안개 같은 물보라가 대기를 가득 채웠다. 나는 슬리퍼를 손에 들고 텅 빈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해시시 때문에 생각은 느슨하게 풀어지고, 자욱한 물안개 때문에 시야마저 흐려지자, 그 오후가 문득 이상하리만큼 불확실하고 거의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자 뜻밖의 기묘한 우울이 나를 덮쳤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해방의 우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텅 비어 있다는 감각이었으며, 동시에 그 빈 공간을 내가 원하는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 감정 속에 그대로 서 있었다. 끈적하고 거의 중독적이기까지 한 그 슬픔을 음미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하나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무도 선명한 이미지여서 마치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두 남자가 내가 걷고 있는 바로 그 해변을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 그들이 걷고 있는 곳은 종말을 맞은 도시였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두 사람은 활활 타오르는 불바다를 가로질러 새로운 지평을 향해 걸어갔다.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발걸음이었다.
나는 그 두 남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연인이라는 것만은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있음으로써 어떤 종류의 자유에 대한 약속을 품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설령 그들이 찾아 헤매던 자유가 처음부터 그들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던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승리와 힘을 품은 이미지였다. 상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성장과, 투쟁 앞에서 끝내 굴복하지 않는 끈기를 함께 담고 있는 이미지였다.
나는 그 두 남자의 모습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런던으로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고는 숨 가쁘게 써 내려갔다. 흔히 출근하기 전 이른 아침에 글을 썼다. 아랍의 봄 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나는 평화구축 기관에 채용되어 혁명 이후의 체제 전환 과정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런던에서 썼지만 암만에서도, 베이루트에서도, 이스탄불에서도, 카이로에서도, 튀니스에서도, 트리폴리에서도, 사나에서도 썼다.
나는 그 이미지를 향해 글을 썼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바로 저 지평선 너머의 어느 장면에서 그 이미지와 마주하게 되리라고 확신하면서.
전쟁의 여파와 경찰의 폭력, 허위정보 캠페인, 그리고 밀려드는 난민의 물결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계속 썼다. 낮의 직업에서는 그러한 사건들이 초래하는 정치적 결과와 씨름했고, 글을 쓸 때면 그것들이 한 인간의 삶에 남기는 흔적을 들여다보았다. 활동가들과 혁명가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와 경험은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빚어갔다.
그 시절의 여행은 소설의 무대가 되는 이름 없는 도시를 만들어낼 기회도 내게 주었다. 이 지역 곳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여러 아랍 도시의 도시적 풍경에서 이런저런 조각들을 마치 중고품을 주워 모으듯 가져왔다. 베이루트의 어느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하나, 다마스쿠스의 재스민 덩굴로 뒤덮인 담장 하나, 암만의 요란하고 번쩍이는 로터리 하나.
내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왜 『Guapa』의 배경을 이름 없는 아랍 국가로 설정했느냐는 것이다.
사실 그 문제에 있어 내가 가진 선택권은 내 눈동자의 색깔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소설의 배경을 획일적인 어떤 ‘아그라바(Agrabah)’ 같은 곳으로 설정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적 함의를 갖게 되지 않을까 깊이 우려했다. 하지만 실제 도시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려고 할 때마다—암만, 베이루트, 카이로, 다마스쿠스가 차례로 후보에 올랐다—문장은 어색하게 굳어버렸고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다.
소설을 완성하고 난 뒤에야 나는 이 이름 없는 도시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는 비밀과 안전의 문제였다. 소설의 배경을 ‘실재하는’ 어느 한 나라로 정했다면, 그 나라의—대부분 지하에서 살아가는—퀴어 공동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고, 이는 그들의 동의도 없이 그들을 세상에 노출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나라의 이름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나는 원치 않는 노출의 위험을 줄이면서 이 지역의 퀴어 공동체들에 대해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결정에는 단지 실용적인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니, 나는 그 선택이 지닌 미학적·문학적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름 없는 나라는 독자에게 방향감각을 잃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독자는 라사(Rasa)처럼 동시에 낯선 사람이면서 집에 돌아온 사람이 되고,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사람이 된다.
어느 순간 독자는 카이로의 거리를 걷고 있다고 느낀다. 다음 순간에는 베이루트의 어느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갑자기 다마스쿠스의 감방 안에 들어가 있다.
그 도시를 어떤 하나의 범주나 이름표 속에 집어넣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자기 자신을 어떤 범주와 이름표로 규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투하는 라사의 어려움을 그대로 메아리친다.
나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그 격동의 세월 동안 이 소설을 썼다. 이 지역의 사건들이 잇달아 펼쳐지고 나의 이상주의와 낙관주의가 시험받으면서, 처음 내게 찾아왔던 이미지—두 남자가 손을 잡고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는 더욱 깊어졌고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결국 라사와 타이무르(Taymour)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 장면 자체는 끝내 소설 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품고 있던 에너지는 책의 모든 페이지 속으로 스며들었다.
지금 나는 내 생애에 목격한 가장 잔혹한 절멸 행위 가운데 하나가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76년 동안 서서히 진행되어온 과정이 이제 무서운 속도로 가속되고 있다.
『Guapa』의 배경이 팔레스타인은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이 지역 전체의 해방이 걸려 있는 중심축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도덕적 심장박동이기도 하다.
모두가 해방되지 않는 한 퀴어의 해방도 있을 수 없다. 그보다 못한 것에서 ‘프라이드(pride)’를 찾는 것은 공허할 뿐만 아니라 깊이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불타는 도시 한가운데서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라사와 타이무르의 그 이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Guapa』의 씨앗이었다.
그 이미지 속에는 하나의 믿음이 있다.
불길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며 끝까지 나아가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원이며, 자유이며, 그렇다, 심지어 사랑이기도 하다는 믿음.
나는 이토록 어두운 시대를 지나면서도 그 이미지를 품고 간다.
그것은 나를 지켜주는 부적이며, 하나의 약속이다.
살림 하다드(Saleem Haddad)
2024년 8월